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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잡부(天上雜夫)_ 사업관리 시즌 2 (해외영업 시즌 1) )

특허, 입사면접

by Khori(高麗) 2017.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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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전 주간 정례회의부터 고위 임원의 새로운 신공으로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받아쓰기 시험을 봤다. 백지주고 채우는 주관식 시험을 본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색다른 경험이다. 그것도 내가 기획한 제품에 대해서 자꾸 뭘 쓰라고 하시니 "그래도 제가 솔루션 아이디어 기획자인데 써야 하나요?"라는 애교 섞인 질문을 했다. "당연하지!!"라는 간단한 답신에 하는 것 외에는 할 말이 없지요. 


  오전 내 간략한 보고와 더불어 년초부터 반응이 무르익고 있는 솔루션 판매에 대해서 해외영업, 국내 영업, 마케팅, 개발 조직 팀장급들이 모여서 회의를 했다. 가출했다가 돌아온 탕자가 두 개나 솔루션 기획을 해서 하나는 상품화가 되었고, 하나는 상품화가 된 제품을 확장할 수 있는 솔루션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두 가지 모두 특허출원을 했고, 후자가 먼저 결정 나고 나머지도 오늘 특허 통과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영업 쟁이가 특허에 기획자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으니 특허증 나오면 액자라도 만들어서 기념을 해야겠다.


 원천기술을 만드는 엔지니어가 아니지만 시장에 존재하지 않는 방식을 도전하고 반응을 얻는다는 것은 새로운 도전이다. 공학도가 아닌 입장에서 접근하는 것은 결국 종사하는 업종의 insight와 기술변화를 적절하게 이해하는 방식이 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새로운 기술에 열광하지만 기술을 사용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존에 익숙해진 사용방법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기술이 발휘하는 성능, 편의성들을 취득하고 싶어 한다. 그렇지 않다면 새로운 방식이 기존에 사용하던 불편한 점을 제거하는 방식이 될 수밖에 없다. 


 내가 기획한 제품은 하나는 시장에 존재하는 다양한 욕망(wants)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들기 위해서 명령과 수행이란 입력과 결과의 도출 외에 중간 동작 과정에서 수행하는 각각의 동작 자체를 데이터화하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운영하는 것들이 잘 유지되도록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데이터 마이닝이지만 업종에서 구현 목적에 따른 적절한 마이닝 대상을 고르는 것은 업력과 insight가 필요하다. 다른 한 가지는 관점의 차이이다. 우리 생산하는 결과물을 데이터로 인식할 수 있다. 디지털화된 데이터는 간단하게 copy & paste가 가능하다. 네트워크가 가능하다면 해당 데이터를 전송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물리적 거리를 넘어서 원격지에서 동일하게 데이터를 작동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 점이다. VR도 어떻게 보면 아날로그의 세계를 디지털의 세계에서 비슷한 느낌이 나도록 만든 가상현실이다. 


 이런 기획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는 업무를 통해서 축적되는 업계의 경험이다. 그런데 이것만으로 새로운 생각을 만들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특정한 업종이 제공하는 서비스와 제품, 솔루션은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이 그 업종의 indentity와 같다. 그 본질이 바뀌면 업종 변환이 발생한다. 세상의 변화가 빠른 것 같지만, 사실 본질의 변화는 대단히 드물게 발생한다. 한 업종의 소멸은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우리가 빠르게 변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본질의 변화가 아니라 본질을 구현하는 기술적인 변화의 빠름인 경우가 많다. 이런 기술적 변화는 일종의 업종 트렌드다. 본질을 유지하고 기술적 변화를 잘 이해하고 빠르게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빠른 변화를 위해서 개인적으로는 엔지니어는 아니지만 기술 개념에 관련된 서적, 마인드맵, 전문 기획 서적들을 많이 들춰본 것 같다. 그리고 내 업종에서 사용하는 방식과 변해가는 방식의 차이를 이해하고, 새롭게 변해가는 기술 트렌드들이 지향하려는 부분을 읽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런 기획과 아이디어가 아무리 좋다 해도 이것을 구현하고 만들어 줄 진정한 공학도들과 함께하지 못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어째던 내 주업은 판매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기획했다는 자랑보다 내가 상상하던 가상의 세계를 현실에 꺼내 준 동료들에게 한없이 감사할 수밖에 없다. 마음 맞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일이 생겼으니 정말 좋은 일이 되었다. 게다가 내가 판매를 잘 해서 좋은 수익까지 생긴다면 더할 나위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새로운 희망이 생겼고, 함께 한다는 것으로도 즐거운 하루가 되어가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여러 번 시험에 든 하루임에 틀림없다. 오전 시험과 특허 출원 결과의 즐거움이 지나가고, 이력서로 만난 청춘들의 입사 면접을 봐야 했다. 이 정도 스펙이면 내가 대학, 대학원 졸업할 때면 어딜가더라도 괜찮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가 대학보다 지식수준이 낮지 않은 시대가 된 것도 한 가지 이유지만, 젊은 청춘들이 대학 입학부터 취업까지 가는 과정을 보면 그냥 마음이 짠하다. 기계처럼 주어진 트랙을 달려야만 한다거나, 마치 앞 세대들이 자신들을 위해서 만들어 놓은 트랙을 무조건 달리게 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청춘들에게는 무엇인가 투박하지만 새로움이 있어야 한다는 편견 때문일지 모른다. 모두를 뽑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는 여건이고, 현실적인 상황과 재원들이 갖은 역량을 맞춰볼 수밖에 없다. 꽤 괜찮은 녀석은 해외영업에서 꼭 필요한 역량에서 아쉬움이 있고, 다른 한 녀석은 해외영업에 필요한 역량 등은 두루 가추고 있으나 영업자체의 기질이 아쉽다. 


 파트장들이 가장 많이 마주치며 일해야 하기에 의견을 물어보았다. 아침부터 누군가를 시험 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인생에 영향을 주는 것이라 면접관들도 최선을 다하라고 잔소리를 해서인지 다들 나처럼 마음이 묘한가 보다. 결국 한 명에겐 불합격을 통보해야 하고, 한 명은 한번 더 면접을 보기로 했다. 상장사라고는 해도 재벌 그룹사가 아니라면 사실 요즘 사람 뽑기가 쉽지가 않다. 그것이 또 내 복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말 마음 짠하고 조금 속상했던 것은 누굴 채용하고, 불합격을 통보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늘 면접을 본 청춘들은 그들이 도전하는 만큼 새로운 삶을 만들어 갈 것이다. 정작 내가 조금 우울한 것은 "본인들이 갖고 있는 꿈이 뭐에요? 되고 싶은 것이 있다던가 아니면 하고 싶은 것, 그런 것 말이에요?"라는 내 질문 때문이다. 아마도 그 질문 속에서 나는 젊은 청춘들이 생각하는 미래, 현실에 대한 희망을 보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대답이 "취업"이라는 짧고 굵게 절실함이 묻어나는 현실적인 답변으로 '내 질문이 정말 사치스러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들이 꿈꿀 수 있는 현재의 최대치가 취업이라는 환경을 만들었다는 것에 대한 미안함도 있다. 


 직장인들이라고 요즘 쉬운 일은 없다. 잘된다는 곳이 그리 많지도 않다. 비록 내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모두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런 비중이 낮은 시대도 아니다. 하지만 청춘들이 꿈꾸지 않는 세상은 무엇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한다. 그들이 현실적인 생존을 위해서 더 큰 삶의 꿈을 잊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들이 꿈을 포기하게 만든 현재의 상황은 그 앞 세대가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나도 당장 그들에게 현실적인 대안을 제공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은 없다. 고작 회사에서 조금이라도 젊은 직원들이 열정을 갖고 도전하며 자신의 능력을 높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응원해 주는 것이다. 종종 응원이 그들에겐 잔소리가 되는 아저씨기도 하고..


 예전에는 면접을 여러 군데 보고, 받아온 면접비로 생맥주 파티를 하던 기억이 있다. 선배 보고 놀면 뭐하냐고 면접이라도 보고 오라고 잔소리를 하던 후배이기도 했다.  요즘은 면접비가 없는 곳도 많다. 화장도 하고, 정장도 차려입고 오는 청춘들에게 작지만 면접비를 조금 챙겨주었다. 그들이 오늘 쏟은 열정과 시간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당락을 떠나서 좋은 기억을 갖길 바란다. 그래서 되도록 면접이 끝나고 나면 질문도 받아주거나, 다른 곳에 면접을 볼 때에 이런 점이 보강되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하게 된다. 책이라도 한 권씩 줄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저녁내 마음이 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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