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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삶을 살아가는 주변인 삶을 위한 총, 명, 강..그리고 不誠無物 본질의 가치와 변화의 기술적 혁신을 파악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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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사유의 시전

2018.03.05 20:30 | Posted by Khori_聰 明 强 Khori(高麗)


 강렬하다. 돌아가지 않고 삶을 마주 대하고 나아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폐부를 찌르는 통렬한 설명과 당위성에 대한 호소가 귀속을 맴돈다. 총보다 펜이 무섭다고 하지만 그 펜의 움직임을 결정하는 정신은 더욱 강력하다. 말이 한 세대를 가고, 글이 백년을 가고, 정신이 천년이 간다는 말 속에 우리는 그것이 철학적 사유와 위대함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EBS인문학 강의를 술마시고 퇴근하다가 잠시 보다 한 마디가 머리속을 섬광처럼 지나갔다.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것보다 보여지는 대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었다. 우리는 교육이라는 균등한 학습체제로 통일성을 갖게 된 반면, 생각하는 힘과 호기심을 거세당한다. 지식이 권력이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되는 이유다. 그의 강의를 일일이 보고, '도덕경'을 보고, 불교방송에서 하는 강연에도 한번 가보고, 다시 '인간이 그리는 무늬'를 보고 또 그의 다른 강의들도 찾아보았다. 책 속의 이야기가 그의 사유의 연장선이기에 강의속의 이야기가 또 다른 흐름과 목적의식을 갖고 흐른다. 강연에서 책에 배서도 받고, 당돌한 질문도 해봤다. 내가 철학자와 같은 수준의 사유를 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내 수준에 달린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학교가서 같은 수업 시간을 보내고도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은 설명할 길이 없다.


 개념적으로 책에서 설명하는 과정은 잘 이해가 된다. 어떤 과정은 해 보았다고 생각하고, 어떤 수준에 와 있는지는 이 책을 통해서 내 수준이 어떤지도, 또 내가 망설이는 것이 무엇인지도 도움이 된 것 같다. 아마 공부가 재미있었던 것은 고등학교시절 수학 교과서에 나오는 수리 공식을 일일이 증명해봤을 때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한참 사회생활을 하다 책 읽기는 하면서부터다. "고등학교때에 그렇게 했으면 명문대는 어디던갔겠다!"는 마나님의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다. 그냥 조금 공허하고 허전한 상태에서 호김심이었다. "아~ 분명 나랑 비슷한 옛날 놈들이 있었을 테니, 그런 놈들은 어떻게 했나 찾아보자"라는 생각으로 읽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처음에 지식의 습득을 거쳐 조금 지나서는 의심을 갖고 책을 읽게 되었다. 의도적으로 그렇게 읽기도 했다. 왜냐하면 초등학교 전과도 아니고 답이 있는 것이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다 만난 책들과 책을 읽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분명 나도 따르고, 스스로 해보고 하는 과정이었다. 아마도 독립이란 과정을 지나쳐보려고 아둥바둥대는 수준이 현재의 나라고 하면 너무 높게 평가한 것인지 모르겠다.


 이 책을 풀어가는 과정을 보면, 사건과 결과를 먼저 보여준다. 일상에서 나보다 뛰어난 사람을 만나면 우리는 부러워한다. 그리고 그가 해온 과정을 꼬치꼬치 물어보고 따라해 본다. 대부분의 자기계발서가 이정도의 내용을 갖고 있다. 책에서는 동아시아의 개방의 결과와 이를 극보하려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선진 문물과 제도를 받아들이는 과정으로 책에서는 설명된다. 그리고 동일한 제도를 이식해서 운영해도 좁혀지지 않는 격차에 대한 고민한다. 마치 자기계발서를 읽고 따라해도 잘 안되는 것과 같다. 나는 그 이유가 내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저 놈들은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한거지?", "왜 나는 저런 생각을 안해본거지?"라는 질문을 통해서 그것이 내 사유의 것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기계발서의 대단한 저자들이 평범하지 않듯, 철학을 통해서 자신만의 생각하는 힘을 만들어 낸 사람들이다. 그들을 우리가 글로 써진 작은 내용을 읽었다고 쉽게 범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절실함과 현재를 부정함으로써, 지금에 안주하지 않고 결핍을 인식하고, 그것을 찾아서 채우는 방향으로 생각이 이동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거치고 나면 좀더 다차원적인 접근을 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나는 공자가 말한 일이관지라고 생각한다. 같은 것을 배워도 다르게 사용할 수 있는 힘은 개개인의 사고력에 따른다. 그 사고력이란 그 대상에 애착을 갖고 면밀하게 보아야 한다. 유홍길이 말하고 대중에서 전달된 말처럼 애정을 갖고 자주 보게 되면 익숙한 것을 새롭게 보게 된다. 그 새로운 것이란 대단히 큰 것이 아니다. 견소왈명이란 말처럼 그 작은 차이를 인식하는 것이 현격한 결과의 차이를 만든다. 마치 만년 2등이 1등의 벽을 넘지못하는 관계처럼 별거 아닌듯 하지만 쉽게 극복되지 않는 차이가 존재한다. 그것이 저자가 말하는 선진국과 이를 따르는 중진국, 후진국들과의 격차라고 생각한다. 



 이런 과정을 저자가 설명함으로 저자는 젊은 미래 세대가 학습된 보편적 지식과 고차원적인 사고력을 함향하는 길을 진심으로 호소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은 많은 젊은 친구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특히 책에서 상당히 논리적으로 생각, 생각하는 법,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말을 아주 정밀하고 연계성있게 설명하고 있다. 나도 이 책을 보면서 꽤 많은 말의 의미를 되짚어보게 됐다.




 좀더 나이가 들면 나도 내가 지키던 자리는 후배들에게 넘겨주고, 아이들을 후원하는 위치가 되어갈 것이다. 그 때가 되면 내가 선수가 아니라 코치가 되어야 하고, 코치가 되어야 할 준비도 함께 하며 살아가야한다. 인간에게 하나의 큰 기쁨중의 하나가 내가 배운것을 누군가에게 가르치는 일이다. 내가 먼저 해보고, 경험과 지식을 쌓고, 나의 유효한 생각하는 방법을 모른다면 대체 누가 나에게 손을 뻗어 도움을 구하겠는가? 그 과정을 통해서 내려놓는 것을 알아간다면 50쯤 되면 지천명이란 말에 걸맞는 삶이 될 듯하다. 그것을 더욱 열심히 한다면 성인들이 말하는 이순이라 단계도 멀지 않을 것이다. 


 철학적 사고가 필요한 이유, 철학적 사고를 통해서 나를 찾아가는 것, 나를 찾고 이를 통해서 내가 살아가는 주변을 함께 찾아가는 것을 이렇게 잘 정리한 책을 보기 드물다. 나는 이야기속에서 저자가 말하는 미래에 대한 비전과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려는 진심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계량적 효율과 경쟁을 통한 신자유무역의 시대가 계속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달이차면 기우는 방향으로 움직이듯 그런 현상에 대한 움직임은 존재한다. 4차 산업이라는 효율지향의 거대한 트렌드도 신자유주의적 발생에서 기술적 접근이 변경된 부분을 제외하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우리는 그 연장선상에 존재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의 철학이 아직은 덜 구체화된 시점이기에 확실한 대립도 도 없이 혼란스럽다고 생각한다. 단지 경제문제가 어려워질수록 우경화되고 쌈박질을 하는 인간의 역사가 걱정될 뿐이다. 현재는 사람의 존재 의미와 역할이 퇴색되어지고, 아주 뛰어난 소수의 지적능력에 의존하는 방향의 이야기가 많다. 하지만 모든 문명은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고, 사람의 역할, 사람이라는 존재만으로 갖는 의미를 되새기는 방향으로 인간의 사고는 발전되어 왔다. 선진국이란 나는 이런 인간에 대한 고민이 좀더 깊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경제발전이란 물질의 양적발전과 별개로 다음 시대는 다시 인간을 기계위에 군림하는 존재의미를 되새기는 시대가 되길 바란다. 그럴려면 우린 다시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공부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머릿속 생각을 제대로 말하는 법

2018.01.14 00:25 | Posted by Khori_聰 明 强 Khori(高麗)




 책의 서문이 재미있다. '더 좋든 더 나쁘든 말이다'라는 문구가 재치있고 사람의 호기심을 끈다. 그 순간 순발력있게 말을 짜르듯 빨리 책을 넘기길 권한다. 글을 쓰는 것을 말하는 것처럼 이어가고 있다. 책의 목적과 방향을 자신의 의도에 잘 일치시켰다. 


 되짚어 보면 머릿속 생각을 말로 전달하는 것에는 상당한 시행착오와 다방면의 학습이 필요하다는 말을 저 문장이 품고 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장점을 파악하고, 타고난 성품을 학습된 장점을 통해서 보완해야 한다. 책의 서문과 목차를 통해서 이 책의 핵심을 잘 설명하고 있다. 아래의 주제와 설명, 주제별 사례를 읽어 보면 나도 머릿속의 생각을 일목요연하고 말로 할 수 있고, 나의 앞에 있는 상대방들이 호응과 과한 리액션을 할 것 같은 기분 좋은 생각을 들게 한다.


 1. 소통 - 상대방을 자신과 같은 평면에 놓다

 2. 설득 - 상대방의 마음속에 자신의 견해를 각인시킨다

 3. 협상 - 갈등을 협력으로 바꾼다

 4. 연설 - 언어의 히미으로 청중의 호감을 얻다

 5. 토론 - 대립하는 과정에서 제3자의 지지를 받다


 그러나!!


 하지만 분명 저자는 책을 시작하는 서문 앞 페이지에 이런 글귀를 적어 두었다. 기초적인 수준은 예를 들어 설명이 가능하지만, 배우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생각한다. 나는 저자들이 언어와 말이 사람에게 떠오르는 감정, 의지, 열정, 좌절과 같은 느낌의 정도를 전달하는데 매우 부족할 뿐만 아니라 내가 이해하는 것과 상대방이 이해하는 차이를 균등하게 만들기 위한 말과 언어라는 수단이 매우 거친 수단이라는 것을 잘 이해한다고 생각한다. 시와 같은 표현이 더 많은 상상력과 그 사람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게 하기 때문에 높은 표현이라고 부른다. 그 의미를 다시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는 살아있는 오감의 느낌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 감성적인 부분과 이성적인 부분이 합쳐서 인간은 사고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각 장에서 이루어지는 예시와 말하기, 표현력을 보면 쉽게 이해된다. 현실에서 이해했다고 다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글의 내용을 현실에서 모방하는 과정만으로 저자가 각 장에서 말한 의도를 모두 파악할 수 없다. 그는 분명 더 잘 알고 행동하겠지만, 지면에 그의 느낌과 다양한 변화의 대응법을 기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동시에 서문으로 돌아가면 저자는 분명히 제대로 말하는 법이 아니라 "제대로 생각하는 법"이라는 전제와 "저력"이 있어야 한다는 배경을 함께 설명하였다. 책의 말하기 방식에 집중하기 보다는 이 두 가지에 집중해야 발전이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많은 것들이 손쉽게 내 손에 들어오는 것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노력이 수반되고, 몸으로 익혀 사용할 수 있어야 내것이 되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협상과 설득, 토론을 많이 해야하는 해외영업 팀장,부본부장을 하고 있다. 직원들과 소통도 해야하고, 가끔 연설이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고객, 기업관련 행사에서도 말을 해야할 처지에 있을 때가 있다. 


 책에서 언급된 다섯가지 대화의 방식은 일정한 목적을 두고 있다. 일상의 사소한 일을 이야기하고 서로의 시간을 즐기는 대화가 아니다. 따라서 그 모임의 배경, 목적을 잘 이해하는 것과 상대방과 만나는 목적을 이해해야 한다. 그 대화의 대상에 대해서 다 알 수는 없지만, 대면과 태도를 통해서 그 사람들의 심리적인 상황에 대한 정보 판단도 아주 짧은 시간안에 진행해야 한다.


 전자는 제대로 생각하는 법을 넘어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생각을 디자인하고 그 디자인된 상황과 나의 의도에 따라서 말이 갖고 있는 비유, 은유, 설명을 전개해 가는 것이다. 옛말에 쥐도 막다른 길로 몰지 말라고 했다. 활로를 열어주되 그 방향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몰아가는 것이 전쟁의 전략이기도 하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서는 사람들이 그 방향으로 오도록 유혹하는 것이기도 하다. 오래전 국어시간에 배운 다양한 표현법을 나도 다시 생각하게 될 줄 몰랐지만 변화와 의도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필요하다. 그 변화는 나의 변화에서도 시작되지만, 나를 마주하는 상대방의 다른 의도와 생각이란 정보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실시간으로 그 정보를 입력 받으며 끊임없이 수정 보완을 하는 고도의 작업인 셈이다. 마치 바둑, 체스와 같이 수를 둔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렇다고 일상의 대화를 이렇게 한다면 피곤한 일이다. 목적이 있는 대화에 대한 일일 뿐이다. 그런데 사소한 목적들도 일상에 많아 보인다.


 모든 사람은 목적 의식을 갖게 되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기대한다. 이 변화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준비된 자세가 필요한다. 어쩌다 한 번이란 일들이 발생하고 좋은 결과를 주지만 그 목적에 관한 다양한 전반 지식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한 다양한 공부가 필요한 이유다. 


 책에서 심리라는 부분을 이야기 하지만 그 사람이 어떤 심리적 상황에 처하는 것도 다양한 인간 활동의 결과다. 원인은 다 알 수가 없지만 예측된 상황에서 기대되는 인간의 활동은 그 범위가 축소된다. 물론 예상을 넘어서는 반응이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것을 파악하는 다양한 인간의 이해가 곧 저력이다.


 여기에 나는 한 가지를 더 하고 싶다. 그것은 준비된 학습과 자신의 경험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상황속에서 발생하는 일들을 정보 데이터로 처리하여 상황을 인지하는 능력이다. 저자들은 충분히 경험을 통해서 훈련되었겠지만, 이 부분은 가르키는 것이 매 상황마다 다르다. 그래서 가르치키 힘든 것이다.


 예를 들어 홈런을 칠 능력과 준비가 되어 있고, 투수가 갖고 있는 현재의 심리상황과 그에 대한 정보 학습이 잘 마무리 되었다고 생각하자. 그런데 상황 판단을 하지 못하면 축구장에 가서 그런 배팅 능력을 과시하는 것과 마찬가지 효과를 만들기 때문이다. 축구장에서 야구 배트를 휘두른다면 바로 퇴장일테니 말이다. 


 나도 이 글을 쓰며 배우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이런 상황 판단은 자신의 오감을 통해서 추가적인 정보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머리로만 이해하려고 해서는 다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우리는 일명 "눈치가 없어"라는 말을 듣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자신의 안으로만 오감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상황의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면 우리는 약속과 기록에만 의존한다. 상황의 변화가 있더라도 이 부분은 중요하고 지켜져야 한다. 상황의 변화가 발생하면 상대방의 조정 의사를 기대한다. 하지만 나는 상대방을 이해하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진심이 결국 사람을 이끄는 힘이다. 결국 위에서 말한 목적성을 갖는 5가지의 대화는 주도권을 잡아 타인을 리딩하는 방식이라고도 볼 수 있다. 무지한 자가 리딩을 할 수 있는 방법이란 물리력의 유혹을 넘어서지 못한다. 누구나 자유롭지 않다.



 열망, 성공, 실패라는 주제로 EGO, 자아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책의 표지에 있는 '인생의 전환점', '敵(enemy)'라는 표현이 자극적이다. 이 책에서 규정하는 듯, 나는 EGO가 항상 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견해도 자아가 갖고 있는 다양한 모습을 부정하는 것이다. 자아가 갖고 있는 그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세상을 보고 싶은 모습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보여지는 데로 보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인간은 원래 그렇게 태어난 것이고, 저자의 말처럼 실패를 통한 배움을 끊임없이 축적하여 지식과 지혜를 생산하는 것이다.


 세 가지 주제를 통해서 저자의 관점을 생각해 보았다. 사회에서 인간이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끊임없는 과정 속에서 동작하는 자아에 부정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결핍을 채우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움직이기 위해서는 현재의 결핍을 인정해야 한다. 모든 표어나 구호가 현재 그것이 없다는 것을 단지 멋지게 표현한 것이기도 하고, 욕망을 부채질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자아도 동일한 양면성을 같고 있다. 어떤 상황에서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는가는 인생에 중요한 과제이며, 편협된 자아를 탈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성과 욕망의 셔틀을 통해서 절제와 용기를 결정하는 셈이다. 


  사회 속의 개체로써 인간은 한 가지를 유념해야 한다. 모든 것을 자기 하고 싶은데로 할 수 있다는 것은 방종이며, 사회적 연결성이 나타나는 관계와 파급효과 등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무지와 고립을 자초하는 것이다. 우리가 도덕, 철학, 인문학에 대한 지속적인 학습을 하는 이유도 지금 그것이 부족하다는 것이기도 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인간의 자아는 타락할 수도, 고고하고 담백하며 절제된 정수로도 남을 수 있는 가능성이 동시에 열려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통제되고, 상생하지 못하고, 소통하지 않는 자아가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고 생각한다. 책을 보면서 동양의 인문 고전과 같은 향을 느끼는 것도 그러한 이유일지 모른다.


 '중요한 사람이 될 것인가? 중요한 일을 할 것인가?', '당신에게 주어진 일을 잘 하라'라는 말이 다가오는 것은 깨달음의 관점에서 내려놓음이라고 생각한다. 경험해보지도 학습해보지도 못한 사실을 알 수 없는 사람에게는 거리가 멀게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인생에서 고난의 시기는 언젠가 다가온다. 전반전에 올 수도 있고, 후반전에도 가능한다. 경기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 생길 수도 있다. 少年登高라는 말이 어려서의 성공을 시기하는 것이 아니다. 만물의 흥망성쇠라는 불가피한 과정을 보며, 앞으로 다가올 어려움을 준비하라는 것이다. 영원히 오지 않는 다면 좋겠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이 coming soon인지 passed away인지도 우리는 알 수가 없다. 오지 않았다면 준비하는 삶이 훨씬 중요하고, 통과하는 중이라면 존버정신을 갖고 정신줄을 꽉 잡아야 하는 것이다. 그 너머에 다시 내가 바라던 것이 꼭 아닐 수도 있지만 더 나은 결과가 기다리기 때문이다. 


 책을 통해서 자아의 부정을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과 절제의 갈등 속에서 흔들리는 자아에 대한 생각이라고 느낀다. 확실하게 저자는 특정한 관점에서 한쪽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또 다른 그런 자아가 다른 부분에서는 스스로를 보호하고 생존하는 기능도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타인이 될 수 없고, 나의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지만 모두가 저자와 같은 성향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든 인간 개개인이 소중하고, 그 개인의 가슴속에 우주를 품고 있다. 그 개개인의 우주가 서로 연결되어 미리내와 같은 멋진 인생과 문화를 만들어 간다. 별이 세상을 움직이듯 변화란 끊임없이 일어나고 이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자아의 다양한 측면도 존중되어야 하며, 이성적으로 통제가 가능한 부분이 자아의 통제되지 않는 부분과 균형, 절제되도록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이것을 위해서 명확적 목적의식, 세상을 냉철하게 바라볼 수 있는 맑은 정신이 필요한 것이다. 


 밥을 끊지 못하니 밥벌이를 해야 하는 모습이 시지프스의 고난과 같은 일이다. 당연히 하던 것을 당연하게 바라보는 모습과 당연하던 것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지혜와 안목은 삶의 축복이다. 나는 이것이 자아를 적으로 규정해야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성을 너무 강조한다면 세상은 메마르고 사랑은 요원해지기 때문이다. 과도한 법치 또한 인간의 문명 속에서 단명하는 것처럼 균형과 절제가 중요하다.


 세상 사람들과 살아가며 무엇을 도모한다면 충분히 깊이 있게 바라볼 만한 책이다. 재미있게 보았지만 나는 중용을 한 번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주진우의 이명박 추격기

2017.08.27 23:37 | Posted by Khori_聰 明 强 Khori(高麗)


"형 오늘 볼 때 갖다 줄까?"라는 한 마디에 군말 없이 OK 했다. 받고 나서는 한 권사서 볼껄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라는 생각을 되짚어 보는 저녁이다.


 나는 이명박이란 사람과 관련이 없기도 하고, 관련이 있기도 하다. 그가 살던 시대에 같이 살았다는 것이 연관성이자 하나의 불운이다. 그 시절의 기억이 불쾌하고, 지금도 그 결과를 보면 분노할 수밖에 없다.


 세상에서 물질적으로 소외된 계층에 대한 비정한 정책, 간접세를 올리고 SOC사업이란 이름으로 자행된 사기 사업, 자연파괴, 네티즌 미네르바의 지적 수준도 대응하지 못하던 경제각료, 4대 강을 시작하고 중소기업들에 대한 지원 축소, 정부 주도 산업기술 육성 정책의 실종, 쌍용차, 용산참사, 민간인 사찰이 그랬다. 막상 쓰다보니 정말 세상을 크게 후진시켰다. 무엇보다도 자유로운 생각과 발언을 고소와 소송으로 막기 시작한 새로운 형태의 독재가 심각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신들이 원하는 틀과 형식의 제약을 가하는 것은 고문과 같다. 나는 이것이 가장 싫었다. 사람을 빈곤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을 쓴 저자는 그가 사회적 존재로써 구성원들에게 강요한 결과와 정권을 획득한 정치지도자로서 행한 결과에 대한 분노가 있다. 궁극적으로 자신의 탐욕을 위한 과정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충분히 그럴만한 개연성이 차고 넘친다. 공공의 자리는 전 사회 구성원의 이익을 위하는 형태여야 하며, 전체의 이익이 증가해도 소수의 이익을 대변한다면 그것은 곧 실패다. 부정과 부패는 그 고리에서 발생한다.


 과거에 제시한 공약을 지금 돌아봐도 우리에게 전해주는 교훈이 많다. 통상의 사기란 쌓아온 신용을 금전적인 것과 바꾸는 행위에 가깝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그렇다. 하지만 정치나 고도의 사기는 금전적인 이익이 있을 때까지 미래의 그림을 믿게 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렇게 선량한 사람들의 마음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의도적으로 기만했다는 것은 용서받기 힘들다. 개인들의 관계에서도 돈 만원보다 남에게 해가 되는 의도적 행동이 더 큰 분노를 일으킨다. 사람은 감성적인 부분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도덕적으로도 현실에 발생한 피해에 대한 책임의식이 없어보인다. 법적인 책임에서도 아직까지는 대단히 자유롭다. 그가 말하던 반값 아파트 같은 허황된 공약을 보면 기가차서 웃음이 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속았다. 탐욕의 생각도 잘못이지만, 그 탐욕이란 욕망을 부추킨 악마의 속삭임도 결코 용서받지 못할 일이다. 머리가 좋다고 생각하지만, 성품은 사람이 갖아야할 기본에서 크게 벗어났다고 보는 것이 명확하다.


 현실에서 그 죄를 용서받지 못한다면, 하늘나라에 가서도 용서받지 못한 그 죄의 굴레 속에 영생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주진우라는 사람이 그 사람을 쫒고 그의 악행을 쫒는 일은 어쩌면 그가 용서받을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라는 생각도 든다. 차라리 현세에도 그 죄를 단죄받되 죄사함을 받지 못하고, 하늘에서도 부족한 죄를 계속 받는 것을 생각도 해본다. 나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은 사람에게 이런 심한 저주를 생각하는 것이 이상하다. 나의 마음속에 나쁜 생각을 품는 것도 옳지 못하다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세상에 오물을 두루 넓게 뿌린 댓가는 반드시 피하가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국가는 기업과 달리 국민이 존재하는 한 세금을 걷을 수 있다. 기업운영과 다른 자원구조로 그런 생각을 하다가 망하는 나라들도 있다. 그러나 경제적인 이유로 나라가 없어지는 예는 대단히 드물다. 그래서 더 나쁘다. 함께 하는 모든 국민들의 주머니에서 돈을 훑어 자신의 주머니를 채웠다면,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서 온갖 제도와 법률이 허용하는 권한을 사리사욕에 쏟았다면 나는 주진우라는 기자가 반드시 원하는 것을 얻을 것이라고 믿는다. 세상은 그렇게 정화되어 왔다. 그리고 나는 그 정화의 과정과 진실의 모습을 살아생전에 꼭 보고 싶다. 그래야 대한민국의 청춘들과 아이들이 살아갈 시대가 좋아지지 않겠는가? 


 역사를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역사속의 과오가 현실에 다시 나타난다. 이런 시대의 주역을 보고서 배우는 것이 없다면 또 다시 대한민국에 유사한 일이 우리의 미래, 아이들이 성인이 된 시대에 다시 나올 수 있다. 그런 일은 왜정시대나 한국전쟁과 같이 절대로 바라는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반드시 바라던 결과를 학수고대하는 이유다.

창조력은 어떻게 인류를 구원하는가

2017.08.19 22:39 | Posted by Khori_聰 明 强 Khori(高麗)

 '창의력은 선천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타고나는 분야가 분명 존재하지만 많은 사람들도 자신이 선택한 분야에서 계발 가능하다고 믿는다. 이를 통해 삶은 반드시 변화한다. 지난번 대답할 수 없는 주제에 대한 30가지 질문에 대한 책을 통해 사고의 확장을 꾀한 빅퀘스천도 재미있다. 다시 그의 책을 읽는 이유는 그의 생각을 다양하게 접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엔 이스라엘의 교수도 동참해서 더욱 재미있다.


 4IR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하고, 기계가 현존하는 많은 일을 대체할 것이다. 막대한 연산이란 장점을 갖은 이성적 영역과 이 분석에 기반한 패턴부석을 통해 인간의 행동예측은 상당히 가능할 것이다. 나의 관심은 이런 파괴력을 갖은 기계솔루션을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지 강한 의구심이 존재할 뿐이다. 확실하게 단위당 노동 시간은 좋은 방향이던 나쁜 방향이던 줄게 될 것이다. 생산의 결과물이 어떻게 분배될지도 궁금하다. 기계가 생산하고 모든 사람이 조세를 통하던 스스로 먼저 나누던 경제적 관점에서는 공산주의와 무엇이 다른가라고 생각한다. 어떤 면에서 자본주의던 공산주의던 모두 잘먹고 잘살자라는 목표는 동일하다. 방법적인 선후와 통제할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을 간과했는지 고려했는지의 차이다.


 책의 관점은 유휴한 노동력이 결국은 인간의 삶을 어떻게 윤택하고 즐겁게 할 것인가에 집중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휴가가 길어지고, 일하지 않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사람은 무료함과 자괴감을 느낀다. 시간을 사용하는 법은 가르치지 않았고 배우지도 않았다.따라서 사람의 창조력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라는 예상은 일리가 있다.


 이 과정에 다다르기까지 책은 혁신적인 스타트업이 많은 이스라엘과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지만 수동적인 학습의 굴레와 fast follower의 위치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산업의 특징을 지속적으로 비교하고 관찰한다. 그 비교과정을 보면서 나는 동양의 고전도 그들의 사고와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을 한다. 문득 중용과 노자의 구절이 교차한다. 왜냐하면 혁신은 서로 다른 것들의 접점에서 생성된다. 서로 다른 것들의 접점이 시작되는 부분은 명확하게 나뉘지 않는다. 서로 끊임없이 교차하고 변화하며 구체적인 새로운 것이 되어간다. 마치 무와 유의 경계에서 우리 인간의 삶이 있고, 도가 선명하고 명확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서로 다른 의견을 모아서 발전적이고 창조적인 중용의 도를 나가듯 혁신의 방법이란 동양과 서양이 같다고 느낀다. 모두 인간의 인지, 분석, 판단의 과정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창조력이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넓게 알아보고 관찰할 수 있는 정보가 필요하고 그 관찰을 통해서 새롭게 필요를 느끼는 수준과 새로운 필요를 정의하는 높은 수준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빅데이터를 모으듯 사람은 토론을 통한 다양한 관점 즉 정보를 수용하고 분석하게 된다. 나는 빅데이터를 접근하는 과정이 사람이 경험을 축적해서 인식의 틀과 안목을 높이는 과정과 동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 그렇게 어렵게 말을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인간이 딱 보고 인식하는 패턴을 기계가 흉내내도록 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피터 드러커가 남들은 바라볼 때 나는 꿰뚫어 본다고 하듯, 동양에서는 수 천년전에 벌써 공자가 나는 일이관지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런 관심과 필요가 적극적인 토론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질문의 형태로 표출되어야 더 많은 정보를 획득할 수 있다. 우리는 기계처럼 사람이 작업한 결과를 네트워크를 통해서 취합, 분석하는 것이 아니다. 질문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타인의 관점과 정보를 획득한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슬로건은 이러한데 질문을 많이 하면 입막음을 당한다. 너무 창의적인 접근은 보편적 사람들에게 또라이 취급과 왕따를 당한다. 사회에 존재하는 많은 조직도 마찬가지다. 그저 신기방기한 아이디어는 공장 돌리듯 짜면 나오는 줄 안다. 나도 모르는 것을 물어보는 불편함 때문인지, 다른 관점이 불편한 것인지 하여튼 획일적 주입식 교육은 일정부분 효과를 인정하고, 일부 적합한 분야와 사람이 존재하겠지만 모두에게 무식하게 강요하는 사회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질문을 통한 정보취득, 분석등의 결과를 갖고 새롭게 정의된 필요를 알 수 있다. 해결책을 만들기 위해서 목표를 새우고 도전한다. 그 도전이 신이 아닌 이상 성공과 실패의 결과를 양산한다. 장수가 싸움에서 지는 일이 있을 수 있듯, 실패는 불시에 삶에서 다가온다. 중요한 것은 실패를 이해하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에디슨이 전구가 만들어지지 않는 수많은 방법을 획득했다고 말하듯, 실패에 대한 압박과 좌절에서 빠르게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누구나 실패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않다. 한 가지 방법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혁신의 과정으로 나아간다. 가죽을 벗겨 새살이 돋는 과정이란 의미처럼, 혁신은 유쾌하고 즐겁기만 한 과정이 아니다. 쉽게 얻어진 것의 가치가 낮고, 누구나 핸드폰으로 찾아볼 수 있는 정보는 경쟁력이 없다. 그 과정에서 똑같은 것을 보고 새롭게 느끼고, 남들과 다르게 사용할 수 있는 안목과 도전이란 실행력을 키우는 것이 곧 학습과 반복을 통한 지식과 경험의 축적이다. 


 지식과 경험의 축적은 결국 시스템과 교육을 뛰어넘게 되어 있다. 시스템이란 하나의 틀에 그 목표를 위해서 사람을 가두는 것이다. 그 굴레를 경험하고 다시 그 굴레를 벗어나야 높은 수준에 다다를 수 있고, 교육이란 과정을 통한 지식을 축적하고, 그 교육이 편견임을 자각해야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학습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라는 도전적인 정의를 통해서 피터 드러커의 통찰력에 다시 한번 깊이 공감하게 된다. 책의 내용을 내 나름의 이해로 정리하며...


#김대식 #4차산업

인연이 모여 인생이 된다.

2017.08.12 22:00 | Posted by Khori_聰 明 强 Khori(高麗)


 한 때 PD라는 직업은 내 삶에서 큰 의미가 있었던 때가 있다. 돌아보면 꼭 신문방송학과를 간다고 PD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잊혀진 꿈이 있다. 90년대 일요일 밤을 주름잡던 프로그램의 PD이야기를 읽으며, 사람이란 보여지는 모습과 자신이 걸어가는 삶 사이에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그 이야기의 깊이와 공감을 통해서 배움과 스스로를 돌아보는 기회가 된다.


 인연의 주제로 친구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 담겨있다. 만나면 좋은 친구라는 마봉춘의 광고 노래가 생각나다. 그가 오랫 동안 몸담아온 조직과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가 비슷하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나에게도 친구들이 있다. 중학교부터 이어오는 친구들이지만 자주 보지 못한다. 그런가하면 한 업종에 오랜 기간 종사하며 친구처럼 지내는 동업자들도 있다. 함께 한 시간만큼 서로를 알아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주철환의 이야기처럼 시간은 대단히 소중한 것이다. 그 시간이 세월이 되어 좋은 추억이 되는 것은 감사한 일이고, 고난의 시간이 저주스럽기도 하지만 그 과정을 거치고 무엇인가에 다다른 시간은 또 기쁨의 것이다. 벗어날 수는 없지만 고생과 후회의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좀 더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방법이 최선이다.


 그 과정에서 인연이 닿아 만나는 모든 사람이 인연이다. 그 인연의 깊이가 서로 다를 뿐이다. 그 인연의 깊이가 더 해가면, 그의 말처럼 "그 사람이 잘 되기를 바라고, 그가 잘 되었을 때 기쁜 것이고, 그가 도움을 요청할 때 내가 도울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즐겁게 돕는 것이다". 인연의 깊이는 내가 고난에 처했을 때 알 수 있다. 굳이 확인하려는 노력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많이 베풀어야 한다.


 책 속에서 그가 하는 말은 당연한 이야기를 당연하게 하는 듯 담백하다. 그 많큼 사색과 성찰의 깊이가 있다. 몇가지 좋은 문구를 다시 써 보기전에 감사한 생각과 세월은 누가 친구인지를 다시 알려준다는 의미가 내가 걸어온 길과 걸어갈 길을 생각하게 한다.



 "자신과의 대화는 사색이 되고, 타인과의 대화는 사랑하는 법을 깨우쳐 주는 길"


 고독하게 혼자 사색만 하는 자는 철학자도 깊이도 얻을 수 없다. 세상은 언제나 사람들과의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이다. 사랑하는 법을 잘 알아야 하는데 나는 그렇지 못한 듯 하다. 내 눈에 들어온 들보가 항상 아른거리기 때문이다. 그 대상이 미워서라기보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그것이 남들을 힘들게 한다면 좋은 과정은 아니다. 내가 가야할 길을 바꾸거나 낮춰서 타인이 만족한 이야기만 쓸 수도 없다. 특히 그것이 함께 하는 사람들을 이롭게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 경계에서 갈등이 많다. 저자는 관찰, 관심을 이야기하지만 어쩌면 세상에 너무 많은 관심도 병일지 모른다. 좋은 이야기와 나의 이야기는 더 생각해야겠다.



 "시간은 신이 준 최고의 선물이다"


 시간은 신과 자연의 기준이다. 인간은 시간에 종속되어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통제할 수 없는 시간은 항상 억울한 존재다. 하지만 흐르는 시간을 거쳐 성과를 확인하고, 삶의 이야기를 채워가는 방향으로 생각하면 시간은 축복의 선물이 될 수 있다. 가끔 스스로와 인간이 만드는 저주의 시간이 있다. 그런데 시간은 항상 그것의 바른 결과를 끌어내는 힘이 있다. 사람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시간을 들여 장점을 보는 것은 마음에 품고 노력해야 한다. 나는 반대의 것을 찾는 능력이 좋은 편이었다. 지금은 장점을 보는 눈이 조금 뜬 정도다. 그것을 잘 활요하는 인품을 더 닦아야 한다. 그런데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전자는 말하지 않아고 드러나고, 후자는 좋은 친구와 같은 애정과 사랑을 갖아야 볼 수 있다. 그것이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고 또 어려운 일이다.

김대식의 빅퀘스천

2017.07.23 20:45 | Posted by Khori_聰 明 强 Khori(高麗)

 Dell Conference에 저자를 본적이 있다. 인공지능의 기대와 현재 수준과 사람과의 차이점을 다양한 비유를 통해서 아주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말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공감이 생기는 비유를 잘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하나를 배워서 이를 여러곳에 사용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주제같은 내용을 잘 연결함으로써 신선함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보다 주어진 그 자리에서 효과적으로 세상의 변화와 변화와 관련된 자기 분야를 설명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책의 제목에 씌여진 Big Question이란 말이 재미있다. 그렇게 크고,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31개의 질문 중 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타인에게 묻고, 스스로에게 반문하는가? 질문 상당 부분은 일상이란 삶속에서 묻혀갈 것이다. 이런 핑계라도 해야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말보다는 상황에 적합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질문은 인간이 직면하는 상황과 그 상황의 깊이 있는 고뇌와 성찰속에서 제기 될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한다. 당장의 삶에 영향을 주기 않는다면 일부를 제외하고 이런 생각을 할 겨를이 얼마나 있겠는가? 동양이나 서양이나 철학 사상이 혼란기를 거치며 다양하게 발현것이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새롭게 변화하는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도전하는 인간의 노력의 결과, 보다 나은 생존 방식을 결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31개의 질문에 대해서 적절하게 답하기가 쉽지 않다. 아니 답하기가 쉽지 않다기 보다는 상당 부분은 알수가 없는 것이 많다. 그래서 다양한 현상을 통한 의견이 분분하다. 그런데 왜 이런 질문을 던질까하는 생각을 읽는 내내 생각해 보면 자연스럽게 독자 모두가 철학을 하기 시작하는 과정에 들어서게 된다. 


 세상의 복잡성이 미래의 불확실성을 더욱 크게 확장시켰다. 그랫서 그는 다시 근본적인 문제로 돌아가 본질을 접근하는 생각의 기법을 다양한 주제를 통해서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도 들었다. 마치 마이클샌들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정의를 위해서 다시 회귀했다가 돌아오는 것처럼 말이다. 그 과정에서 저자가 보여주는 서양 과학, 철학, 신화, 문학등 다양한 지식의 논거는 화려하기는 하지만 일일이 다 이해하기는 어렵다. "보셔서 알겠지만, 읽어 보셨겠지만"은 주관적인 판단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래서 찾아보게 된다.


 다양한 질문에 대한 정답은 없다. 내일은 또 오늘과 다르게 변해갈 것이고, 예상과 같은것과 다른 것이 혼재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어진 질문과 이야기들을 통해서 읽는 이를 스스로 상상하고 철학하게 만드는 것은 대단히 효과적이다. 각 마지막 한 단락에는 자신의 생각을 기록해 두었다. 이 부분을 통해서 다가오는 미래에 대해서 우리가 생각해야할 화두를 다시 던진고 있다. 정답이라기 보다 현재보다 다가오는 미래에 효과적으로 변화하기 위한 생각을 해보자는 권유로 들린다. 특히 각 질문과 사진, 그림이라는 visualized data를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런 모습이 현재 변해가는 모습을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모든 인간은 철학적 사유를 하고 산다. 31가지의 질문은 이런 철학적 과제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일상과 상관없는 이야기 같지만, 세상이 움직이고, 그 움직임에 사람이 있고, 그 사람들이 어떤 생각들을 그 시대에 갖고 가는 가는 중요한 문제다. 


 동시에 인간의 문명이 축적되어 쌓아온 인간에 대한 성찰과 기록은 클라우딩 컴퓨팅을 통한 data science를 하기 위한 인간패턴의 데이터라고 볼 수도 있다. 이 패턴을 통해서 우리는 기초적인 인간 본질에 좀더 다가갈 것이다. 그래서 좋은 질문이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질문의 대부분은 또 철학적이다.


 인간의 본질과 기술적 변화가 축적되는 인간문명의 조화와 균형이 그 시대를 좌우한다고 믿는다. 문제가 없던 날이 없듯이, 이런 질문은 지구상에 끊임없이 계속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질문을 통해서 또 다시 나아갈 방향을 끊임없이 찾아가는 인간의 고뇌와 그 고뇌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적인 발전도 지속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구를 뽑아야 하는가? (How to choose a leader)

2017.06.11 20:33 | Posted by Khori_聰 明 强 Khori(高麗)


1. 덜 사악한 쪽을 선택해야 한다.


2. 눈이 아니라, 손으로 만져보고 판단하라


3. 공화국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공공선이다.


4. 시대에 맞춰 행동을 바꿔야 한다.


5. 대담한 사업을 펼치려고 하는 후보를 의심하라


6. 올바른 사람들을 존경하고, 역사를 통해 배우려는 후보를 선택하라.


7. 패배 앞에서 비국해지지 않고, 성공에 심하게 도취하지 않는 사람에게 공화국 운영의 키를 맡겨야 한다.


8. 견고한 도덕적 이념과 건전한 종굑적 신념을 가진 후보를 선택하라.


9. 미래 세대와 관련해서 자신의 명성에 신경을 쓰고, 진정한 영광을 얻으려는 야심을 가진 사람을 찾아야 한다.


10. 부패와 싸우는 것은 참된 지도자의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한다.


11. 공정한 공화국은 시민들의 사회적 지위와 산광없이 덕과 공공선을 위해 기꺼이 봉사하려는 자세를 보상하고 격려해야 한다.


12. 우리 모두가 각자에게 공평한 세금을 부담하도록 하는 후보자에게 투표하라.


13. 권좌에 너무 오래 머무른 사람은 위험하다.


14. 한 국가를 신념의 공동체로 만들고자 하는 사람을 뽑아선 안 된다


15. 어떤 계획이 국가의 자유를 보존할 것인가?


16. 우리의 후보자는 특별 권력을 수용해 현명하게 사용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17. 대통령의 최우선 사항은 평화를 지키고 증진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19. 국제 문제에서 중립은 일반적 원칙이 되어선 안되며, 예외적으로 선택되어야 한다.


20. 공화국의 몸에 새로운 삶을 불어넣는 올바른 방법은 정의와 종교의 건국이념으로 공화국을 되돌려 놓는 것이다.


금년 3월에 나왔으니, 선거를 의식한 책일 것이다. 그런데 목차를 죽 써놓고 보면 우리가 사람을 보는 안목의 기준으로 써도 크게 틀리지 않다. 

담론(談論)

2017.06.04 21:29 | Posted by Khori_聰 明 强 Khori(高麗)

 신영복 교수의 책은 집에 들여두면, 시간을 흘러보내야 읽게 된다. 처음처럼이란 책을 제외하고는 모두 그렇다. "강의"란 책은 무려 1년이 넘게 걸린 듯 하다. "나무야나무야"도 최소한 몇 달을 흘러보낸뒤에 듣게 된다. 

 

 이번에 읽게 된 "담론"도 일년이 넘었다.  가방에 넣어 다닌지 오래되다보니 책표지가 닳았다. 누가보면 열독을 한지 오해를 하게 생겼다. 팟캐스트로 진행하는 강의, 북콘서트 몇 자락 듣고 나서도 책을 잡지 못했다. 그 사이에 일면식이 없지만, 저자와의 이별을 했다. 책을 읽는 중간에 다시 팟캐스트를 다운로드해서 들어보게 된다. 


 마지막 강의라고 말하고 마지막 강의가 되어버린 사실이 충분하지 않다. 담론이란 책 속에 신영복이 그려온 사람의 무늬와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 진실될 이야기를 적층해서 한 권의 책속에 그가 하고자 하는 생각, 그 생각을 실천한 발걸음이 있다고 믿는다. 책의 띠지에 드러난 그의 얼굴을 통해서 나는 또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돌아보게 된다.


 책은 크게 두가지 이야기로 나뉘어 있다. 시경, 논어, 노자, 장자, 묵자, 법가등 춘추전국시대의 동양고전을 물흐르듯 펼쳐나간다. 큰 얼게는 "강의"란 책과 같다고 생각한다. 매번 그가 설명하는 구절을 볼 때마다 고전을 접하는 맛이 다르다. 대부분의 책들이 글자의 해석과 의미를 가르친다는 압박의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그의 글은 누구를 자르치는 주종의 관계가 아니라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설명하듯 따뜻하다. 이 또한 책을 대하는 나의 마음자세에 따른 것이리라. (http://blog.yes24.com/khori/8026664)


 나에게 다가온 장은 "사실과 진실"이다. Fact와 Truth의 차이는 같은 듯 다르다. 진실은 보다 다차원적인 사실을 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한 장의 사진과 한 편의 영화만큼 차이가 있다. 그 차이만큼 진실에 다가가는 이야기는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이 인간이 그려내는 무늬이고 바로 인간문명의 한 조각이자 씨앗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중간중간 이런 좋은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동시에 대체 내가 뭘 제대로 알기나 하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것이냐?라는 자문 자답을 한다. 스스로 공부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설명해보고 다른 이야기도 듣고, 반응이 좋으면 잘 활용해 보기도 하는 교감과 공감을 한다. 회사생활을 하며 좋은 선생님을 찾아다니는 것은 어렵다. 삶의 선행자를 책으로나마 만나야 하는 이유이고 즐거움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하나의 관계도 그렇게 쌓여갈 것이라 생각한다.


 세상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것처럼 이상적이거나 단순하지 않다. 사회라는 곳에 발을 내딛은 시간이 그리 적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멋진 가면을 쓰고 품격과 예절바른 행동속에서, 정글과 같은 행동양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춘추전국시대의 인간 군상은 수 천년전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현재에 존재하는 인간의 다양한 양식이기도 하다. 그 속에서 상처도 받고, 고난을 겪으며 희망과 행복을 꿈구며 살아가는 것이 삶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슬프지만 또 다르게 보면 숙명이다. 


 "비극에 공감하는 것은 그것을 통하여 인간을, 세상을 깨닫기 때문입니다"라는 구절이 있다. 사람이 가장 정확하게 배우는 것은 실패를 통해서다. 태어나면 백지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것도 인간에게 주어진 굴레다. 시지프스의 신화가 바위를 갖고 표현했다면, 신영복 교수는 인간의 굴레를 이렇게 쉽고 품격있게 표현한 것이란 생각을 한다.


 후반부는 많은 부분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사실 이책도 산지가 오래되었는데..), "나무야나무야"의 구절을 많이 인용하고 있다. 그 중에서 "관계와 인식", "상품과 자본"이란 부분입니다. 그 중간중간 신영복이란 사람이 체험하고 고뇌하고 성찰하던 세상의 이야기있습니다. 인간의 원초적 감성을 솔직하게 들어냅니다. 그래서 더 따뜻한 마음과 공감, 입장의 동일함을 느낄 수 있어 참 좋습니다.


 상품과 자본이란 장을 통해서 우리 배워온 경제학(생존학)이 세상에서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대학을 나와서 전공에서 배운 것이 사회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움직이는지를 이해하는데 많은 시간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일부는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배웠는데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니 가르쳐줬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내가 갖고 있는 관계와 인식이 교과서를 답으로 여기고 외우고 쓰는데에 여념이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자본주의의 부흥과 그 폐단의 횡포속에서 살고 있는 지금 어떻게 대책을 세우고 살아갈 것인가를 돌아보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경제가 살아가는데 중요한 분야이지만 이도 삶의 입장에서는 비중이 높을 뿐 전부는 아니니까요. 


 책의 끝자락에 이야기하는 노교수의 당부는 그래서 참 고맙다는 생각을 합니다. "살아가는 이유와 먼 길을 떠나는 사람에게 드리는 길채비"가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깨닫는 삶이란 이유는 진부하다는 생각도 하게 합니다. 똑같은 하루가 없는 변화하는 나날을 살아가는 우리는 매일 새로운 정보와 관계를 만들어 갑니다. 매일 공부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자각하고 깨달아야 한다는 것을 한참의 시간을 들여서 알아갈 뿐입니다. 


 다른 하나의 이유는 "자기의 이유"입니다. 저는 정체성이란 말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마다 결이 다르고, 격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격을 다듬어 가며 자신만의 무늬를 채워 세상과 조화를 이루는 일이 정체성이란 말로 쉽게 교체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사실과 진실사이의 이야기를 채우고, 나와 관계하는 대상을 통해서 나의 존재를 다시 인식합니다. 이를 통해서 존해하는 것만으로도 이유는 충분하게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할 수 있다면, 더 나은 무늬, 관계, 조화를 만들어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삶이란 시간에서 자유로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일 부터는 다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 논어를 읽어볼 요량이었는데 담론을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이 많이 차분해 집니다. 얼마나 잘 다르릴지는 또 저에게 달린 일이니까요.

2017 다보스 리포트 - 소통과 책임의 리더십

2017.05.06 20:40 | Posted by Khori_聰 明 强 Khori(高麗)

 매 년초 DAVOS Forum에 대한 기사 요란하다. 각 국의 정상과 기업인들이 모이는 이 회의에 세상이 왜 주목하는가를 생각해보면 멀지만 가깝게 우리의 생활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한국의 탄핵과 정권교체 외에도 양극화문제를 말하고 있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먹고사는 문제의 고달픔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년말의 트렌드 책보다도 세계의 리더들이 구상하는 생각을 읽어보는 것은 미래의 방향을 어렴풋 이해하고, 스스로를 조금이라도 준비하는 계기가 된다. 내년에도 읽어 볼 계획을 갖게 된다.


 책의 화두는 현안의 경제, 사회의 문제를 둘러보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키워드는 소통과 책임의 리더십이다. 현안의 과거의 것이고, 우리가 미래를 위해서 현재 필요한 것을 인식해야 우리가 바라는 방향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바른 인식을 바탕으로 미래 비전은 제시되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을 new world disorder라는 혼돈의 시대로 지금을 정의했다.


 최근의 혼돈은 금융위기 이후에 윤리적인 부분에 기인한 금융위기, 성장지상주의가 절박하게 느끼는 성장 정체이 돌파구,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양극화와 사라진 계층간 이동사다리, 그리고 엄석대처럼 나타난 트럼프, 결국 리스본 조약 50조를 발동한 영국의 브렉시트등 다양한 이야기가 제기되고 있다. 오랜기간 지속된 세계화로 인해서 우리는 벌써 연결되어 있고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말이다.


 내가 재미있게 책에 낙서를 해가며 읽게된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국제사회에서 각 국가들이 문제로 우려하는 세계속의 문제가 작은 국가단위인 한국의 문제와 다르지 않고, 한국의 문제가 내가 속한 조직과 지역사회의 문제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세계의 리더들이 지향하고 우려하는 문제가 대선 정국의 정책대립으로 나타나는 문제가 상당부분 유사하다는 것은 그들이 지향하는 방향이 우리에게도 유효하다고 가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패권이 정체할 때 전혀 다른 형태의 미국 패권이 발현되는 상황은 인지된 순간 대책을 수립할 일이다. 달러의 강세화가 불가피하고, 200억이상의 교역흑자 대상국에 대한 환율조작국 지정이 우려된다면 외교와 교섭이 필요한 일인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렇게 풀어가는 방식이 참으로 쉽지가 않다.


 한국과 이 책의 요약이 조금 다른 점이라면, 그들은 이념이 아니라 새롭게 살아갈 방식과 새롭게 살아가는 방식이 주는 장점과 위험을 함께 준비한다는 것이다. 2016년부터 어젠다가된 4차 산업혁명 4IR을 대하는 리더들의 자세가 그렇다.


 AI를 통한 자동화는 분명 물리적인 효율을 갖고 올 것이다. 그들은 이것 외에도 앞으로 없어질 전 세계 320만개의 일자리에 대한 논의를 하고, 새로운 시대를 준비할 교육의 필요성을 함께 논의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미래사회가 유토피아인지 터미네이터나 매트릭스가 그리는 소외된 인간사회인지에 대한 불안감이 있다. 그런데 그들은 이를 부인하지 않는다. 인간의 윤리와 도덕성에 의지하고 그렇게 가야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한편 이런 의지가 그들도 그들이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 추구하는 AI가 바르게 사용되지 않을때 어떤 문제가 생길지 측정하지 못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 책을 통해서 내가 읽고 생각하는 방향을 강화하고 돌아보고 한다. 특히 소외되지 않을 인간의 권리를 위해서 제도와 법률이 4IR 시대 이전에 조금씩 준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교육에서는 인간의 정체성과 위대함을 일깨우는 인문정신의 교육이 좀더 강화되길 바란다. 세상의 변화와 방향을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그 큰 흐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더 철저하게 이해하고 준비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각국의 4차산업혁명 시대를 준비하는 각 국가정책을 읽어 본 소외로는 독일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를 보면 많이 부족하다. 오래 유지될 본질의 접근이 부족하다. 결국 설국열차의 양끝단이 서로 통하고, 먹고 사는 문제 기초를 해결하지 못하면 사람은 동물적 근성을 끌어내게 된다. 공자가 먹는게 해결 안되지 않으면 예를 알지 못한다고 한말을 뒤집으면 동물적 행동이 발생하는 것은 예의가 없는 것이고 이는 먹고사는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은 것이라 생각한다. 세상을 다각도로 보고 제대로된 질문을 던져야 답을 얻을 수 있다. 더욱 그런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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