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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잡부(天上雜夫)_ 사업관리 시즌 2 (해외영업 시즌 1) )

기다리는 존재들 - 진상과 구세주를 셔틀하는 위성

by Khori(高麗) 2018.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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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리가 4km정도다. 3 만리면 대략 12,000km다. 엄마를 찾아가는 길이 3 만리라면, 시장을 찾아서 돌아다니는 일은 9 만리는 더 된다는 정신적 거리감이 느껴진다.  바오밥나무처럼 생긴 가로수를 보면 조금 걷다보니, 중간중간 나무가 만들어 낸 어지러운 그늘이 아쉽다. 여름이 시작하는 거리의 따뜻한 햇볕이 따라롭게만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어지러운 그림자속을 걷다보니 마치 내 머리속만큼 복잡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딜가도 요즘 참 살기 좋다는 말은 좀처럼 듣기 힘들다. 속이 검게 타듯, 격무로 타들어간 얼굴을 많이 본다. 파트너와 고객이 갑이란 존재보다 공동체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이런 점은 물리적 거리를 느끼면 사는해외영업이 훨씬 큰 것 같다. 그렇게 시대를 함께 넘어가고 있다. 


 다들 자신들의 성공한 이야기를 추억거리로 이야기 할 수 있지만, 그 성공직전까지의 과정은 역경을 넘는 과정이다. 긴 터널을 지나며 내가 바르게 가고 있는지, 동료와 후배들을 사지로 몰아넣지는 않는지 조심스럽기도 한 시절이다. 누군가 해보지 않은 도전은 거의 없다. 구글에서 뭐가 기발한 생각이 떠올라 검색하면 세상에 나보다 앞서서 해본 사람 또는 또라이들이 엄청나게 많다. 그러나 조직으로 한정하면 누군가 해보지 않은 도전은 지천에 널려있다. 나도 동료들도, 그런 우물안 개구리의 시야를 벗어나기 위해서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우물안인지도 모르고 정처없이 지나가는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 업무에 대한 이야기지 삶으로써는 그들이 더 성공적으로 살 수도 있다. 인생은 환율과 주가처럼 어디로 갈지 모른다. 인덱스 경향처럼 그럭저럭 예측하는 것이다.


 무엇을 만들어 내고, 준비를 해서 시장에 다가간다는 것만으로 스스로 기대를 품게한다. 해외영업을 하는 입장에서 그 반응에 들뜨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다. 반면 그 즐거움을 현실로 갖고 오는 고된 과정은 진저리치도록 체험하고 싶지 않다. 특히 체험해 본 고난의 반복처럼 재수없는 것도 없다. 결과가 따박따박 떨어질때로 시간이동을 하고 싶다. 문제는 현실에 그런 일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 말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지만 한 업종에서 파트너가 되어 나를 바라보는 색다른 눈동자들이 가야할 길에 대한 신호등이 된다. 그래서 다시 길을 떠나서 그들을 만나고, 나도 그들이 나에게 다가오길 기다린다. 빨강, 주황, 초록색의 신호가 상태를 알려주지만, 얼굴을 맞대는 목표는 서로 초록색을 기다리고 초록색이 되지마자 신나게 고속도로를 함께 달리는 공통의 꿈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프리젠테이션을 서로 하고, 파트너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서로를 조금씩 닮아간다는 것을 느낀다. 익숙함과는 다르다. 심지어 내가 할 말을 맞은 편에 앉아서 '네가 이것이 어렵지'하고 먼저 이야기도 한다. 반면 가는 내내 잔소리를 마나님보다 더 쏟아내더니 그거 아주 좋다. 더 크게 만들어 볼려고 하는 소리다라는 기특한 말을 하기도 한다. 물론 나도 갑질보다 뛰어난 을질로 속을 태우게 하기도 하고, 서로 절충할 지점에 대해서 운을 띄우거나 선택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서로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살래? 말래?", "살거야, 안살꺼야"와 같은 영혼없는 대화면 충분하다. 내가 연애의 핵심과 사업의 핵심을 각각의 당사자가 협상하는 방식은 본질적으로 같다고 보는 이유다. 진상피고 괴롭히는 것도 비슷하다. 


 그들은 내가 가는 방향을 이해하고 또 다르게 구현한다. 그 다른 것을 보고 배우고 다시 조금 또 다른 변화를 이어간다. 물리적으로 멀리있지만 daily business를 위해서 매일같이 의사소통을 하는 대상이다. 옛말이 그른것이 없듯, 그 속에서 신뢰(utmost good faith)가 구축된다.


 미래 4차 산업의 가장 큰 장벽은 영혼없는 논리의 뫼비우스 띄일 것이다. 편리할 때까지 수용하고, 나를 통제하는 순간 발로 뻥 차버리는 인간의 변덕을 논리로 이길 수 없다. 아무리 좋은 대학의 뛰어난 교수라도 시장통에서 산전수전 다겪은 아줌마 심기를 건드려봐야 얻고 싶은 것을 얻을 수 없다. 과도한 논리는 과학을 넘어 정치적 권력이기 때문이다. 진시황도 망하고, 상앙도 망하고, 한비자도 결국 그 꿈을 펼치지 못했다. 조금 다르지만 히틀러도 일본도 그런짓을 하다가 망했고, 우리 나라도 뭔가 과하게 지르고 다니신 분들의 최후는 바람직하지 않다.


 최근 EU의 GDPR을 보면, 과학의 발전과 기술의 진보를 제도와 법이라는 인간 문명으로 누르는 이유가 인간의 존엄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봤다. 우리가 파트너의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고, 맥주도 한 잔같이 하는 이유도 그렇다. Webnair, email, messenger와 같은 빠른 도구가 있음에도, 얼굴을 맞대는 이유는 기다림에 대한 보답, 상대방에 대한 마음가짐의 문제다. 혹시 VR, AR등을 통한 가상 공간에서 서로 만나것처럼 이야기한다면 모르겠다. 아마 화상회의보다 가상 대면 회의는 반드시 대박사업이 될 것이다. 리쌍의 '우리 지금 만나'의 리메이크처럼 만나는 일은 계속 반복될 것이다.


 이런 과정은 과도한 업무를 만들고, 사람을 지치게도 한다. 여기저기 젊은 친구들의 사직서 이야기를 보면 '나도 한 때 그랬었지'라는 추억을 더듬는다. 지금 나는 하고 싶은 것보다는 잘 하는 것을 통해서 삶을 균형을 잡을 때다. 지속성이 없다면 충실한 삶의 결과를 만들기 어렵다. 잘 하는 것을 만들어 가는 젊은 청춘들의 고뇌가 힘들겠지만 부럽기도 한 부분이다. 이것은 내가 아직 신체적 나이와 지위에서 기대되는 것과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생각의 차이가 만들고 있는 문제점이자 시대 망상적 사고일지 모른다. 그렇다고 그것이 다 불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이 내 정체성을 또 만들어 가기 때문이다.


 망상을 하다가도 다시 원점을 돌아오는 이유는 시장이라고 할 수 있고, 고객이라고 할 수 있고, 파트너라고 할 수 있는 존재들이다. 그들이 나를 기다린다는 이유에는 의미가 있다. 그 의미가 없을 때 나는 일을 그만 둘 때라고 생각한다. 내 스스로 결정을 하며 살아가고, 그것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 삶에 있어서는 중요하다. 나이먹고도 남이 시키는 일을 통해서 살아 가야만 한다면, 나는 윤택한 정도와 상관없이 비참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자유로운 영혼을 갖고 싶다.


 비행기로 이동하는 것도 알고, 몇 일 있다가 회신을 주겠다고 했는데도 전화가 왔다. 감기가 걸린것 같아서 잘 챙기라는 말도 먼저 건냈다. 내가 무엇인가 답변을 해주길 바라는 것이다. 꼭 전화로 목소리를 듣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very very very tired today at home"이라는 인사말에도 "shut up"하며 조르는 목소리가 또 기분 좋게 들린다. 잔소리를 조금 하더니 보아하니 메일도 쓰지 않고 전화로만 이야기를 했다. 녀석도 한참 바쁜가보다. 덕담이라면 '애들 좀 시켜라"정도가 아닐까한다.


 나이가 들어가며 기업간의 기대는 보다 젊은 친구들의 몫으로 남겨야하고 또 넘겨주어야 한다. 실무가 갖고 있는 재미는 실무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의 몫이다. 그리고 그들이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더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역할을 또 조금씩 옮겨가야 한다. 주고 남는 것이 없으면 움켜쥐려 발버둥치다 초라하게 뒷방 늙은이로 퇴장할 수 있다. 그런 삶은 아무도 바라지 않는다. 그러기 않기 위해서는 시장이던 동료던 사랑하는 가족에게 베풀고 남는 자신만의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 기업의 다양한 가치를 신뢰라는 기반에 태워 나누는 것이 작게는 영업, 크게는 사업을 하는 일이다. 그런 현재와 미래의 가치를 시장, 파트너들이 기다리는 것이다. 나의 가치는 내가 하는 일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한다.


 서로를 보면 어떤 반응이 반드시 나와야 한다. 기다리는 님이 될지, 기다리던 웬수가 될지 서로 알 수가 없으니...대개는 연애처럼 님과 웬수의 끊임없는 굴레다. 그러니 자꾸 만나게 될 수밖에 없고 또 기다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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