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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_예술 (冊)

마성의 아이 - 십이국기 0편

by Khori(高麗) 2018.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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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잘못 잡았다. 무료한 일요일 오후에 읽기 시작한 십이국기 0편을 본 소감이다. 정신없이 다 읽고 나니 벌써 늦은 새벽이다. 지난번 십이국기 발매 기념행사로 읽은 가재본 1편이 생각났다. 그때의 즐거웠던 느낌이 그대로 살아난다. 최근에 중고서점에 들렀다 2권을 구매했다. 0편을 읽다 4편까지 주문을 했다. 곧 마지막 권까지 주문할 것이다. 그것이 문제다. 지금이 한참 바쁜 시절이기 때문이다. 책의 시작이 0권인 것도 인상적이다. 나는 아직 1권도 읽지 못한 셈이니까.. 전시회 준비와 월/분기 마감을 아주 효율적이며 집중적으로 처리한 이유가 됐다. 퇴근하고 다시 1권을 시작할 테니까.


 판타지류의 소설을 자주 읽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고전과 현대물이 잘 어울려진 소설은 재미가 있다. 연상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봉신연의, 용랑전과 같은 일본 만화의 선호를 봐도 이 책은 살짝 취향과 맞는다. 물론 묵향처럼 서구와 동양을 재미있게 섞은 판타지도 있지만 거의 20년 가까이 완결되지 않는 소설은 경악스럽다. 나이가 좀 더 들어서 새벽잠이 없을 때 읽기로 한 소설이다. 


 십이국기는 봉신연의처럼 태왕, 기린과 같은 동아시아 전설의 소재들이 나타나는 것 같다. 드래곤 라자와 같이 중세 배경의 주술과 마법, 기사를 배경으로 하는 것보다 훨씬 고급스러워 보인다. 아마도 홍콩 르와르 전성시대에 무협 관련 영화들이 흥행한 시대를 살아왔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자꾸 책을 보는 내내 영화처럼 그려지고 상상되는 이야기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현대 시대의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사라졌던 아이의 귀환은 서구의 차원 이동이 아니라 신화 세계와의 어긋난 교류를 이끌어 냈다. 판타지 소설이 일반적인 문학작품보다 낮게 평가되지만 스토리텔링을 품은 현대적 신화라는 측면에서는 생각할 부분이 많다. 신화가 왜 재미있는가? 인간의 잠재된 본성, 그 시대 속에서 바람과 고뇌가 신화를 통해서 펼쳐지기 때문이다. 


 타카시토는 그런 신화를 상징한다. 뿔을 잃어 버린 태왕의 기린이며 태왕과의 약속을 더듬어 찾아가고 있다. 타카시토는 현대 사회의 동경을 그리고 있다면, 그를 옆에서 바라보며 비슷한 기억을 품고 있는 히로세는 소외된 현대 사회의 모습일지 모른다. 0권의 마지막에 같이 가고자 하는 히로세와 남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타카시토의 모습이 그렇다.


 조금은 반복적인 고등학교의 일상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끊임없이 작은 사건을 쌓아간다. 그렇게 쌓아가는 사건을 통해서 나는 무엇인가를 마음속으로 그려보게 된다. 내가 이 책을 보는 또 다른 이유다. 교육과 이성, 분석이란 틀에 갖혀살다보면 그 논리의 뫼비우스 띠를 벗어나지 못한다. 선뜻 물러서서 바라본다는 것이 쉬워 보이지만 용기가 필요한 부분이다. 그 용기가 생기기 위해서는 여유, 호기심, 신념 등 다양한 요인이 필요하다. 작가의 상상을 통해서 잠시 나도 상상을 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젠 십이국기와 그 속에서 이어지는 이야기 속으로 가고 있다. 히로세가 기억하는 아름답고 여유 있는 풍경이 살아 숨 쉬는 곳인지, 기억이 살아나고 있는 타카시토의 회귀본능이 좀 더 멋지고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끌어갈지 궁금하다. 일단 퇴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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