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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잡부(天上雜夫)_ 사업관리 시즌 2 (해외영업 시즌 1) )

시간

by Khori(高麗) 2017.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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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긴 출장 때문에 연휴라고 별 준비를 할 시간이 없었다. 차례를 지내고, 가족들을 보고 한 일이라고는 푹자고 Game of Thrones를 열심히 본 정도다. 시리즈를 보면서 시간과 때라는 것은 인간이 통제할 영역이 아니고, 미련한 인간은 그 속에서 본능과 이성의 경계를 비틀비틀 걸어다닌다. 그러다 하찮은 재주를 믿고 과분한 욕망을 품는 순간 시간속에서 소멸한다. 눈치보고 무능한 사람이 오래 남아 지식을 쌓아가고, 스스로 지식을 쌓아가는 사람이 가장 긴 런닝타임을 생존한다. 두가지를 더하면 숫컷들은 욕망과 본능의 틀에서 자주 넘어지고, 암컷들은 세상의 우월한 존재임을 증명한다. 그것과 상관없이 생과 사를 가르는 시간의 벽은 공평하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해외영업을 책으로 배우던 대학시절 약속의 중요성을 많이 들었다. 신뢰, 신의, 약속이란 말을 금쪽과 같이 여겨야 한다는 말은 하기는 쉬워도 스스로 지켜나가는 것은 어렵다. 스스로에 대한 엄격함이 따라야 하고, 타인과의 공조가 필수다. 세상의 모든 신뢰, 약속, 신의란 시간의 조건과 함께 한다고 생각한다. 나를 둘러싼 모든 타자와의 그것은 특히나 시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하지만 시간은 항상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기에 우리는 나의 삶에 영향을 줄 때에만 깊이 생각한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4년에서 살려놓았다가 죽어버린 시계를 다시 바라보았다. 약을 갈아주는 곳이 요즘은 찾기 어려워 책상위에 던져 둔 녀석이다. 15살이나 된 시계를 보면서 잠시 시계가 생겼을 때를 돌아봤다. 고객이 고객들을 위해서 100개를 주문하고, 특별히 공급사 담당자인 나에게 한 개를 선물한 것이다. 그 고객 아들에게 다시 돌려줘야 하는데 하는 생각을 다시했다.


 생각보다 쉽게 시계약을 넣어 주는 곳을 찾았다. 아저씨가 약을 교체하고, 초침이 눌린듯 하다며 이것저것을 만진다. "요즘 시계 약 갈아주는 곳 드물죠? 오래되었다더니 무브먼트가 요즘도 쓰는 거네요" 하신다. 처음 시계속에서 누드로 튀어나온 시계를 보게됬다. 다시 돌아가는 시계를 바라보니 기분이 참 좋다. "덕분에 오늘 좋은 일이 생길것 같아요!"하며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사람을 만나러 가는 시간이 다가오고, 또 나의 삶의 시간도 살아움직이는 것 같다. 

 

 후배와 밥을 먹고 함께 가던 작은 맥주가게에 갔다. 자주 먹던 스텔라를 찾다보니 멀리 한대수 앨범이 보인다. "희망의 나라로"라는 노래가 생각났다. 얼마전 무엇인가를 함께 할 기회를 찾아보자고 했는데, 막상 그 때를 만들어 보려니 지난 달 회사를 옮겼단다. 찾아주는 사람이 있어서 고맙다는 말을 하는 녀석을 보자니 나도 참 듣기 좋다. 누군가 나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듣는 것은 삶에 떨어지는 작은 즐거움이다. 그가 하는 말들을 세기며 '세상에 나와서 너도 이것저것 많이 배우고 고생도 많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자신의 삶이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며 산다. 그렇게 생각하는 현재의 시간이 가장 고단한 시간이다. 하지만 왕좌의 게임 대사처럼 winter is coming인지 winter is upon you인지 사람은 알지 못한다. 그것이 지나가고 삶의 시간이 다 했을때 winter was coming인지 winter was upon you인지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인간이 희망이란 단어를 만들어 품고 스스로를 동기부여 한다. 그 과정에서 삶은 또한 극적인 전환점을 맞이하기도 한다. 그것이 좋은 방향이던 나쁜 방향이던... 어째던 스스로 시간을 만들어 함께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보기로 했다. 


 무엇인가 필요하다고 떼를 쓰는 것은 어려서 충분히 했다. 때가 무르익기 위해서는 나의 뜻이 상대방의 마음에 담겨야 한다. 나는 내 맘에는 담는 것은 나은듯한데, 내 마음이 타인의 마음에 담기는 것은 항상 부족한것 같다. 해외영업이던 국내영업이던 영업의 세계에서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 진심과 신뢰가 있다. 맥주만큼 톡 쏘는 즐거움을 갖고 헤어졌다. 집으로 가는 길도 멀고, 전날 나의 night watcher같은 녀석의 잔소리를 듣느라 과음한 이유도 있다. 이런 사람들이 주위에서 던져주는 냉정한 말들이 사람들을 보는 즐거움이기도 하다.


 오늘은 우리 마나님이 주말에 여자랑 데이트하냐는 의심을 사게 만든 녀석을 만났다. 우연히 만나서 그리 오랜 시간을 함께 하지 못했지만 그 이후로도 자주 만나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해왔다. 가끔 영화도 보고, 같은 업계에 있다보니 사는 이야기, 서로 궁금한 것도 물어본다. 오늘은 초딩입맛끼리 만나서 점심부터 건전하게 떡볶기를 먹으러 갔다. 아저씨 둘이 앉아서 오붓하게 먹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다. 죄다 초딩을 졸업한지 얼마 안되보이는 중학생과 연인들 뿐이다.


 이녀석도 함께 일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한 번씩 떠보면 "어휴. 누굴 잡아 족칠려고 그러셔요?"하며 엄살을 부린다. "오~ 그러면 내가 몇 달뒤에 너네 회사 사장님을 만나서 인신매매를 하자고 해볼께. 최소한 연봉은 올려주겠네"라고 했더니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다. 


 세상에서 나와서 보면 언제 입학하고 졸업했는지 가물가물한 대학교 이름을 팔아먹으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가하면 세상에 나와서도 삶의 공부를 계속하는 사람들도 있다. 천재성과 지속성을 함께 갖은 뛰어난 인재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후자가 삶의 역전승을 만들어 준다. 시간을 어떻게 쓰는지를 아는 것이다. 나는 못난 놈이 학벌따지고 살고, 잘난 놈이 학교를 빛낸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졸업할 때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 졸업하고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지에 따라서 결정된다. 못난 놈들이 쳐지는 실력을 묵시적 카르텔로 극복하려고 치우쳐진 편을 만들 뿐이다.


 주인님은 교회갈 시간이고, 솔로부대 후배는 일요일 오후가 한가하시다. 읍내 산보겸 북촌마을을 가보기로 했다. 개방된 작은 ㄱ자 한옥에서 전통가구를 전시한다. 어려서 살던 기와집이 이집보다 훨씬 넓었다. 앞뜰의 마당도 더 넓고, 대청마루도 있고, 대청마루 밑에는 어려서 기르던 '마루'라는 세퍼트도 있었다. 내가 어려서 몇 번이나 탈려고 매일매일 고심하던 녀석이었다. 여름이면 빨갛게 잘 익은 앵두가 열리는 나무도 예닐곱그루가 있었다. 이 집에는 우물자리도 없다. 양옥집으로 개축을 하고나서는 온 동네를 바라보는 2층 베란다가 생겼었다.  


 일몰을 찍어보려고 했는데, 작은 점이 달인가보다. 집안 여기저기 전시된 문갑, 책상들을 바라보다 시간이 거꾸로 흘러가는 듯 하다.


 그래도 하늘이 넓게 열리는 한옥집 마당에서 키가 큰 나무와 담장 넘어로 보는 세상은 참 정겹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지만 어렸을 때의 추억은 항상 깊게 남는다. 조금 더 나이가 들면 마당있는 집을 지어보고 싶다. 사람은 땅을 밟고 하늘을 보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그런 생각이 든다. 


 양철로 물받이를 한 처마보다 이렇게 전통양식으로 된 처마가 참 멋있다. 저 멀리 현대식 건물이  내가 걸어가는 방향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복을 예쁘게 차려입고 가는 외국사람과 쉴세없이 듣게 되는 중국어가 잠시 돌아보던 과거에서 현재로 나를 재촉한다.

 

 슬슬 집에 갈 때가 되었다. 전통양식의 한지를 잘 붙여놓은 미닫이 문이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혼례를 끊내고 첫날밤이면 온 동네 사람들이 문에다가 구멍을 뚫는다. 어려서 안방 문짝에 침을 발러서 구멍을 몇 개 냈다가 된통 혼난 기억도 난다. 숫가락으로 엿바꿔 먹었다가 맞은 기억보다는 좋은 기억이다. 


 다가오는 시간과 옛 시간으로 돌아갔다 오는 시간속에 여러 사람이 교차 반복되는 어제 오늘이다. 해외영업이란 어찌보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일인 직업이다. 그러다 보면 이런 만나속에 일과 삶의 구분을 명확하게 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모든 사람들을 어떤 목적이나 부담이 생기면 일이고, 편하게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일이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꼭 나누기가 쉽지 않다. 단지 삶의 시간과 과정속에서 서로의 거리가 가까웠다 멀어졌다 할 뿐이다. 문이 내부와 외부를 가르는 경계이지만 이를 통해서 만나서 헤어지는 것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처럼...


 슬슬 집으로 가는 길을 재촉하다보니 헌법재판소가 보인다. 사진이 잘 나오는 곳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딱딱한 모습과 달리 사람들에게 더 다가오기 위해서 만들어 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고보니 이곳도 2017년이란 시간속에서 참 복잡다난했던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위로 날아가는 구름은 참 보기좋다.


 그렇게 후배랑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낙원상가, 인사동, 광교, 시청앞까지 걷게 된다. 명절 연휴라 시청근처에서는 현대무용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즐거움의 시간속에 있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오는 길에 팀원에게서 카톡문자가 왔다. 기안을 다시 올려서 지금 결제 대기중인 문서를 반려해 달라고 한다. 작년엔 조금 속상해 하더니, 금년에 끊임없이 노력해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낸 녀석이다. 이것저것 자꾸 카톡이 와서 전화를 했다. 사무실이란다.


 일요일 저녁 늦은 밤에 왠 지랄이냐고 농담을 해줬다. 얼른 집에 가라고 했더니 연휴도 길고 쉬지 않는 고객들 때문에 오후에 나왔단다. 그렇지 않아도 다음주에는 찾아온다는 고객들이 많아서 내일은 잠시 사무실에 들를까하던 중이었다. 누가 십원짜리 동전하나라도 줘서 그런것이 아니다. 찾아 주는 것이 고마운 후배처럼 나를 찾는 고객들이 있다는 것은 항상 고마운 일이다. 나를 찾는 이가 없는 것처럼 처량한 일도 없다. 이런 것은 삶이란 관점에서 바라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몇 일전 팀장의 주말카톡에 대한 글을 봤다. 주말의 업무지시는 상당부분 팀장의 잘못이다. 해외영업에서 시급성이나 시차로 인해서 오는 고객연락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지시란 주말에 하나 월요일 오전에 하나 차이가 없다. 아님 미리미리 점검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들에 팀장도 주말에 카톡받으면 대답을 해줘야한다고 답글을 달아줬다. 팀장들도 힘들다는 불만이 아니라 젊고 어리다는 특권은 끊임없이 질문하는 권리가 있는 것이고, 나이가 들어갈 수록 질문하는 그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답변과 자신의 이야기를 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제 오늘 무엇을 생각하고 취하고, 무엇을 흘러보내고 잃어버렸는지 생각해 보게 한다. 그런데 자꾸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여튼 다음주부터는 엄청나게 바쁜 10월이 열린다. 꽉 채웠으니 즐겁기도 하고, 채우기 위해서 다시 버리기도 해야하는 10이란 숫자가 또 변화의 계절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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