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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_인문_사회_정치 (冊)

주진우의 이명박 추격기

by Khori(高麗) 2017.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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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오늘 볼 때 갖다 줄까?"라는 한 마디에 군말 없이 OK 했다. 받고 나서는 한 권사서 볼껄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라는 생각을 되짚어 보는 저녁이다.


 나는 이명박이란 사람과 관련이 없기도 하고, 관련이 있기도 하다. 그가 살던 시대에 같이 살았다는 것이 연관성이자 하나의 불운이다. 그 시절의 기억이 불쾌하고, 지금도 그 결과를 보면 분노할 수밖에 없다.


 세상에서 물질적으로 소외된 계층에 대한 비정한 정책, 간접세를 올리고 SOC사업이란 이름으로 자행된 사기 사업, 자연파괴, 네티즌 미네르바의 지적 수준도 대응하지 못하던 경제각료, 4대 강을 시작하고 중소기업들에 대한 지원 축소, 정부 주도 산업기술 육성 정책의 실종, 쌍용차, 용산참사, 민간인 사찰이 그랬다. 막상 쓰다보니 정말 세상을 크게 후진시켰다. 무엇보다도 자유로운 생각과 발언을 고소와 소송으로 막기 시작한 새로운 형태의 독재가 심각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신들이 원하는 틀과 형식의 제약을 가하는 것은 고문과 같다. 나는 이것이 가장 싫었다. 사람을 빈곤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을 쓴 저자는 그가 사회적 존재로써 구성원들에게 강요한 결과와 정권을 획득한 정치지도자로서 행한 결과에 대한 분노가 있다. 궁극적으로 자신의 탐욕을 위한 과정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충분히 그럴만한 개연성이 차고 넘친다. 공공의 자리는 전 사회 구성원의 이익을 위하는 형태여야 하며, 전체의 이익이 증가해도 소수의 이익을 대변한다면 그것은 곧 실패다. 부정과 부패는 그 고리에서 발생한다.


 과거에 제시한 공약을 지금 돌아봐도 우리에게 전해주는 교훈이 많다. 통상의 사기란 쌓아온 신용을 금전적인 것과 바꾸는 행위에 가깝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그렇다. 하지만 정치나 고도의 사기는 금전적인 이익이 있을 때까지 미래의 그림을 믿게 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렇게 선량한 사람들의 마음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의도적으로 기만했다는 것은 용서받기 힘들다. 개인들의 관계에서도 돈 만원보다 남에게 해가 되는 의도적 행동이 더 큰 분노를 일으킨다. 사람은 감성적인 부분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도덕적으로도 현실에 발생한 피해에 대한 책임의식이 없어보인다. 법적인 책임에서도 아직까지는 대단히 자유롭다. 그가 말하던 반값 아파트 같은 허황된 공약을 보면 기가차서 웃음이 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속았다. 탐욕의 생각도 잘못이지만, 그 탐욕이란 욕망을 부추킨 악마의 속삭임도 결코 용서받지 못할 일이다. 머리가 좋다고 생각하지만, 성품은 사람이 갖아야할 기본에서 크게 벗어났다고 보는 것이 명확하다.


 현실에서 그 죄를 용서받지 못한다면, 하늘나라에 가서도 용서받지 못한 그 죄의 굴레 속에 영생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주진우라는 사람이 그 사람을 쫒고 그의 악행을 쫒는 일은 어쩌면 그가 용서받을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라는 생각도 든다. 차라리 현세에도 그 죄를 단죄받되 죄사함을 받지 못하고, 하늘에서도 부족한 죄를 계속 받는 것을 생각도 해본다. 나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은 사람에게 이런 심한 저주를 생각하는 것이 이상하다. 나의 마음속에 나쁜 생각을 품는 것도 옳지 못하다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세상에 오물을 두루 넓게 뿌린 댓가는 반드시 피하가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국가는 기업과 달리 국민이 존재하는 한 세금을 걷을 수 있다. 기업운영과 다른 자원구조로 그런 생각을 하다가 망하는 나라들도 있다. 그러나 경제적인 이유로 나라가 없어지는 예는 대단히 드물다. 그래서 더 나쁘다. 함께 하는 모든 국민들의 주머니에서 돈을 훑어 자신의 주머니를 채웠다면,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서 온갖 제도와 법률이 허용하는 권한을 사리사욕에 쏟았다면 나는 주진우라는 기자가 반드시 원하는 것을 얻을 것이라고 믿는다. 세상은 그렇게 정화되어 왔다. 그리고 나는 그 정화의 과정과 진실의 모습을 살아생전에 꼭 보고 싶다. 그래야 대한민국의 청춘들과 아이들이 살아갈 시대가 좋아지지 않겠는가? 


 역사를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역사속의 과오가 현실에 다시 나타난다. 이런 시대의 주역을 보고서 배우는 것이 없다면 또 다시 대한민국에 유사한 일이 우리의 미래, 아이들이 성인이 된 시대에 다시 나올 수 있다. 그런 일은 왜정시대나 한국전쟁과 같이 절대로 바라는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반드시 바라던 결과를 학수고대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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