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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공연 (劇)

7인의 사무라이

by Khori(高麗) 2017.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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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라이(侍)라는 글에는 모신다, 임하다라는 뜻이 있다. 아마도 주군을 모시는 기사(Knight)와 같은 의미같다.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부족함이 있지만, 주군을 모시고 세상의 큰 뜻을 펼치다는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됬다. 반면 낭인이라는 불량스러운 이미지도 넘쳐난다.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1954년도에 만들어진 영화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한국전쟁 전후 조금 나아진 일본의 경제상황인지 모르겠지만 이 정도의 작품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 시대를 고려하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일본을 동경하지는 않지만, 꽤 괜찮은 일본인 개인들을 통해서 깊은 사고관, 치밀함, 프로세스나 시스템의 틀을 착실하게 이행하는 순수함은 꽤 매력적인 부분이 있다. 세상에 이런 문화가 전체적으로 넓게 시스템으로 남아 있는 나라를 보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채플린의 흑백영화를 보면 짧은 무성영화의 특성이 재미에 치중된 느낌을 받는다. 그러다 조금 스토리가 길어진 영화를 보면 스토리와 채플린만의 장기가 묻어난다. 그 후 서구의 명작을 극화한 영화를 보면 책과 다르지 않다. 안소니퀸의 조르바를 보면 대사가 책과 거의 동일하다. 이런 서구의 명작을 영화로 본다는 것은 책을 한 편 읽는 것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과거 영화의 한가지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스토리가 책에서 기인한것 같지는 않다. 시나리오 스토리가 현재에 리메이크를 해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도적떼의 위기에 처한 피지배계층인 농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금과 다르지 않다. 구원의 손길을 기대하기 보다 자발적으로 무엇인가를 찾아간다는 것은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기대를 갖게 하기 때문이다. 물론 시작 장면처럼 열악한 조명으로 흑백의 암영이 더욱 선명해지는 것이 있지만, 아날로그적인 사람의 감성과 4:3의 화면비율이 주는 옛 추억을 함께 느낄 수 있다.

 

 정의의 사도를 요즘 말한다면 옛 이야기에는 권성징악이 테마가 많다. 현대극의 이야기에서도 선과 악으로 대립되는 이야기는 무수히 많다. 이를 통해서도 인간은 선이라는 바름을 좋아한다는 것의 반증이라고 생각한다. 농부들이 무려 사무라이를 고용한다는 파격은 대단히 재미있다. 이는 중세 농부가 기사를 구해서 성을 지키는 것에 견주어 본다면 이보다 더 재미있는 스토리가 있을까? 동시에 전쟁의 결과 주군을 잃어버린 사무라이의 정체성과 혼란기의 백성들이 혼열일체가 된다는 구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무엇인가 큰 진보와 발전을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계층간의 협력과 상생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사회적 필요, 상하공존을 인식하는 조직의 collaboaration, alignment로도 생각을 옮겨볼 수 있다. 

 

 아마 제대로 검도를 하는 배우는 유일해 보인다. 묵묵히 자신의 검술세계를 유지하고, 잔잔한듯 온화한 모습, 솔선수범을 뵈는 자세를 통해서 배우는 바가 많다.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절제된 강렬함을 보게 된다. 이 영화에서의 재미는 6.5인의 사무라이가 갖고 있는 다양한 캐릭터의 스케치다. 많은 경험을 지혜로 발현하고 사람들을 리딩하는 모습과 각각의 역할을 채워가는 사람들, 철부지 아이가 삶과 투쟁을 조금씩 배워가는 모습,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자신이 겪은 부조리를 깨기 위해서 사무라이를 지향하는 사람까지 아주 다양한다. 그렇게 모여서 주군이 아니라 나라의 근본인 백성을 보호한다는 시나리오는 어디에 내놔도 빠지는 곳이 없다.


 세 시간이 넘는 런닝타임도 대단하지만 잠시 쉬라는 자막도 재미있다. 어려서 모세의 기적이 나오는 영화를 잠시 쉬면서 본 적이 있다. 아마도 책을 그대로 옮기다 보면 길어질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도 다양한 전투씬들에 CG란 없다. 모두 사람들이 움직이고, 말을 탄 40명의 도적떼들을 실제 전투와 같이 묘사한다. 무기를 통해서 사람의 목숨을 뺏는 과정이 현대 영화가 더 리얼하고 자극적일 수 있다. 흑백영화에서는 그 과정이 조금은 어설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삽질을 하고 흙을 퍼 나르고, 사람들이 단체로 진을 짜고 움직이는 모습자체가 훨씬 더 인간적이고 현실적이다. 


 산적의 산채를 습격하는 과정만 봐도, 자연과 구조물들을 배경으로 사람들이 연기를 하다기 보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그대로 재현한다는 느낌이 많다. 왠지 더 사실적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감상적인 기분이 들어서일지 모르겠다.


 마지막 전투를 준비하고, 마을이란 성채를 잘 정비해서 결국 이겨낸다. 그 과정에서 4인이 사무라이를 잃는 과정이 따른다. 특히 조총을 통해서 사무라이가 무너지는 모습을 그리는 것이 시대배경을 이야기 하는 동시에 세상의 변화를 상징하는 것이다. 동시에 농민들이 생활로 돌아오게 도와주는 것은 사무라이의 공헌이지만 그들이 새롭게 생활로 돌아왔을 때에는 시작의 모습과 또 다른다. 무엇인가 활기로 채워진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다시 살아남은 전우이자 동료와 함께 앞서간 이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풍악을 울리며 모내기를 하는 모습과 연정을 품을 사람을 바라보는 젊은 사무라이의 모습을 통해서 또 삶을 생각해 본다. 행복을 지키는 과정은 대단히 어렵고 힘든 과정이다. 그런데 그런 행복은 또 일상과 함께 한다. "이번에도 우린 또 졌네"라는 말이 신바람나는 농부들의 모습과 교차되는 이유를 설명한다. 전쟁이란 참 무의미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게 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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