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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冊)

종종 읽고 배워 적용하면 즐겁지 아니한가? 확실하지? - 나는 불안할 때 논어를 읽는다

by Khori(高麗) 2022.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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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말 오전인데 입에 단내가 날 정도로 피곤하다. 업체를 만나다는 이유로, 선/후배를 만나야 하는 이유로 음주가 늘나서 그렇다. 마나님이 약발을 술발로 탕진하는 것 같다는 심각한 의심이 가히 틀린 말씀이 아니다. 매우 긍정적인 나만의 분석은 확실히 살만하다는 것이다. 죽을만하면 그럴지가 없지!? 확실한 것은 싸댕기는 총량과 피곤함은 비례한는 사실이다. 그 사이 호우시절처럼 바른 마음과 올바른 행동이 갖고 올지도 모르는 좋은 일들이 비타민처럼 활기로 채워지길 바라며 노력할 뿐이다.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욕심을 부리는 중이다. 

 

 집이 평안하고, 하는 일도 큰 문제가 없고, 몸이 크게 아픈 것도 아닌 평범한 일상 속에 왠지 모르게 마음이 휑하고, 싱숭생숭하고 그럴 때가 있다. 본격적으로 책을 보겠다는 결론으로 귀결된 때가 벌써 10년이 지났다. 그 선택이 사회에 나와서 무엇보다 잘 한 결정이라고 생각하고, 계속 그 생각을 유지할 것이라 예상한다. 

 

 그때 불안했었나? 아니다. 불안감보다는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삶에서 사라진 느낌이랄까?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내가 갖고 있던 것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으나 뭔가 없어진 듯한 느낌. 나사가 빠져서 덜렁거리는 느낌과는 또 다르다. 그렇다고 허전한 것도 아니었다. 살아가며 이런 오묘한 기분이 들 때가 있었는데 다시 그런 조짐이 느껴지는 요즘이다. 이 느낌이 주는 경험은 내게 몇 가지를 말한다. 나대지 말고 근본과 기본으로 웬만하면 돌아가야 한다는 경고가 하나고, 다른 한 가지는 무엇인가 배우고 익혀 준비하라는 알 수 없는 기회의 시그날이다. 망작이나 성공작이나 결국 나 하기 나름이다. 

 

 10년이란 기간 동안 논어를 여러 차례 보았다. 20대 후반에 읽고 참 좋은 말인데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한자 몇 자를 연습하기도 하며 읽었고, 그 후로 불현듯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10년 쯤 지나 보고 써보고 했다. 책을 선물 받아서 2번을 더 읽었다. 올해 다시 논어를 볼 때인가라는 생각이 들자 "알 수 없는 뭔가가 또 오는구먼"이란 혼잣말이 나온다. 자발적으로 읽었던 3회를 돌아보면 항상 변화의 시점이었다. 변화가 항상 즐거운 것도 아니고 인셉션의 장면처럼 3차원 공간이 틀어지듯 급하락, 급상승의 언덕과 절벽이 나타나는 느낌이랄까? 내 마음과 머릿속이 그랬다. 그런 느낌이라는 것이지 인셉션 정도의 난장판 한가운데를 싸돌아다니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마지막에 읽었던 논어 책에 지나간 낙서가 있다. 그리고 5년이란 시간이 흘러서 책을 보니 또 "인내의 시간"이란 좋은 표현을 써야 할지 "고난의 행군"이란 부정적 표현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 그 결과가 복인지 흉인지는 정해진 것이 아니라 나로 인해 결정된다. 

 

 이 책은 논어 첫 세 편이 한 권의 책으로 나왔다. 과거에 나를 돌아보며 읽었다면, 조금 더 aging이 돼서 그런지 새롭게 생각되는 부분도 있다. 현대적인 사례로 이야기하는 저자의 표현이 좋고 공감도 간다. 과거의 해석이 무조건 맞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을 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희근이란 분을 언급해서 호감이 생긴 부분도 있다. 공감의 부분이다. 고전이란 녀석을 현대를 살아가는 관점에 얼마큼 잘 해석해서 유효성을 이끌어 내는가? 이것이 중요하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 죽은 책이다. 그 점에서 좋고, 초반부의 일부 오타, 탈자는 애교로 보며 읽게 된다. 논어를 보면 사실 엄청난 새로운 사실과 진실이 아니다. 우리가 상당 부분 듣고 배운 것들이고, 일상에서 다 지키지는 못하지만 따질 때는 대부분 논어가 말하는 부분과 상당히 일치한다. 어머니가 말씀하시던 "똑바로 살아라"의 해례본처럼 느껴질 때가 있을 뿐이다. 

 

 세상을 살아가지만, 근래에 세상일에 관심을 갖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논어가 그리는 시대와 현재의 시대가 별반 다르지 않다. 근원적 원인은 사람 때문이다. 물 흐르듯 모든 것이 순조롭게 움직이는 이상적인 것은 기대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서로에게 해가 되지 않는 정도는 지켜가며 살아가면 좋겠지만, 법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과대망상은 피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법이라도 있어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드는 시대까지는 안 갔으면 하는 마음도 들지만, 세상 어떤 곳은 동물의 왕국처럼 총질과 대포를 쏘며 이전투구 중이다. 역사를 보면 이런 흐름이 순환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최근엔 레이달리오가 중국의 대국굴기처럼 이런 분석을 하고 있다. 지금은 어디쯤일까? 이것이 관심사고 어떻게 변할까가 최대의 관심 대상이다. 이런 인위적인 과정은 인간이 생각하고 만들고 영향을 주며 나온 결과다. 이런 이유로 공자는 사람의 양심에 예라는 방울을 달면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한 것 같다. 사회적 시스템과 규율로 세상은 운영하기보다, 사람의 마음에 달린 인공지능 경보기를 심어보려고 노력한 것일까? 하여튼 스케일이 아주 큰 분이고 대단하고 무서운 양반이다. 이렇게 보면 인공지능 참 하찮다. 전기 빼면 어차피 돌아가지도 않지만 마음에 단 방울은 누구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빅브라더! 

 

 물질 문명은 발전하고 세상은 고도화란 이름 아래 정확함이 증가해서 합리적이라고 말한다. 좁은 관점에서 그렇다. 세상엔 정확해야 할 것이 있고,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가족을 보살피고 연인을 챙기는 일을 모두 계산기로 돌린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그런 사람은 ㅆㄴ이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과거엔 생존의 문제라면 현대는 다양하고 엄청나게 많은 일들이 뒤엉켜 골치 아픈 시대인 것이 틀림없다. 

 

 오랜 기간 목표를 결정하고 그 일을 기준으로 처리하는 훈련과 경쟁의 시대를 살아왔지만 갈수록 생각이 변해간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사람들을 위하고 도움이 되는가? 그 관점을 스스로 무릎피고 서있을 때까지 유지할 수 있는가? 관점이 점진적으로 이해한 만큼 넓어지고 깊어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가오는 초연결 시대에 기계도 할 수 있는 협력의 개념이 다음 시대를 살아가는 중요한 키워드가 되어가고 있다. 아니 원래 그랬던 것을 강조하는 시대가 되어간다고 보는거나, 잃어버린 것을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동떨어진 이야기 같지만 논어를 읽다 이런 생각이 떠오르는 이유는 인간의 마음과 생각에 관해 말이란 덜떨어진 수단으로 애써가며 서로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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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안할 때 논어를 읽는다

판덩 저/이서연 역
미디어숲 | 2022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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