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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살아보세 (書)

읍내에서 신영복체를 만나다 - 세상의 안전은 어디에

by Khori(高麗) 2022.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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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까지 졸 다자다 축구를 봤는지 안 봤는지 몽롱하다. 아침부터 '파이팅'하고 보냈는데, 별봉이가 시험을 잘 보고 왔다. 읽어야  책인지 사놓은 책인지를 잔뜩 쌓아두고, 엉뚱한  읽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같이 늦은 점심을 했다. 오후 바람도 쐴 겸 집을 나섰다. 주말 아침부터 돌아보면 아저씨들  일이 음청 없는 것도 같다. ㅎㅎ

 

 읍내 서점을 잠시 들렀다가 시내에 모인 사람들을 근처에 가서 이야기를 들어본다. '왜 사람들이 모여있는가?'를   있는 기회다. 과거 시절은 이념의 집회가 대부분이었다면 지금은 다르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고 이념의 프레임 속에 갇힌 구시대적 관점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00 이즘'이란 세상 속에 존재하는  조각일 뿐이지 모든 것을 재단하는 만능 툴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망치 들고 모든 것을 못으로 보는 또라이와 다르지 않다.

 

 사람들이 이야기를 듣다 이동하려는데 익숙한 글씨가와 노란 책이 보인다. '처음처럼'이란 신영복 선생의 책이다. 서예를 어려서 아주 조금 배워본 적이 있지만 그림, 글씨 이런 것에 재주가 없다. 대신 보는 것은 좋아한다.

 

  한 아저씨가 원하는 글씨는 써 주신다고 한다. 다른 아주머니가 말을 붙여서 이야기하니 '더불어 숲' 모임에서 나오셨단다. 동양고전을 설명한 '강의', '담론'이란 책도 좋았지만 '처음처럼', '나무야 나무야'와 같이 그림과 아이들 마음 같은 책이 참 좋았다. 최근 신영복 주의자라면 김일성주의자라는 구시대적 발상의 망언으로 시끄러웠다. 그 말을 듣고 '처음처럼' 소주를 마시면 전부 잠재적 김일성주의자라라고 생각하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었다. ESG와 같은 말을 하면 자본주의와 개인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에겐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라고 할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 정도다.

 

 조금 물러서서 세상에 사람들이 모여있는 이유를 다시 생각해 봤다. 그리고 내가 생각한 글을 전해줬더니 이렇게 멋지게 써주셨다.

 

 대학시절 오전 3시간 연강 수업 마지막에 들어온 녀석이  늦었냐고 물어보는 교수님한테  마디 했다 출석부로 강타당했다. 고등학교 이후로  보기 힘들 일이었다. 그런데 교수님  "야 인마, 거짓말을 해도 정도껏 해야지, 다리가 끊어졌다고, 전쟁 났냐? 지하철 바퀴는 빵구 안 나고?"라며 어이없다는  한대  출석부로 쥐어박았다. 그날이 성수대교가 무너진 날이다. 

 

 6개월 방위로 퇴근 시간이 선배가  와서 삐삐를 쳤더니 난리가 나서 정신이 없다면 전화를 끊는다. 그날이 삼풍백화점이 무너져서 난리가 난 날이다.

 

 출장 마무리하는  아침에 바이어가 "너네 나라 사람이 많이 죽었던데"라고 해서 아침부터 개뻥을 친다고 했는데 그날이 세월호가 침몰한 날이다. 또래 아이들을 키우는 입장이기도 하지만 한국전쟁 이후로 이렇게 젊은 애들이 많이 죽은 날이 있었나?라는 생각이 좀처럼 떠나지 않았다.

 

 어수선한 주말을 마치고 아침에 일어나서 뉴스를 보다 깜짝 놀랐다. 갑자기 사람이 이렇게 많이 죽다니. 무슨 사고인가 찾아보다 어이가 없었다. 스포츠 경기장, 공연에서 어쩌다 사고가 뉴스가 있었지만 거리에서 압사사고라니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  기억 속에 10년 정도의 간격으로 보이는 사회적 재난 트라우마가 떠올랐다.

 

 부의 축적도 삶의 안전을 위한 수단이고, 명예와 권력의 축적도 마찬가지다. 회사가 싫은 것이 아니라 상사가 꼴 보기 싫은 것은 그가 나의 안전을 챙기지 않기 때문일 확률이 많다. 누군가 나의 안전에 공을 들이는 사람이 사랑하는 연인이고, 그런 안전의 부실함에 서로에게 화를 낸다. 안전은 세상을 유지하는 기본이다.  안전이 제로섬 게임이 되면 이해관계로 분쟁이 발생하기도 하고, 타인의 안전을 위협하면  사람의 안전을  위협하는 방식의 경쟁이 전쟁 준비라고   있다. 

 

 사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옛날 부족도 족장이 부족의 안위를 책임지지 않는다면 그를 따르는 사람이 있었을까? 현대 사회에서 국민이란 이유로 4대 의무를 이행하고, 세금을 내는 것은 편의도 존재하지만 기초적인 공동체 안전을 위한 필수 불가결한 투자다. 그리고 세상을 살아내고 후세에  좋은 세상이란 이런 시스템이  운영되고 발전되는 터전을 만들어 주는 일이다. 부모가 자식들이  안전하고 좋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듯, 그럼 마음이 세상에 모여 후세를 위한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노령화가 심해져서일까? 그런데 현재의 시스템처럼 돌아간다면 노인을 위한 나라도, 미래를 위한 나라도 멀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저렇게 글을 전달하고 멋지게 써주셨는데, 한 아주머니가 나타나서 사겠다고, 파는 것 아니냐고 해서 한참 웃었다. 다음 주에는 집에 오는 내내 생각했던 글을 정리해서 써달라고 한 번 더 졸라볼까 생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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