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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공연 (劇)

시작의 첫 잔처럼 걸어가 보는 거야 - 첫잔처럼 (★★★★+1/2)

by Khori(高麗) 2022.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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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시절 선배 아버님의 말씀 중에 술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첫 잔 원샷하는 놈하고, 막 잔 원샷하는 놈이 제일 무식한 놈이다"

 

 세상을 살면서 친구, 지인, 직장 동료, 협력사들과의 술자리를 돌아보면 크게 틀린 말도 아니다. 술이란 내가 언제 취했는지 알려주는 적이 없다. 영화에서는 은퇴한 대표(신구)가 주인공인 이호연에게 한 마디 한다. 

 

 "밥은 맛있게 먹으니 사주고, 술은 잘하라고 사준다. 안주 잘 챙겨 먹고. 술만 처먹는 놈들 죄다 먼저 갔다"

 

 그러면서 자신이 메고 있던 알마니 넥타이를 하나 준다. 넥타이는 원래 파란빛이 돌았는데, 어떤 이유인지 색이 계속 변해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넥타이를 돌려드릴 땐 검정색이 되었다. 그가 처한 상황을 알려주고 그에게 무엇인가 알 수 없는 힘을 주는 소중한 아이템처럼. 세상을 살며 꼭 비싼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힘이 되도록 선물하는 사람의 깊은 사랑과 애정을 담은 선물은 신령스러운가 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이런 매직 아이템을 얻고 싶어 하지만, 먼저 누군가에게 이런 선물을 준다면 세상은 훨씬 활기차지지 않을까?

 

 제약회사 영업사원은 탁월한 미각을 소유하고 있다. 여러 가지 맛을 기억한다는 것은 맛의 조합을 풍부하게 상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그렇게 만들어 낸 반숙라면은 인기를 끌지만 레시피 제조자인 어린 이호연은 라면 한 그릇도 못 얻어먹고 쫓겨난다. 이런 모습이 세상에 위축되고 자신만이 갖고 있는 초능력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이유가 된다. 초능력이 별것인가? 타인이 할 수 없는 어떤 능력을 갖고 있으면 된다. 굳이 하늘을 날고, 레이저를 쏠 필요가 있을까?

 

 고만고만한 영업을 하고, 과거의 여자 친구와는 타이밍이 참 안 맞아 헤어지고 선배와 결혼하는 그녀를 축하하는 주인공을 보면 속이 참 좋다. 많은 사람들이 빨리빨리 무엇을 하고, 이것저것 돌파구를 찾기 위해 수선을 떨어도 그는 어쩌면 조금 천천히 묵묵히 걸어간다. 또 정수기에 물이 없으면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물을 채운다. 누군가 말하지 않아도 타인들의 모범이 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리더의 기본기를 갖고 있는 것이다. 여자 친구처럼 타이밍이 문제긴 하지만.

 

 그는 꾸준함, 진실함, 너그러움을 갖고 살아간다. 누가 알아주지 않는 것을 많은 사람들은 야속해하지만 그는 그렇지 않다. 조금 바보스럽지만, 영화를 보는 누구도 스스로 그런 바보스러움을 강점으로 만들려고 하는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고 바라보는 것보다 훨씬 신기하고 기묘한 부분이 있다. 그런 그를 또 유심히 관찰하고, 그 장점을 높이 사는 사람들이 있다. 한 명은 경쟁하는 옆 팀의 팀장이고 또 다른 한 명은 오줌싸개라고 놀리는 은퇴한 대표이사다. 이런 행복은 행운이 아니라 그가 걸어온 발자취 때문이다.

 

 병원 영업을 위해서 7번이나 찾아가서 퇴짜를 맞는다. 이럴 땐 참 막막하다. 그렇지만 또 될 때까지 문을 두드리는 사람, 그 대상이 원하는 것을 준비해서 계속 도전하는 사람, 욕을 한 사발 하고 돌아서는 사람, 다른 지인들을 통해서라도 자리를 만들려는 사람, 집으로 찾아가는 사람.. 영업은 참 다양한 스토리를 만들어 간다.

 

 오래전 일이다. 오후 4시 미팅인데 오전 10시부터 해외 전시장을 찾아온 작은 회사의 사장이 있었다. 비행기가 일찍 왔나 했더니 본인이 일찍 왔다고 한다. 차 한잔 주고 계속되는 미팅으로 왔다 갔다 하는 와중에도 미동도 하지 않고 미팅 룸 앞을 지키는 그를 보며 여러 생각을 했다. 처음엔 "미쳤나? 또라이가 한국 사람만 있는 게 아니야"라는 생각을 했다. 식사도 안 하고 기다려서 먹을 것을 주겠다니 사양한다. 오후가 되며 그의 정성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2시가 되자 그와 같은 동네 고객이 도착했다. 첫마디가 "재 몇 시에 왔어?"라는 질문과 내 대답에 그도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그 해에 1만 8천 불의 연간 매출을 했다. 그러나 3년 뒤엔 6백만 불의 매출을 했다. 그는 스스로를 도왔고, 나는 그런 녀석을 위해서 정말 물심양면으로 많은 것을 시도하고 지원했었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정말 혼심을 다해 무엇인가를 하는 사람을 돕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지금은 회사를 글로벌 기업에 매각하고 그 유럽 지사장을 하고 있다. 이 호연을 보면 그런 추억이 생각났다.

 

 결국 그는 세상에 한 발 한 발 자신감을 갖고 걸어가고, 여자 친구도 생기고 우리가 기대하는 해피엔딩의 방향으로 걸어간다. 세상을 더 살아보면 30대 후반은 이 호연도 40고개, 50고개, 60고개는 장르가 변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나 좋은 추억과 스스로 도전에서 얻어가는 삶을 산다면 다가오는 고개도 그리 가파르지만은 않다고 느낄 것이다. 잔잔하지만 따뜻하다. 심야식당 같은 느낌이 조금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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