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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공연 (劇)

신과 함께 - 죄와 벌

by Khori(高麗) 2018.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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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른한 명절 오후에 온 가족이 모여서 VOD를 본다. 어려서는 찾아오는 부모님 사촌과 제사로 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갔다. 하지만 지금은 아침에 차례를 지내고 가족들이 세배를 하고 나면 크게 부산하지 않다. 졸음이 쏟아지는 나른한 오후와 함께 집은 작은 소극장으로 변했다.


 염라 대왕, 49재를 보면 동양의 문화가 짙다. 배를 타고 건너는 죽음의 관문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연상하게 된다. 쇠사슬을 묶은 염라대왕의 수호자들, 나머지 6개의 관문을 지키는 대왕을 보면 동서양의 오래된 이야기들 같다. 주제가 권선징악이라는 옛날 이야기의 단곤 주제라는 것은 정서적으로 참  정겹다.


 죽어서도 귀인(貴人) 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환생이 꼭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다. 환생은 이생의 미련과 연민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한다. 추억도 없는 덕춘이 부러워하는 모습을 보면 차사라는 존재도 재미있다. 극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캐릭터는 아마도 판관 역할의 오달수와 임원희다. 마치 꼭 죽음은 죄라는 접근처럼 달려드는 오달수와 인간적인 감성과 동정심이 풍부한 판관들의 취조와 차사들의 변론은 법정을 연상하게 한다. 


 그런데 전지전능한 신인란 원래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알고 있는 것 아닌가? 마지막 판결의 염라대왕처럼 변론 필요없고, 내가 다 알고 있으니 결정만 하면 되고, 그 결정도 다 알고 있었던 것 아닌가? 하지만 어떤 영화를 봐도 이런 생각으로 접근하는 경우는 드물다. 



 점점 영화를 볼 수록 생각도 바뀐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다 아는 일생의 업보를 만들어 준 것도 신이고, 모든 원인은 신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는 전지전능하니까. 하지만 신이 인간에게 다 알고 있으면 이런 과정을 전달하는 것은 인간 수준에 맞게 교훈과 징계를 내리는 맞춤형 제안은 아닐까 생각한다. 동시에 인간은 그 만큼 신에게도 존중 받을 수 있는 위대하고 고매하고, 말을 더럽게 안듣는 구석이 상존하는 애물단지일지 모르겠다. 어째던 인간은 대부분의 신화에서 신이 제조자이기 때문이니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도 못하리라.


 상황속에서 고뇌하고 번뇌하면 상황을 극복하거나 회피하기 위한 선택이 결국 죄가 되고, 업보가 된다. 모든 선택이 내 안에 있을 때에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 문제를 타인에게 확산하는 것은 죄가 되고, 좋은 결과를 위해서 펼쳐낸 행동은 선행이 된다. 그 속에서 진정한 사랑과 용서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완벽하지 않으니까.


 오랜만에 보는 주지훈의 시니컬한 멘트, 어마무시한 파워를 자랑하는 성주진 마동성, 깜직한 덕춘 차사, 옷 한벌로 영화를 버티는 주인공 자홍 (강림은 변신하느라 종종 갈아 입으나, 덕춘과 해원맥 여기도 의상 하나로...), 수 많은 대왕역의 다양한 배우들이 화려하다. 나중에 그 배우가 그 사람이었어 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래도 염라가 가장 잘 어울린다. 게다가 인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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