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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冊)

역사책을 다시 읽다 - 자치통감 3 - 권 17~18 (신동준, 올재)

by Khori(高麗) 2021. 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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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C 140 ~ BC 125

 

 날도 덥고 무료해서 가방 세간살이를 꺼내 사진을   찍었다. 태블릿, 만년필, 볼펜, 자치통감, 블루투스 마우스, 필통을 보고 있자니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세상이 교차한다. 최근의 문명에 벗어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구닥다리 문명에만 발을 걸치는 것도 아니다. 경계인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라를 세우고 운영한다는 것은  일이다. 나라를 세우고  세대가 지나면 이를 더욱 절치부심해서   업적을 세우는 시대가 오거나 나사 빠진 녀석들이 모여서 다시 혼돈을 부른다. 무엇을 새로 만들고,  뜻을 세기고, 세상의 변화에 맞춰 준비하고 대응하기 위해서는  뜻을  남겨야 한다.  뜻이란 인간의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유효한 것들을 채도 쳐서 만들어 낸다. 한나라를 그렇게 유교를 통치의 근간으로 삼기 시작한다. 한고조 유방이 틈만 나면 '유가 나부렝이'라고 하던 일을 기억하면 격세지감을 느낄만하다. 기록을 보면 묵가도 상당히 대우받았다는 것을 추정할만한 내용들이 있다. 묵가의 과학적인 면모와 평화주의적인 모습을 생각해보면 세상을 위해서 필요하지만 조직을 통해서 세상을 운영하기 위한 수단은 사람을 이해하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노자는 조금은 개인적이고 어렵고, 유교가 세상을 통치하는 수단으로 떠오르는 것이 후세의 사람 입장에서 당연해 보인다. 

 

 자치통감  17, 한기 9는 동중서의 말로 시작한다.  시작이   권의 내용이라 해도 부족하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그가 황제에게 하는 말을 돌아보면 이렇다.

 

 '책임을 맡은 사람이  일에 적당한 사람이 아니고, 일에 종사하는 방법이 그에 적합한 도를 시행하지 않으니  때문에 정치가 날로 기울어져 멸망하는 것입니다'라는 구절이다. 나라가 지향해야 하는 것이 도(道)이고 인, 의, 예, 악을 언급하는 것을 보아 그간 유학을 자기 철학의 근간으로 삼고 있음을 알고 있다. 

 

 논어 위공령을 들어 '사람은 도를 넓힐  있으나 도는 사람을 넓힐  없다'라고 인용한다. 결국 미래는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는 말과 다름없다. 도가 직접적으로 사람을 넓히지는 않지만 사람이 도를 깨닫고 안으로 넓히면 밖으로도 넓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공자의 말을 인용하여 '봉조가 오지 않고, 황하에서 하도가 나오지 않고 있으니 내가 이제 그만둘까 보다'라고 말했다고 동중서는 인용한다. 주석에 논어 헌문의 구절을 인용하고 이는 공자가어에 나오는 일화로 역사적 사실과는 다르다는 내용이 있다.  말을 읽어보면 세상의 때(timing)이란 인간이 통제하기 어렵다는 말로 이해된다. 인간이 만드는 때란 작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인간의 의지를 표현한 말로   유가들은 신이 아니라 인간의 가능성을 높이 샀다는 생각을 한다. 현실에서는 때가 나를 필요로 하는지, 내가 때를 만드는지 그런 몽상과 환상 속에서 헤매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 심히 걱정된다. 

 

 '신불해와 상앙의 법을 스승으로 삼고, 한비자의 설대로 시행하며, 제왕의 도를 싫어하고, 욕심 많은 이리 같은 습속을 만들었습니다'라고 말하며 법가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법가, 특히 한비자를 읽으면 이성적으로 그렇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세상은 이성만으로 살아가거나 통제되지 않는다. 본능과 감정은 아주 강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법가를 이렇게 심하게 비판하는 것은 그만큼 진나라의 폐해를 빗대 말하고, 한나라가 다른 통치이념인 유가를 선택해야 한다는 말로 보인다. 법가의 아주 강력해서 촘촘해지면 사람들이 싫어한다. 그러나 법이 너무 풀어져 해이해지면 나태해진다. 나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

 

 '들은 바를 존중하면 고명해지고, 아는 바를 실행하면 빛이 커진다'라는 증자의 말을 더했다. 경청이란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내가 싫어하는 소리를 듣고 나쁜 말을 듣고 귀를 씻는 정도의 결벽증은 없다. 그러나 나쁜 말을  듣고, 욕은   안다. 문제는 때를  맞혀야 하는데 수양이 부족한 것이 문제다.

 

 '이른바 공로라고 하면 관원으로 임명돼 얼마나 직책을  수행하느냐로 차이를 두었지 얼마나 오랫동안 했느냐를 말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동중서가 황제에게 말한다.   구절이  좋다. 경력이 오래되어서  경력에 맞는 실행을 하지 못하면 경력은 조롱거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먼저 태어나 내가 살고 있는 시대를 물려준 연장자는 존중받아야  대상이다. 하지만 공무와 관련되어 기준은 반드시 공무란 목적과 달성이란 측면에서 바라보고 해석해야 한다. 이것이 작은 공사 분별이라고 믿는다. 자신의 실수를 '너  살이야?'로 해결하려는 것이 문제다. 공자도 배우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했다. 알량한 자존심이 문제다. 자존감은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말은 자신에게 나오는 것이라 막을 수가 없습니다. 행동도 몸에서 시작돼 가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말과 행동은 다스려야   가운데  것이니 이것이 군자가 천지를 움직이는 까닭입니다'라는 문구를 보면 사람  믿을  못된다는 생각과 그래도 믿을  사람밖에 없다는  사이에서 이리저리 방황하게 된다.  눈이 문제다.

 

  '무릇 옛날의 전하도 오늘날의 천하이고,  같은 천하입니다'.  문구를 보며 '무엇이 변화하였는가?', '변화의 방향은 무엇인가?', '나는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무엇을 목표로 변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더한다.

 

 '급히 재물의 이익을 찾으며  궁핍하게 될까 두려워하는 것은 서민들의 생각입니다. 급히 인의를 찾아  백성들을 교화시키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것이 대부가 가져야  뜻입니다'. 지금 시대는 어떠한가? 누구나 스스로를 대부로 생각하는 것은 자유다. 나는 서민으로 살아가겠지만 이익만을 찾지는 않으려고 한다. 동중서의 글을 천천히 읽어 보고 세상을 보면  사려 깊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흉노가 자주 한나라를 침범하고, 제후들도 한고조가 나를 세우고 왕이 5번째까지 이어졌는데 헛꿈을 꾸거나, 탐욕을 부리다 일족의 씨가 마르는 일이 계속된다. 무모하다고   있고,  그런 꿈을 갖고 사는 것이 인간이란 생각이 든다. 

 

 '말세에는 작위와 후한 상금을 귀히 여기지만 백성들은 선을 행하도록 권하지 않고, 형벌은 무겁게 내리지만 간사함이 그치지 않으니 이는 윗사람이 바르지 않아 백성들에게 믿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권한과 책임이 있다고  모든 일이 윗사람의 잘못이라고  수는 없다. 하지만 윗사람의 마음가짐은 항상 내 탓이란 생각을 세 치 혀로만 놀릴 것이 아니라  깊이 생각해  점이다. 갑자기 항상 타인에게만 '내 탓이오' 운동을 하던 분이 생각난다. 

 

 한무제 때의 급암을 보면 대쪽 같다. 장탕이 소소한 법조문을 깊이 다루어 가혹하게 취급하려고   강직하고 엄정한 태로도 높은 기상을 지켰다. 왠지  글을 보면 내가 살고 있는 시대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천하 사람이 말하기를 '아전 도필리(법관이나 아전을 이르는 말)는 공경이 되어서는  된다'라고 했다. 과연 그렇다. 장탕은 틀림없이 천하 사람들에게 중족이립(두려움으로 손발을 공손히 모은   있는 모습)과 측목이시(감히 앞을 보지 못하고 곁눈질로 쳐다보는 모습)의 모습을 보이게 하고야  것이다'라는 대목을 본다. 그런데  대목도 현재를 말하는  같다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인간 세상은  안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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