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은 덥고, 보는 대로 아무 생각 중
5월에도 10일 넘게 출장인데, 5월 말일부터 다시 10일 넘게 돌아다닐 계획이다. 상반기가 끝나가고 내부적으로 하나의 목표를 위해서 다들 분발 중이다. 하지만 심신이 노곤해지고 피곤한 것도 사실이다. 어차피 세상은 내 마음대로만 되지 않는다. 그런 상황을 놀라지 않고 보이는 대로 보며 대응을 해 나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변화의 대응에만 치중하면 원칙이 없어진다. 그것이 어려운 일이다.
아침부터 공항으로 출발했다. 공항버스를 기다리는데 젊은 처자가 26인치 캐리어 2개와 20인치 캐리어 1개를 갖고 나타났다. 머슴은 없는 걸로 보이는데, 천하장사인가? 대단하다. 지난번 출장 중 애 셋을 안고 잡고 있는 인도 아줌마를 보며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 앞에서 26~8인치 캐리어 4개를 손발로 끌고 있는 아저씨를 보니 소인가 싶기도 했다. 하여튼 쓸 때 없이 다양하게 관심이 많다.
요즘 동남아 국가들도 입국 신고서를 앱이나 웹으로 사전에 하는데 가는 비행기만 확인했지 현지에서 출발하는 비행기는 아직 확인을 안 했다. 출국장에 들어서 "얘들아 삼촌 태국 출국 비행기표가 어떻게 되냐? 이거 없으면 입국이 곤란한데 나 곧 비행기 타야 한다"라고 했더니 주말에 일하러 나온 베이비 녀석이 냉큼 알려준다.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하여튼 입국 신고서를 사전 작성했다. 그다음 일정 비행기 표하고 숙박 일정이 계속 날아온다. 그런데 마지막 행선지 숙박과 귀국 편 비행기는 아직도 미정이다. 이번 출장 살짝 풍찬노숙 분위기라니까. 아이고!
낮 시간 비행기로 골라보랬더니 이거밖에 없다고 저가 항공을 타게 됐다. 아하! 밥을 사서 먹어야 한데. 주문을 해 보려고 했더니, 내가 주문하고 싶은 건 없단다. 어쩔 수 없지. 메인 4번을 주문한 것 같은데 3번을 친절하게 갖다 준다. 뜨겁다고 조심하라는 걸 보니 다시 바꿔줄 것 같지는 않다. 비행기를 보니 내가 해외영업한 연수랑 비슷해 보인다. 그땐 이 비행기도 신형이었지. 그런데 화면도 안 나오고, USB충전도 안된다. 노란색, 빨간색, 하얀색 RCA 잭을 보니 이게 비디오 스테레오 왼쪽 오른쪽 오디오라는 것이 생각나네. 그 밑에 DIN 커넥터 옆에 신형 지원을 광고하듯 I-POD이라고 쓰여있다. 보통 저가항공사는 모기업 항공사들이 있고, 노후 시스템과 인력을 이용한 사업 갖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저런 상상을 하다, 무인도에 불시착하면 빨리 굶어 죽겠다 그런 상상을 하고 있는 내가 참 부질없다.
공항이 앞이 많이 깨끗해졌다. 생각해 보노 방콕에 와본 지 벌써 8년은 된 듯하다. Grab으로 택시를 골라타고 호텔로 향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한 풍경이 흘러간다. 운전기사가 번역기를 이용해 이것저것 계속 물어본다. 월요일 미팅하러 멀리 이동할 계획인데 영업을 한다. 일행과 함께 이동할 예정이라 필요하면 연락하겠다고 무마했다. 어차피 출발부터 일정은 많이 틀어져서 뒤죽박죽이고 토요일 외국에서 할 것도 별로 없다. 우기가 시작하려는지 날이 우중충한 게 비가 떨어질 듯하다.
호텔 투숙을 하고, 밥을 먹으러 나가보기로 했다. 택시를 타는 것도 괜찮은데 옛날 생각하며 지하철을 타보기로 했다. 47바트면 얼마 안 되네라고 생각했는데, 2천 원 가까이 된다. 예전엔 100달러에 3600밧 정도였는데, 지금은 3200밧 수준이다. 바트가 강해진 건지 우리나라 꼬락서니가 안 좋아진 건지 알기 힘든 시대다.

코리아 타운에 가서 한식을 먹었다. 여기도 1000밧 이하는 카드를 안 받거나, 어떤 곳은 3% 수수료를 내라고 한다. 예전엔 북한식당에서 밥을 사 먹기도 했는데 그동안 한류가 더 많이 퍼진 것 같다. 원화가 나락 갔다가 조금씩 회복 중이라 그런지 바트 물가가 크게 올랐는지는 잘 모르겠다. 원화로는 많이 오르긴 했다. 게다가 코리아 타운이 뭐 어느 나라나 조금 더 받을 수밖에.
밥 먹고 나오는데 웬 아주머니가 알 수 없는 말을 쉬지 않고 하고, 어린 젊은 여자 아이는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이 없다. 내용은 알 수 없으나, 엄마가 딸내미 족칠 때는 쉬지 않고, 딸내미는 이럴 땐 그저 묵비권이 아닐까? 그런가?

토요일은 이렇게 보내고 일요일은 아침부터 찌뿌둥하다. 그나마 해님이 나타나 화창한데 날이 덥다. 더운 건 딱 질색이다. 월요일부터 업체 미팅하고, 해외 현지공장 답사하고 다시 필리핀도 가고, 상해도 가야 하는데 아우 모르겠다.
호텔 근처에 Health Land가 있어서 태국 전통 마사지를 받아봤다. 인정사정없이 누르는데 통증이라고 하긴 어렵고, 조금 더 누르면 죽을 것 같은데?! 소리 한 번 안 냈더니 더 세게 누르는 듯. 찌릿찌릿하다. 갈비에 붙어있던 살점이 다져지는 느낌이 팍팍 온다. 다 받고 나니 그래도 개운하다. 잘 다져지거나, 보증기간 끝난 기계가 돼 가거나 그런 것 같다. 체인점이라 방콕 오면 꼭 오게 되긴 하는데 오늘이 가장 좋은 듯하다. 늙나 보네.. 당연한 소리지만.

시간 나서 Asiatique를 다시 가봤다. 예전엔 마감이 조금 떨어져도 태국제품들이 많았다. 모스크바 이즈마일로프 옆 벼룩시장과는 또 다른 분위기였는데. 강 건너 비얀트리에 묶으면 페리도 공자였는데. 시간이 많이 흐르고 나니 여기도 엄청 한가하다. 8년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의외로 중동 사람들이 많다. 하긴 두바이에서 태국행 비행기를 타면 난리도 아니었었는데. 베이비들 주려고 선물을 사고 이름을 새겨달라고 했다. 주인장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더니 나보고 어디서 왔냐고 물어본다? 중국, 한국, 일본 이것저것 물어본다. 중국사람 같단다. 나쁜 시키. 그러더니 자기는 어디에서 온 것 같냐고 해서 찍었는데 맞췄다. 주인장이 음청 좋아한다.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돌아와서 보니 A자를 O자로 써놨네.. 그렇지 오타가 또 제맛이지. 예전에 여기서 마나님 이름 오타 나서 이년은 어떤 년이냐고 경을 쳤는데... 억울한데 할 말이 없긴 했었지.
5천 원이나 주고 커피를 한 잔 마셨는데, 화장실에 갔더니 3시에 열어 준단다. '이게 무슨 소리냐?' 유럽인 같아 보이는 아저씨가 '2분 남았다'라고 말했다. 동양인 아저씨는 땀을 흘리며 기다리고, 아들내미는 와서 아빠한테 뭘 사려고 하는지 돈을 달라고 조른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네. 갑자기 나타난 아줌마가 화장실 안에다가 알 수 없는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기 시작한다. 이거 '얼른 문 따라!' 뭐 이런 소린가? 안에서 대꾸도 없는데 더 크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니 아줌마가 나타나 문을 열어준다. 모세의 기적이라고 느낄 1분 단축과 함께 바다가 갈라지듯 각자 좌우로 나누어지는 모습에 자꾸 웃음이 난다. 여기 올 때 택시비를 240밧이나 냈는데 올 땐 98 바트가 나온다. 흠.. 장사가 안된다는 소리네..
Grab으로 배달 음식을 시켜 먹을까 생각하나 호텔 앞 이태리 식당에 가 볼 생각이다. 어려서는 엄마나 할머니가 돈 주고 점빵 갔다 오라는 심부름을 시켰다. 그러다 동네방네 점빵들 대신 슈퍼가 생기고, 조금 더 지나서 자동차가 늘어나고 대형 마트(하이퍼마켓)들이 생기고 차로 실어나르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젠 배달의 시대가 되고 다들 방구석에서 앱으로 누굴 시켜는 창조 경제를 만들고 있다. 그래 한국전쟁 때도 지게꾼들이 탄약 날라서 혁혁한 공을 세운 일이 있지. 좀 지나면 이젠 드론으로 배달하겠다고? 아마 도심은 힘들거나 한참 오래 걸리지 않을까? 백만 번 성공해도 한 번 사람 머리로 떨어지면 쓸 수가 없다. 전쟁 리스크가 있는 서울에서 드론이 마구 날아다니면 적군의 드론인지 배달 드론인지 구분이나 가겠나? 차라리 시골 외진 곳이 더 합리적인 서비스가 아닐까 그런 잡생각이 든다. 내가 봐도 참 산만하고 다양하게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른다.
날이 더워 사워하고, 다시 메일 몇 개 보내고, 내일 미팅할 자료를 확인했다. 문으로 쓱 종이가 들어와서 봤더니 야밤엔 인터넷 공사라 WIFI 안된다는 친절한 메시지다. 그래 하루라도 별일이 없으면 심심하지. 태국에 오면 글씨가 모두 n와 u의 연속콤보라 알 수도 없고, 날이 더워 혼란하다. 그래도 제조와 관련 설비 사업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 관광대국이긴 하지만 이것만으로 성장하기는 어렵다. 세상이 또 변하기 때문이다. 다음엔 관련 전시회를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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