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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공연 (劇)

공각기동대 - Ghost in the shell

by Khori(高麗) 2017.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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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전 추억의 만화를 실사영화로 보았다. 스칼렛 요한슨의 유명세보다도 좋은 추억을 다시 새롭게 할 수 있다는 것으로 기분이 좋아진다. 몇 달전 트위터에서 본 인상적인 티져광고가 다시 생각난다.


 달콤한 낮잠을 자고 저녁을 먹으며 예약한 심야영화관에 사람이 많다. 조금 일찍 도착한 극장을 둘러보며 포스터를 챙겼다. 벌써 몇 년째 모아둔 포스터가 꽤 된다. 한 장씩 화일철을 하게되면 양이 너무 많아져서 쌓아두고 있지만, 분명 모으고 있는 셈이다.


 자주 들르는 곳이지만, 새롭게 봄맞이 단장을 했나보다. 4*6사이즈에 영화 스틸사진을 액자로 붙여두었다. 나도 기념삼아 사진을 찍고 흑백으로 변환 해봤다. 백과 흑의 그라데이션으로 잡아낸 모습은 마치 과거의 추억을 되새기는 기분이 들게 한다. 그 가운데 오늘 보려고 하는 공각기동대 고스트인더쉘도 한 장이 들어 있다. 


  전체적인 영화의 분위기는 마치 매트릭스와 같은 분위기가 든다. 현재에서 바라보는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4차 산업, VR, AI, Autonomy, Connected Society가 만들어 낸 data중심의 세상. 인간의 내면에 언제나 충만했던 감정이 차분하게 가라앉거나 통제된 듯한 모습때문에 화려한 화면속에서 인간은 오히려 덜 인간적이다. 아무도 웃는 모습이 없기 때문인것 같다.


 화려함 속에 억눌린 모습이 내가 기대하고 기억하는 감성과는 참 다르다. 하지만 런닝타임을 집중하는 것에 반하지는 않는다. 그래서인지 기억은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이라는 대사가 가장 눈에 띈다. 메이져, 미라로 정의된 삶에서 모토코의 기억을 찾아서 살아가는 과정이랄까? 

이 영화에서 한 가지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은 사람과 로봇의 경계이다. 친구 바토도 시력을 기계로 회복한다. 그가 zoom도 되고, 적외선 스캔도 된다는 자조적인 말이 웃음을 부르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 자발적으로 스스로 기계화를 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이토가 현재 인간의 상태를 강조하는 모습이 대조적이고, 무한정 술을 마시기 위해서 간을 기계로 교체한 사람이 우습게 보인다. 아마도 인간의 위대함이란 魂, Spirit이라는 인류사적인 교훈을 넘어서지는 않는다.


 쿠제, 히데오라는 인물은 강제적으로 정의된 기억속에서 자각한 인간과 기계의 경계사이에 있다.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오우레 박사가 사람에게 기계의 장점을 심으려 했다면, 그는 기계화된 사람을 연결하여 사람을 심으려 했다고 생각된다. 

내가 미토코, 메이져, 미라라면 나의 현재와 각인된 기억, 되찾은 기억사이에서 어떻게 생각할까? 그녀는 영화속에서 두 가지 삶을 고르게 찾아가는 듯 해 보인다. 마친 바이러스를 잡고 안정화된 시스템처럼 말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미래에 대한 상상을 한다. 기술적인 발전은 인간문명의 발전과 편의, 도덕적 정당성을 보증할때에만 유효하다. 또한 사람은 너무 가깝게 다가가면 힘들고, 너무 멀리 떨어지면 외롭다. 초연결사회가 물리적인 연결을 넘어, 통제되지 못하는 교감이 강요된다면 그리 좋은 세상인지 모르겠다. 기계가 인간의 특정 역할을 대체할 목적으로 만들기 때문에 그 분야에서는 기계가 사람보다 나을 것이다. 초연결로 사람자체보다 기계가 우수해지는 분야로 확장되는 현실을 축복이라고 봐야할지 판단하기 어렵다.

 분명 논리적인 이익과 효율이 존재 한다. 하지만 사람이 魂, Spirit과 같은 창의성이 획일화되는 부분은 더 큰 발전을 더디게 하는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도 한다. 마치 바벨탑의 저주와 같이, 이런 과정을 통해서 지향하는 목표 넘어의 불분명성이 주는 불안감처럼.. 아마 매트릭스와 같이 좀더 깊은 철학적 사유를 잘 표현했다면 훨씬 더 멋진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스틸샷, 사진 출처 : 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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