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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冊)

역사책을 다시 읽다 - 자치통감 1 - 권 7~8 (신동준, 올재)

by Khori(高麗) 2021.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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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227 ~ BC 207

 

 진왕 정이 통일을 하고 진시황이라 칭했다. 그가 죽고 이세 황제가 등극하나 세상은 다시 소용돌이 속으로 돌아간다.  세상은 안정되려고 하며 다시 혼란 속으로 돌아간 것일까?  생각에 권력자가 자기가 해야 할 것을 하는 것과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하는  사이에서 균형을 잃었다고 생각한다. 잃어버린 균형은 조고와 같은 파렴치한 자들이 기울어진 배의 축을 더욱 나쁜 쪽으로 밀어붙이며 개인의 이익과 영달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모든 정치와 구호는 명분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명분과 구호 속에 현재의 결핍을 적나라하게 나타낸다. 클린턴이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고 슬로건을 세우듯, 호리오해하는 백성들도 최소한 시대의 안정과 발전을 위한 최소한의 테두리가 있다.  테두리를 진나라처럼 가혹한 부세와 형벌로 백성의 입을 막는 것으로 강제되지 않는다. 노자의 구절에 백성의 입이 하늘을 찢는다는 구절을  기억이 있다. 조직의 리더, 사회의 리더, 권력의 리더는 명분이란 고리타분함이 아니라  명분이 시대의 흐름에 맞으며 많은 사람에게 이익을 주는 도덕적 방식을 병행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ESG도 마찬가지다. 자본주의라는 탐욕의 경기에 최소한의 도덕성과 가치창조를 위한 사고 전환을 요구한다고 본다. 그렇다면 현재의 시대도 난세라고  볼만한  아닐까?

 

 그러나 백성들이 원하는 대로만 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진나라에서 다시 과거의 제후들의 나라가 봉기하는 과정을 보면  또한 혼란스럽다. 속된 표현으로 개나 소나 모두 왕, 제후의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일어나지만 세상을 품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 처음에 완벽하게 시작되는 경우가 없다고 하더라도, 준비해 나가는 사람들은 한정된다. 이런 모습을 보면 이루어가는 사람과 이루지 못하는 사람의 과정은 상당히 대비된다. 

 

 예전에 읽었던 사기와 비교하면 자치통감은 상당히 건조하다. 사기의 문학적 표현을 높이 사는 이유를  이해할  있다. 고저 없이 진술되는 담백함이 주는 좋은 점은 감정 기복 없이 읽을  있다는 점이고, 이성적으로 여러 가지를 생각해  이유를 돌아볼  있다. 재미가 반감되는 단점이 이에 동행한다. 

 

 

 '조대왕 가(嘉)가 연왕에게 편지를 보내 태자 단을 죽여 진나라에 바치게 했다' 김진명의 소설에서 유리왕이 아들을 죽인 것으로 기억하는데 기록을 찾아보면 유리왕의 미움을  자살한 것으로 나온다. 사실은 그때를 살지 않아  수가 없다. 나는 권력자가 아무리 자식을 부인과 첩을 많이 두고 자식을 많이 두었다고 하더라도 이런 글을 썼다는 것은 인간의 자격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인간만큼 아이가 성장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동물이 없다. 그만큼 자식이 성장하는  시간만큼 오랜 시간을 함께  수밖에 없다.  끝이 좋을  없다. 천륜을 버리는 것은 인간이길 포기한 것이다.  시대의 엄혹함이 인간의 바닥을 보게 하는  같아 씁쓸하다.  엄혹함 속에 인간이   있는 온갖 생각이 집대성된 것은 생존을 위한 투쟁의 과정이라고 본다. 아마  시대의 생각이 인간이   있는 온갖 생각의 대부분이 나오지 않았을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읽히고, 배우고, 좋은 생각을 현재에 받아들이려고 하는 것이다.

 

 왕전은 전쟁에 나가면 계속 진시황에게 노후를 위해 봉읍을 요구한다. "군주는 내심 거칠고 사나운 데다 사람을  믿지 않소. 지금 진왕은 나라 안의 갑사를 모두 나에게 맡겨 놓고 있소. 만일 내가 자손의 기업을 위해 전택을 많이 청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오히려 진왕이 나를 의심하게  것이오"라고  이유를 말한다. 인간은 진실을 듣기 좋아하지만 진실이 항상 즐거움만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인간에겐 의심이란 도구가 마음속에 자리 잡혀있다. 합리적 의심은 다가오는 위험을 막아주는 점검과 준비가 될  있고, 잘못된 의심은 오히려 재앙과 위험이 다가오는 이유가 된다. 이것을 방지하는 것은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표 내지 않는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인간은 생각을 품으며 행동하게 된다. 흔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왕전은 상대방의 성품과 그릇을 알고 상대방의 생각을 디자인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이런 인위적인 행동을 좋다고   없지만 생존을 위한 비책으로는 이해할  있다. 따라 하기도 힘들고, 좋다고도   없지만 그에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생존 수단이라고 본다.

 

  단을 죽여 진나라에 바친 연나라도 망하고, 이를 권유한 조나라도 망한다. 사마광의  중에서 '무릇 나라의 정권을 잡은 자는 재주를 기준으로 임용하고, 예로써 정책을 세우며, 인으로써 백성을 품고, 신의로써 이웃과 사귀어야 한다. 그래야만 관직은 그에 걸맞은 사람을 얻고, 정책은  절도를 얻으며, 백성들은  덕을 품고, 사방의 이웃은  신의에 믿고 따른다"라고 했다. 흠잡을 곳이 없는 좋은 명분처럼 보인다. 그러나 내가 이따금 화날 때가 있는 "슬기롭게 대처하라"와 같은 말로 느껴지기도 한다. 재주로 임용했으나 성품이 이세황제나 조고와 같으면 문제가 없는가? 예로써 정책을 세웠으나 현실적 실리에서 멀어지면 좋은 정책인가? 인으로 백성을 품었으나 이것이 게으르고 나태함을 부추긴다면 괜찮은가? 그나마 신의로 이웃과 사귄다는 구절에 대해서는 다른 생각이 없다. 결국 올바른 성품과 시대에 맞는 뛰어난 재능을 통해 세상에 도움이 되는 것이 타인들의 필요에 부합하는 가장 좋은 길이라고 생각한다.

 

 장자방, 장량과 유방에 관한 일이다. 자치통감에서 드라마틱한 부분이 매우 적은데  부분은 상당히 다르다. '장량이 수차례에 걸쳐 대공망 여상의 병법을 유방에게 설명했다. 유방은 이를 높이 평가해  그의 계책을 채용했다. 장량이 전에 다른 사람에게 병법을 말했을 때는 아무도 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유방이 자신의 계책을 좇는 것을 보고 장량이 크게 탄복했다'라는 구절이다. 여인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화장하고, 남자는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건다. 이런 말이 생각난다. 나의 생각과 마음은 타인에서 꺼내서 보여줄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에게 주는 가장  감동은 역지사지로 생각하고 타인이 갖고 있는 바람을 이해해 주는 것이다. 그것만큼 감동을 주는 것이 없다. 일, 연애,   일을 도모함에 있어서 다른가?

 

 진영의 모진이 진영에게 말한다. '내가 너의  며느리가  이후 너의 선조 가운데 귀한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은 바가 없다. 지금 대명(大名)을 갑자기 얻게 되니 이는 상서롭지 못하다'라고 자식을 만류한다. 이런 타골 전문 엄마가 얼마나 될까? 모두들 자식이 자식의 능력보다  좋은 것을 바란다.  또한 욕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과도함이 미치지 못하는 원인이 되고 자식에게 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지위에 따르는 급여나 혜택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을  때가 있다. 그런 부류의 특징은 자신이  역할과 책임에 준비되어 있는지는 항상 후순위에,   있는 것보다는 하고 싶은 것만 도모하다 결국 남 탓만 하고 부러지는 경우가 많다. 나는 지위와 자리를 묵직하게 누를 힘이 없으면 자위와 자리는 사람을 핫도그처럼 튀긴다고 생각한다. 사실 길거리에 핫도그 집들은 줄어들었으나 인간 핫도그는 예나 지금이나 질량 보존의 법칙처럼 비율 보존의 법칙처럼 인간 세상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항우와 유방이 점차 세를 펼치고, 이세 황제가 조고에게 죽고, 세상은 온갖 사람들의 소란과 혼란의 소용돌이를 만들면 자치통감 1권, 자치통감  1~권 8이 마무리되고 있다. 이제  한나라의 재통일을 보게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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