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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잡부(天上雜夫)_ 사업관리 시즌 2 (해외영업 시즌 1) )

회사다니며 이해한 단어 - 수업료 마이 냈다

by Khori(高麗) 2017.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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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은 끊임 없는 선택이다. 선택은 동시에 포기한다는 것을 내포한다. 일반적인 선택은 선택을 통해서 내가 기대하는 것 또는 그 이상의 결과를 예상하는 방향으로 의사결정한다. 예측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 결과를 미래에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잘 되었을 때, 사람들은 과거의 의사결정, 의사결정의 시점이 잘 이루어졌다고 복기한다. 이렇게 타인의 의사결정을 평가하고, 그 결과를 분석하는 것은 참으로 쉬운 일이다. 


 영화속에서 파란선을 끊어야 할지, 빨간선을 끊어야 할지와 같은 선택의 상황을 생각해보자. 하지만 이런 설정은 현실보다 단순화되어 있다. 내가 관객으로 편하게 콜라와 팝콘을 먹으며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내 손에 들린 가위로 어떤 선을 잘라야 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느낌을 갖게 된다. 영화속의 폭탄같은 극단적인 설정이 갖고오는 결과는 더 단순하다. 살아서 영웅이 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죽음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 결과의 책임이 오랜 시간 나와 같이 함께 따라다닐 가능성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책임에 집착하면 방어적이고 보수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그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과정이다. 어떤 결정이 초래할 결과와 그 결정을 실행할 여건과 상황을 면밀하게 검토하기 때문이다. 결과에 집착하게 되면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행동을 한다. 이런 균형과 조화을 통해서 우리는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 물론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결정을 안하고, 미루는 의사결정에 익숙한다. 이런 것은 말하지 않아도 협동정신이 일사분란하게 이루어진다. 


 지위를 주는 이유는 책임 즉 주어진 일을 완수하기 위한 권한을 주는 것이다. 어렵기 때문에 금전적으로 더 보상을 하는 것이다. 가끔 자신이 해야할 일을 아랫직원에게 물어보고, 맘에 안들면 다시 해오라고 하고, 맘에 들면 구체적으로 실행 방법을 만들어 오라고 하며, 잘못되면 열심히 일한 그 놈만 추궁하는 한국 조직의 완장문화를 보면 '염치가 없다'라는 말을 잘 이해하게 된다.  리더의 자리에 앉아 이런 ghost leadership(그래서, 그런데의 무한루프를 돌리며 결국 자신은 면피가 최우선인 리더십)을 펼치는 사람은 반드시 혁신의 대상이 되어야 조직이 더욱 건강하게 자란다.


 일반적인 경우는 처음부터 감당할 능력, 여건, 상황이 안되고, 책임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 안되는 이유만을 찾는 요인만을 찾기 시작하는 경우다. 너무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행동은 그것을 해야만 할 이유만을 찾지만 책임은 꼭 해야할 과정들을 점검하게 한다. 어떤 상황이던 책임의식은 대단히 중요하다. 높은 책임의식은 뛰어난 리더십에도 꼭 필요한 항목이다. 어려운 문제는 사람에겐 모두 약한 수준의 확증편향이 존재하기 때문에, 마음에 들어온 순간 객관적인 기준을 항상 유지하기 쉽지 않다. 마음에 쏙 드는 이성을 본 순간부터는 마음에 드는 이유만을 A~Z까지 찾는 것과 같다. 조금 인간미 떨어져 보인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객관적 균형을 잘 유지하는 사람이 뛰어난 리더일 수 밖에 없다.


 태생적으로 이런 마음의 평정심을 잘 갖고 못하다면 듣는 귀가 발달해야 한다. 경청이란 '타인의 말을 주의깊게 듣는다'라는 뜻이다. 모든 말을 주의깊게 듣는 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위, 때, 장소에 맞춰서 스스로 판단하는 안목이 필요하다. 타인을 통해서 우리는 객관적인 균형을 보정할 수 밖에 없다.


 안목이란 결국 자신의 깨달음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끊임없는 공부가 학교를 마치고도 필요한 것이다. 책만 보는 공부는 한계가 있다. 경험만으로 쌓아가는 공부는 투박하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學而時習之"라는 논어의 구절과 같이 책과 강연으로 듣고 배운 것은 내것이 될 때까지 사용하고 연습함으로 몸에 익혀야 내것이 된다. 야구배트를 어께에 메고 다닌다고 150Km의 강속구를 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TV를 보고, 구질이 어떤지 알아도, 연습을 통해서 배트스피드가 150Km를 따라가지 못하면 공을 몸에 붙여놓고 떼릴 수 없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이를 실행하는 정도, 수준이 그 사람의 품격을 상징한다. 이를 통해서 품성까지 다듬을 수 있다면 더욱 뛰어난 사람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직접 상황속에 뛰어들게 되면 불안, 공포, 강박등의 심리적인 요인으로 인해서 휘둘린다. 군인, 운동선수들이 반복적인 동작을 지속적으로 몸에 익히는 이유는 특정 상황에서 기계적인 반응을 이끌어 내는 과정이다. 삶도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조직생활에서 마주하는 일신우일신의 환경은 모두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결국 아는 만큼 걸어갈 수 있고, 사람들을 모아서 함께 함으로 더 오래 걸어갈 수 있다. 


 진정으로 어려운 의사결정은 나는 사람에 대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일은 합리성에 기반한다면 큰 탈이 없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조직의 수준은 가장 낮은 능력부분에 alignment된다는 것이다. 족구할때 구멍하나가 패전을 보증하는 것과 마찬가지고, 홈런타자가 즐비해도 투수가 훨씬 더 많은 홈런을 두들겨 맞으면 진다. 선수는 합법적으로 트레이드를 할 수 있다. 그들이 선수로 뛰는 기간이 정해져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 조직에서는 대단히 어려운 문제가 된다.


 조직에서 사람을 아끼지 않는 것은 조직문화 생산성에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 또한 모든 기업활동은 결국 돈을 버는 낮은 수준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기여함으로 정당한 대가를 받는 활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기업활동에 인본주의가 없다면, 그 기업은 오래 존속할 수 없다. 

 

 하지만 이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스펙트럼속에서 언제나 발생한다는 파레토의 법칙을 믿으며 방치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모두가 영화 300백, 계백장군의 5천 결사대와 같이 될 수도 없다.  그 속에서도 출전하기 싫었던 사람이 왜 없었겠는가? 조직에서 관찰하다보면 지속적으로 망해가는 방법으로 일정 수준에 다다라, 열심히 하라는 질책을 받고, 다시 그 망해가는 방법을 더욱 열심히 해서 더 빨리 망해가는 사람들을 볼 때면 안타까울 때가 있다. 또 그들을 살려보겠다고 독려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도 헤아리지 않는 사람을 보면 아비규환이 따로 없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아무리 타고난 재능이 좋다하더라도 공부하지 않고, 특정 수준을 고수하며 새로움을 받아들이지 않는 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그것을 넘어서 나의 안위에 위협이 되는 일에 대해서 생산성을 떯어트리고 타인의 일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일이 벌어지는 현상에 집중하지만, 사실 이런 일이 발생하도록 방치한 리더십의 문제가 더 많이 논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간이란 사람이 통제하지 못하는 가장 강력한 존재다. 그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려는 상상과 시도가 신화, 타임머신에 남아 있지만 한 번도 성공한 예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자신이 그런 행동을 하고 있다고 자각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다. 또한 사사로운 욕심이 공정하고 올바른 협동정신을 이기지 못한다. 그럼에도 순간순간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소크라테스가 아직도 유효한 것은 이런 인간의 무지가 연속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걸어온 발자취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그 발자취에 기대어 내일을 꿈꾸며 살아가야 한다. 발자취에 취해서 어제를 살고자 하는 어리석음에서 어느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 하지만 너무 오래 그 꿈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삶을 망치게 된다. 내일은 어김없이 다가온다. "what another day comes depens on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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