困而不學

해외영업 (書) 2017.09.09 00:01


 논어를 읽고 나면 마음속에 담는 글귀가 생긴다. 困而不學(곤이 불학)이란 글이 그렇다. 네모 안에 나무가 있으니 정원이 아니라 틀에 가두면 나무가 곤란하다고 기억하면 쉽다. 

 원문은 위와 같다. 태어나면서 아는 자가 최고이나 이는 사람의 영역이 아니다. 배우고 아는 사람이 다음이라는 말은 당연하지만 사람은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다. 고생을 하고 공부를 하면 그다음이다. 사람들이 체험하고 공부를 해서 나아지는 수준이 그렇다. 가장 낮은 수준은 개고생을 하고도 공부하지 않는 것이다. 


 싱가포르에서 온 친구 같은 오래된 파트너와 딘타이펑에서 만두를 먹으며 서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했다. 일 이야기만 하는 것은 짧은 시간이면 충분하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은 지역마다 다르지만, 사람들의 나이듬과 깨달음은 비슷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중국계인 친구에게 수담으로 글귀를 쓰게됬다. 


 한참 글귀를 보더니 개고생을 하고 가끔 공부하거나 안 하거나 하는 수준이 내 수준이라고 이야기한다. 나도 스스로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한참 서로를 보면서 웃다가 어디에 나오는 글이냐고 묻는다. 중국사람들은 모두 논어 정도는 안다고 생각하는 나의 생각이 편견이다. 한국 사람이 국어 고문을 능수능란하게 안다고 생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孔子의 論語라고 말하니 자기는 읽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 말이 더욱 놀랍다.


 간체를 쓰는 중국 본토는 글씨 읽기가 어렵다. 40대 정도면 우리가 쓰는 한자와 간체를 다 알지만 젊은 세대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싱가포르 친구도 네가 더 잘 쓰는 것 같다고 하지만 읽을 수 있는 한자와 쓸 수 있는 한자의 수준은 다르다. 구글링을 해서 다시 글귀를 찾아보더니, 전화기에 저장을 한다. 오늘 갑자기 이 글귀를 보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됬단다. 무엇인지 모를 일이지만 친구에게도 좋은 의미가 되었으면 한다.


 종종 아시아에서 서로 만나서 영어를 쓰다가도 중국계와 한자 몇 마디를 교환하는 수담은 색다른 느낌을 준다. 공통 문화의 공감대를 바탕으로 그 의미가 비슷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다음에 볼 때엔 논어를 한 권 사주기로 했다. 출장에서 돌아와 여러 가지 일들을 돌이켜보면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욕망, 희망, 꿈을 위해서 움직인다. 그런데 또 잡지 못한 그 꿈과 희망과 욕망을 바라보면 공부하지 않는다. 나부터가 그렇다. 


 출장에서 새벽에 도착해 오전에 회사에 다녀왔다. 쉬고 싶은 마음은 인지상정이지만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이유는 고마운 일이다. 게다가 오랜만에 후배 녀석이 저녁에 보잔다. 그렇게 기억하고 찾아주는 사람이 고맙다. 바쁘게 보내는 와중에 物極必反(물극필반)이란 글귀를 오늘 보게 되었다. 사물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반한다는 말이 족하면 그칠 줄 알아야 하고, 비워야 다시 무엇을 채울 수 있다는 의미라고 느낀다. 노자의 말처럼 자연스러운 흥망성쇠의 과정을 의미하기도 하고, 사람은 결핍을 채우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의미와도 일맥상통한다. 그런데 이 글귀를 말하는 사람의 행동을 보면서 그것이 學而知인지 困而學인지 困而不學인지 참 알 수가 없다. 또 작은 이벤트를 통해서 나눈 대화 속에서도 그렇다. 오늘 새벽부터 바쁘게 몸을 움직이고 사람들을 만나고 나눈 대화 속에서 나 또한 무엇인지 많은 생각을 한다. 


 장점으로 살아간다지만, 내가 스스로 困而不學하고 있는 스스로를 경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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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ori(高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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