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이렇게 늦은 밤에 자판을 두길기는 것이 바쁘다는 핑계의 증거처럼 보인다.
스스로의 행동은 마음의 저울로 확인하고, 바쁘게 보냈는지는 거친 숨소리와 나만 느낄 수 있는 상태로 판단한다. 무엇보다 목표와 결과를 비교함으로 앎을 쌓아간다. 써 놓고 보니 그 속에 옳고 그름, 좋고 싫음과 같은 것을 쓰지 않았다. 배우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가능하다. 나를 이기는 어려움이란 결국 시작할 때의 투지와 돌아볼 때의 상태가 얼마나 동일한가에 따라 결정된다. 삶이 후회가 되고 추억이 되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다. 모두 나에게 달린 일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중국 전시회에서 만나 고객의 답장이 왔다. 내가 써 놓은 始終如一이란 글귀를 사진으로 찍어 보냈다. 재미있는 녀석, 독한 녀석 이런 생각이 들다 웃음이 났다. 어디에 살던 사람은 유사하다. 그런 사람과의 교감은 멀리 있어도 자기가 한 말을 지켜감으로 넓어진다.
창립기념일인데 출장 중 잡은 약속이 2개나 된다. 년 초 업체와 협력을 하기 위해서 선수를 보냈더니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인들도 있고, 협력사 부사장님께 민망하기도 하다. 잘 되지 않는 일은 상생을 추구한다고 말하고 마음 씀씀이가 내 것만 바라보는 이기심이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아직 우리나라 기업들의 기업철학은 사회적 의식 수준을 반영하는 좋은 예이다. 문화가 성장하지 않으면 절대 선진국이 되지 못하는 이유다. 먼저 아는 지인과 커피를 마시고 올라가려는데 부사장님이 쓰윽 보고 가신다.
조금 민망하기도 하고 아니면 예전보다 뻔뻔해져서 일지도 모른다. "부사장님, 년 초에 잘 부탁드린다고 인사드리고, 일을 맞겨드렸더니 진도를 하나도 안 빼주시면 어떻게 해요?"하면 웃으면 말씀을 드렸다. 부사장님도 하고 싶은 말씀이 많으시지만 일에 대해서 이것저것 협력 방향에 대해서 잘 설명해 주신다. 같이 동행한 팀장이 "저희 선수 때문에 고생이 많으셨지요?"라고 이야기하자마자 답답한 속내를 알아줘서 고맙다는 표정을 지으신다. 숨을 한번 크게 쉬시더니 "담배 피우러 갑시다" 하신다. 서로의 어려움과 함께 나아가고자 하는 것에 대해서 크게 합의가 되었다. 금년보다 내년에는 더 잘 될 것이란 확신을 갖는다. 아는 지인은 드래곤볼 모으듯 함께 일하고 싶은데 각자의 삶에 자기의 길을 세워가는 듯하다. 부사장님과 잘 이야기하고 마중을 해주는 지인에게 "너만 잘 하면 된다는데 어르신 속을 썩이냐?" 그랬다. 아군이냐 적군이냐를 외치는 녀석의 얼굴이 밝아서 좋다.
다른 곳 사장님은 협력에 대해서 걱정을 하신다. 동종업종이기에 동업자 정신이 주는 긍정과 부정을 함께 고민한다. 협력을 할 때 상대방에서 버려야 하는 것을 걱정하고, 얻어야 하는 것들을 함께 돌아본다. 이런 파트너는 어떻게 보면 우유부단해 보이기도 하고 의사결정력이 없는 것처럼 비치기도 한다. 뭐든 팍팍 지르고 폼내는 사람이 멋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심을 갖고 논의하는 사람과 실력이 있는 사람이 동일인이라면 절대 적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서로 잘 논의를 하고 나서 "사장님 제가 2년 쫓아다녀서 승낙받은 거예요?"라고 응석을 부리니 활짝 웃어 주신다. 다시 한번 시종여일이란 말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 출장 갔다가 온 팀원, 거래처 사장이자 친구와 저녁을 먹었다. 팀원은 일이 잘 되었고, 친구도 바쁘게 잘 되어간다. 업계 사람들에 대해서 좀 알아봐 달라는 부탁을 했다. 어제도 파김치가 되도록 고객님 뒷치닥거리를 하고 왔는지 얼굴이 까맣다. 연말 오더도 신경쓰라고 하려다가 고객 이야기를 하는데 "대학생이네 대학생"이라고 농담을 하게 된다. 담소도 나누고 정보도 교류한다. 그러나 일보다는 사는 이야기를 하게 된다. 해외영업팀장이 고객하고 수주활동만 하는 일이면 좋겠지만, 사람 사는 게 그렇게가 않다. 공사 구분도 중요하고 공사다망하다.
그렇게 집에 돌아오는 길에 별것도 아닌 일에 거품을 무는 고객님을 skype로 달래줬다. 성질 급한 사람은 한국에만 모여 살지 않는다. 어느 나라에나 "빨리빨리"는 있다. 이 말이 많이 홍보되고 수출되었는지 요즘은 해외 고객들이 더 한다. 하긴 함께 온 고객사 엔지니어가 자기 회사 영업본부장을 보며 "그놈의 빨리빨리"라는 말을 들을 때 서로 한참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가 하면 며칠 전 생일이라 일찍 들어와서 누워있었더니 출장 간 녀석 전화가 왔다.
"한국에서 전쟁 난다고 하는데, 전쟁 나고 납기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공문을 써달라는데요?"
순간 전화기 줄을 땡겨서 한 대 떼리거나 무선으로 전기 충격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00 사장님께 감사하다고 인사드리고, 그 요청부터 공문을 보내라고 해라. 생일날 이따위 질문을 들으니 ㅎㅎㅎㅎ"하고 끊었다. 농담이면 좋겠는데 아니다. 그러고도 남을 사람들이다. 나중에 좋은 생각이 나서 다음날 카톡을 날렸다. "일 년치 발주를 한 번에 내시라고 해라" 안타깝게 비행기 탑승으로 전하지 못했단다. 분명 저 공문이 오는 날을 내가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집에 도착해서는 메일을 조금 보고, 업무 관련 내용, 지시, 요청 등을 정리했다. 여력과 능력이 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도와줄 수 있으면 좋다. 하지만 모든 일을 하지 못한다. 또한 사람들은 도와주면 그것이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한다. 자꾸 떠먹이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스스로 방향을 잡고, 걷는 훈련을 시키고, 넘어져도 보게 해야 한다. 하지만 스스로를 화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들판에서 경쟁력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화원에서는 잡초를 뽑고, 들에서는 화초를 뽑는 게 사람이다. 조금 사적으로는 재수 없어 보이지만, 더 좋은 사람들로 성장하길 기대하며 화원에서는 화초가 되고, 들판에서는 들꽃과 잡초처럼 생존력을 갖는 목표를 위해서 뺑덕어멈을 해야 한다는 다짐을 한다. 어차피 요즘 세상은 글로벌하게 병자호란이다. 중국이 이끄는 힘에 저항하고 승선하고 해야 하는 부분에 현명한 판단이 요구되는 시대다.
이렇게 잠들고 토요일이 되었다. 몸은 나날이 커지는 현상에 제동을 걸어야 하는데 커지면 무거워지고 다시 게을러진다. 만보가 넘던 걸음이 6천보대에 머물고 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일모레 다시 짐 쌓서 출장을 가야 한다. 항상 미안한 마나님이 투덜대면 다림질을 해주신다. 여름옷과 겨울옷을 들고 가야 하는 출장은 매우 번거롭다. 기내식을 5번 넘게 먹어야 하는 일은 내가 가축인가 승객인가를 구분하기 힘들게 한다.
힘든 것은 둘째치고 비행기에 몸을 싣는 순간부터 관광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들고 와야 하는 압박이 생긴다. 한 명이 출장을 가면 사업기회를 확정하거나 최소한 자신의 비행기 가격과 출장비의 두배는 순이익이 나야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300만 원을 쓰고 가면, 600만 원을 벌 사업기회는 갖고 와야 한다. 순이익의 %를 안다면 매출액은 절로 계산된다. 출장이 부담을 주거나 누군가를 닦달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영업의 뒤에서 지원하는 모든 연구개발, SCM, 품질관리 부서의 기대가 나를 통해서 실현되기 때문이다. 나의 어려움이란 이런 생각이 행동과 말로 타인에게 전달되고 팀원들은 부담을 갖는다는 것이다. 나도 꼰대화 현상에서 아주 자유롭지 않지만, 스스로 누군가에게 공헌과 기여를 하려는 사람이 결국 세상의 보답을 받는다. 작년 사고가 나서 큰돈의 손실과 사업기회가 망실된 고객이 있다. 거기에 나도 일조를 했으니 자유롭지가 않다. 거래가 끊겼어도 현지에 갈 때마다 인사도 하고, 얼굴도 보고 하기를 일 년이 넘었다. 우연히 한 번 물어본 일이 다시 큰 사업이 되었다. 갑자기 돌아가는 물량 때문에 매일 "빨리빨리 납품하세요"라는 메시지가 오지만 참 즐거운 일이다.
짐을 다 쌓고, 최근에 뒤죽박죽이 된 비행기 일정을 다시 보고, 취소도 환불도 안 하는 나라의 호텔에 일정만 바꿔달라는 읍소 끝에 승낙을 받았다. 화산이 터져서 비행기가 안 뜨는데 백만 원 정도의 호텔비를 깔끔하게 떼여본 적이 있다. 망할 놈의 나라라는 말이 나오다가도 변경 확정된 예약을 보니 기분이 좋다.
그런 생각을 하는 중에 전화가 왔다. 월요일 미팅을 하기로 했는데 토요일에 전화가 와서 무슨 일이 생겼나 했다. 집에 애사가 생겨서 월요일 미팅을 알아서 좀 하라는 거래처 부탁이다. 친형제처럼 오랜 시간을 보내서 그런지 일은 별로 중요하지가 않다. 아는 분들에게 연락을 하고 집을 나섰다. 대신 조문을 해달라는 사람들을 대신하고 지인들이 모여서 서산까지 다녀왔다. 출장을 가면 어머니도 드시고, 주변에 항암치료나 성인병이 있는 분들에게 좋다는 차를 이번에도 사다드릴 생각이었는데 이런 일은 항상 생각이 사실보다 늦다. 좋은 일은 못 가도 슬픈 일에는 꼭 가려는 나름의 기준이 있다. 나를 꼭 기억해 달라는 것보다 좋은 일은 내가 없어도 충분히 즐겁다. 슬픈 일은 옛 말처럼 조금씩 나눠서 덜어주는 것이 사람 사는 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시 한참을 달려서 올라왔다. 언제 오냐는 마나님의 상태 점검 메시지, 다시 지인들에게 부탁하신 일을 잘 처리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내일 직원의 결혼식에는 도저히 갈 수가 없겠다. 다시 다른 직원에게 부탁을 했다. 결혼식에 상갓집 다녀와서 그렇다는 그럴싸한 핑계도 생긴 셈이다. 다시 출장을 갈 텐데 이러다가는 소박맞고 homeless가 되기 딱 십상이다. 나도 살아야 한다는 생존 본능이 생긴다. 2일 동안 정신없이 움직이다 보니 입에서 정말 단내가 난다. 그새 징징대는 카톡도 온다. 팀원들의 카톡에 팀장은 답할 의무가 있다. 무엇을 시키려고 묻는 것이 아니라 몰라서 물어보기 때문이다. 팀장보다 팀원 숫자가 많다. 젊은 청춘들의 불만도 없어져야 하지만 팀장도 주말 카톡, 단톡, 개톡이 항상 즐거운 것은 아니다.
이 모든 지금의 기억이 좋은 추억이 되길 바랄 뿐이다. 다 내 손에 달린 일이다. 문제는 휴일과 주말이 이렇게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치 출처 :lifestyle.framar.b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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