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종이, 자석, 비단, 도자기, 강철, 고무, 알루미늄, 플라스틱, 실리콘, 콜라겐, 탄산칼슘 그리고 재료공학에 적용하는 AI와 이의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가 담겼다.
화학 수업이 엄청나게 싫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주기율표를 무조건 외워오라는 말이 "뭐라는 겨?"정도로 해석되었으니 당연히 수업 첫날부터 튼튼한 몸을 활용한 다양한 타격음 체험실험을 했었다. 당연히 성과가 좋을 수 없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우리 집주인님은 화학전공이다. 병원 검진 결과를 보면 알 수 없는 알파벳과 숫자의 의미는 기준이 있어야 겨우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한다. 내 검진표를 들고, 이러면 문제가 있다고 혼자 궁시렁거리는 주인님을 보면 신기한 것도 사실이다. 이 책에서 잠깐 주기율표의 구조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닥치고 외워'가 아니라 그와 같은 작은 설명이 곁들여졌다면 내가 관심을 갖을까? 관심은 모르겠지만 부정적인 거부감은 확실하게 줄어들었을 것이다.
화학이란 주제에 물질의 역사와 에피소드, 물질이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을 챕터별로 구성하고 있다. 나 같은 화학적 문외한이 접해도 충분히 쉽게 의미를 파악할 수 있도록 글을 쓴다는 것은 작가가 그만큼 주요 분야의 전문성과 추가적인 자료 조사를 통해서 기술했다는 의미다. 이성적 작업이 많은 분야의 사람이 인문학적 이해가 높다면 훨씬 좋은 결과물을 낸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이 책을 통해서 문학, 역사, 철학과 같은 인간 본성과 사고를 볼 수 있는 인문학을 어떻게 활용하지는가?에 대한 좋은 예라고 생각된다. 직업상 나를 도와주는 개발자들에게 잔소리를 한다. "네가 하고 싶은 것과 당신이 만든 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하고 싶은 것"이 일치해야 너도 좋고, 반응도 좋다는 말이다. 다른 말로 바꾸면 "네가 좋은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기여하는 형태"가 될 때 인간 문명의 호응을 얻는다는 사실이다. 이런 마음이 있기 때문에 딱딱한 12가지 재질과 화학적 구조, 더 많은 인간 문명의 영향과 사례에 대해서 상호 보완적으로 책이 구성되었다고 생각한다. 나 같은 문외한이 또 이 책을 통해서 전혀 볼 일이 없는 화학에 대한 간략한 정보도 얻게 되는 것도 이런 구조 때문이다.
12가지의 물질과 그 물질이 역사와 인류에 미친 역할은 대단하다. 그중에서도 선택을 하라면 나는 종이, 철, 실리콘을 고르고 싶다. 인간의 행태와 사고를 보면 수 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물질문명의 발달이 다른 환경을 제시하기 때문에 사례가 바뀐 것이지 인간이 유사한 상황에서 생각, 행동하는 패턴을 보면 사람이 발전한 것인가에 대한 심각한 의심을 하게 된다. 태어나면 reset 되는 천운인지 저주가 인간에게 있다. 그런데 종이라는 것은 이런 인간의 천운인지 저주인지 알 수 없는 사태에 변화와 발전을 줄 수 있는 핵심적인 요인이기 때문이다.
금속, 메탈 하면 철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철기문화의 혁신을 보지 못했지만, 지금도 철을 기반으로 한 인간의 문명은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동시에 중요한 산업이다. 재료의 왕이라는 저자의 표현이 잘 어울린다. 그렇지만 나의 일상에서 철은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다. 크롬 코팅이 되어 반짝이는 듯 하지만 물이 나어 녹이 슬면 '잘못 만들었네'라는 생각이 앞선다. 내가 종사하는 업종에서는 금속을 많이 사용하지만 대부분이 알루미늄이 가장 많고, 스테인리스 금속은 가공, 원가 문제로 많이 사용하기 어렵다. 사람들은 변하지 않고 그 형태와 속성을 유지하는 것을 바란다. 하지만 철과 같이 산화하는 유한한 자원이 있기에 또 변화에 대응하는 역량이 개선된다. 그런 작은 부족함이 현실이고 완벽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기에 보다 인간적인 부분도 존재하다. 일상에서 메탈 큐브에 은백색의 도색, 코팅된 이곳저곳의 기념 열쇠고리를 모은다. 4장을 읽다 여기에 철이 얼마나 들었을까 하는 생각에 잠시 잠기게 된다.
실리콘에 대한 설명도 일반인에게 조금 더 자세하고 이해하기 쉽게 되어 있다. 지하철 광고판에 요란한 플라스틱 서저리(성형수술)하면 떠오르는 실리콘이지만, 많은 전자기기 기판에 붙은 메모리, IC, 부품 관련한 반도체는 인간의 한계를 크게 극복시켰다. 복합적인 통찰력은 인간이 우수하지만, 단시간에 복잡한 계산에 한계, 이런 부품을 통해서 거리의 제약을 줄여주는 통신, 통신을 바탕으로 멀리 있는 사물을 듣고 바라볼 수 있는 수단의 모든 것에 사용된다. 기술과 과학의 발전은 인간의 오감이 확장된 형태다. 그리고 갈수록 확장된 오감을 통한 인지의 영역까지 AI라는 형태로 확장되고 있다. 막연한 불안감에 대한 저자의 말처럼 그런 불안한 변화를 품고 살아가는 시대다. 하지만 나는 인간의 모든 문명은 인간에게 헌신하는 방향으로 수렴된다고 믿는다. 작은 이탈과 일탈이 존재하지만 인간 또한 자정이 문화가 있다.
저자는 빅데이터 처리와 시뮬레이션을 통한 혁신적인 물질에 대한 끝없는 도전과 가능성을 말하고 있다. 이는 분명 과학자와 분야의 종사자들이 갖는 꿈과 희망이다. 그들이 노력한 결과가 인간 사회에 또 어떤 혁신과 변화를 줄지 작은 관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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