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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44

영화로 기억되는 노래들 예술이란 범주 안에서 자장면과 단무지, 라면과 김치와 같이, 떼려야 뗄 수가 없는 찰떡궁합 콤비가 있다면 역시 영화와 음악이다. 영화의 청각적인 요소를 책임지는 음악들. 그 중에서도, 영화의 알맞은 위치에 적절하게, 혹은 절묘하게 삽입되어 천 번의 대사보다 깊은 인상을 준 '영화로 기억되는 노래들'을 한국 영화와 외국 영화, 두 편으로 나누어 소개해본다. (영화를 목적으로 창작된 노래가 아닌, 기존에 있던 곡들을 사용한 경우를 기준으로 선정하였다.) < 접속 > / 사라 본(Sarah Vaughan) - A lover's concerto 많은 라디오 피디들은 영화 < 접속 >이 라디오 프로듀서를 잘못 묘사한 대표적인 영화라고 얘기하지만 마지막 장면에 흐른 사라 본의 「A lover's concerto」에.. 2015. 11. 8.
말러, 교향곡 1번 ‘거인’ 음악에는 경계가 없습니다. 한데 애써 경계를 만들려는 사람들이 있어서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솔직히 저는 그것을 ‘허위적 관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대중가요를 종종 듣곤 했는데 그런 제 모습을 보고 후배가 한마디 툭 던지더군요. “이제 음악적 노선을 바꾸는 겁니까?” 물론 장난삼아 던진 말이겠지요. 한데 그 농담 속에도 우리가 가진 고정관념, 이를테면 클래식과 대중음악 사이에 놓인 견고한 장벽이 있습니다. 극단적으로는 클래식만을 ‘들을 만한 음악’으로 여기는 순혈주의자들도 종종 눈에 띕니다. 하지만 그것은 내면의 결핍을 보상받으려는 심리에 가깝지 않을까요? 정작 음악에서 중요한 것은 개성과 깊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장르 불문하고 그 두 가지를 품고 있는 음악은 훌륭합니다. 저는 최근에 싱어 송라이.. 2015. 2. 23.
에릭 사티, [6개의 그노시엔느] (6 Gnossiennes) 에릭 사티, (6 Gnossiennes) 지난 회에 에릭 사티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사티가 젊은 시절에 떠돌았던 몽마르트르 언덕과 캬바레 ‘검은 고양이’, 또 사티의 어린 시절과 그의 음악에 담긴 ‘중세적 명상’의 관계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함께 들었던 곡은 사티의 초기작이었던 였지요. 사실, 사티에 대한 언급은 그렇게 한 편의 글로 마무리할까 싶었습니다. 앞으로도 거론해야 할 음악가, 또 들어야 할 음악이 많아서였습니다. 한데 뭔가 영 아쉽고 찜찜했습니다. 사티는 생존했던 시절보다 20세기 중후반 이후에 그 존재가 더욱 빛나기 시작했고, 피아니스트들이 즐겨 연주하는 레퍼토리는 아니지만 대중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 음악가이기도 합니다. 물론 대중이 좋아하는 곡은 사티의 음악 중에서 극히 일부이긴 하지.. 2015. 2. 14.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 올해는 핀란드의 작곡가 얀 시벨리우스(1865~1957)의 탄생 150주년입니다. 그의 음악을 연주하는 무대들이 적지 않습니다. 특히 3월13일 예술의전당에서 펼쳐지는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의 내한 연주회에 애호가들의 기대가 쏠려 있습니다. 거장 마렉 야노프스키(76)가 지휘봉을 듭니다. 이 지휘자에 대해서는 제가 (2012년, 돌베개)라는 책에서도 길게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만, 이제는 몇 차례 내한공연을 통해 한국에도 꽤 많은 팬들이 생긴 것 같습니다. 이 지면에서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덧붙이고 싶은 사실은 이날 연주회에서 협연하는 바이올리니스트가 프랑크 페터 침머만(50)이라는 점입니다. 2001?2008년에도 한국에 다녀간 적이 있는 침머만은 크리스티안 테츨라프, 안네 조피 무터 등과 .. 2015. 2. 14.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교향시 (Also sprach Zarathustra)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1864년에 독일 뮌헨에서 태어났습니다. 네 살 위의 구스타프 말러와 더불어 후기낭만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가로 자리매김돼 있지요. 한데 이 시기, 그러니까 슈트라우스와 말러 같은 이들이 활약했던 이른바 세기말과 20세기 초반은 문화사적으로도 큰 변동이 있었던 ‘전환의 시기’입니다. 그중에서도 중요한 것으로 대중문화와 대중매체의 확산을 꼽을 수 있겠지요. 영화의 탄생에 대해서는 여러 이견이 있긴 하지만, 대체로 1895년 12월 23일, 뤼미에르 형제의 필름을 프랑스 파리의 한 카페에서 유료로 상영한 날을 기점으로 꼽고 있습니다. 그리고 음악을 대중적으로 복제하는 것을 가능케 했던 또 하나의 테크놀로지, 즉 음.. 2014. 12. 13.
말러의 염세적 세계관이 집약된 곡 [교향곡 6번 a단조 ‘비극적’(Tragische)] 클라우디오 아바도(Claudio Abbado, 1933. 6. 26.-2014. 1. 20.) [출처: 위키피디아] 지난 20일에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Claudio Abbado)가 타계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지휘자 중의 한 명입니다. 저는 직업이 기자인지라 아바도가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부고 기사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타계를 애석해할 시간도 없었습니다. 아바도가 향년 81세로 타계했다는 기사를 20분 만에 썼습니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어떤 개인적 감정이 밀려왔습니다. 사실 저는 쉰 살이 훌쩍 넘었는지라 객관적으로 보자면 이른바 ‘나이든 한국 남자’ 축에 속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부류의 세대적 특성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저는 감정의 샘이.. 2014. 2. 3.
차이코프스키의 비관적 인생론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다 [교향곡 6번 b단조 op.74 ‘비창’(Pathetique)] 오늘은 지난 주에 이어 차이코프스키의 를 듣겠습니다. 아시다시피 ‘비창’(Pathetique)이라는 표제가 붙어 있습니다. 차이코프스키의 번호가 붙은 교향곡 중에서 표제를 지닌 것은 1번과 6번입니다. 에는 ‘겨울날의 환상’(Winter Daydreams)라는 표제가 붙어 있지요. ‘겨울날의 몽상’이라고도 번역합니다. 6번에 붙어 있는 ‘비창’은 이 곡의 초연(1893년) 직후, 차이코프스키의 동생 모데스트가 지은 이름입니다. 모데스트는 차이코프스키의 매니저와도 같은 역할을 했지요. 우유부단하고 내향적이었던 차이코프스키는 동생 모데스트에게 적잖이 의지를 했던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형과 동생이 거꾸로 된 것이지요. 초연(1893년) 직후에 차이코프스키가 모데스트에게 표제를 붙이고 싶다는 의향을 말하자,.. 2013. 12. 30.
내일도 안녕하지 못할 우리(2) : [변호인] 특정집단의 별점 테러도 특정 대통령을 찬양하려는 영화라는 선입견 혹은 그 반대의 경우도 모두 내려놓아도 된다. 은 좌우의 논리를 설파하는 정치 영화가 아니다. 그저 상식적이기를,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기를, 어떤 공권력도 제 국민을 폭력으로 제압해서는 안 된다는 그 상식을 말하는 영화다. 헌법 제1조 2항 -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양우석 감독은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주장하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모순을 되짚고, 상식을 실천하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에 가득 담아둔다. 당연하게도 영화는 실화와 픽션의 경계를 어디에 둘지 고민하지 않는다. 그저 법 앞에, 권력 앞에 대한민국의 국민이 평등하기를 바라는 진심을 펼친다. 그러니 좌파니 우파니 극우.. 2013. 12. 29.
베토벤 생애 최후의 작품 [현악 4중주 16번 F장조 op.135] 베토벤의 음악적 생애를 대표하는 장르는 9개의 교향곡, 또 ‘피아노의 신약성서’라고까지 일컬어지는 32개의 피아노 소나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울러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장르가 현악4중주입니다. 베토벤은 모두 16곡의 현악4중주를 남겼습니다. 그 16곡 외에 단일 악장으로 출판된 도 현악4중주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겠습니다. 한데 을 꾸준히 읽어온 분들은 아시겠지만, 베토벤의 교향곡과 소나타들 중에서 주요 곡들을 모두 언급했음에도 아직까지 현악4중주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연재를 시작하면서 “클래식 음악을 듣고자 하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거쳐야 할 필수적인 걸작들을 소개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지난해 9월 12일자에 게재된 ‘내 인생의 클래식 101, 첫발을 내딛습니다’라.. 2013. 12. 12.
교향곡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바꾸다 모차르트가 남긴 교향곡은 모두 41곡입니다. 동시대의 작곡가 하이든이 썼던 100곡 이상에 견주자면 적은 분량이지요. 하지만 모차르트는 자신보다 24세 연상이었던 하이든보다 훨씬 먼저 이 세상을 떠났으니, 35년간의 짧은 생애에 41곡의 교향곡을 썼다는 사실은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증표라고 하겠습니다. 첫번째 교향곡은 고작 여덟 살이던 1764년에 작곡됐지요. 아버지 레오폴트에 이끌려 서유럽 곳곳을 여행하던 시기에, 사실 그것은 결코 안락한 여행이 아니라 혹독한 연주투어였지만, 어쨌든 그 시기에 런던에서 작곡됐습니다. 자필악보에 ‘볼프강 모차르트의 교향곡, 런던, 1764년’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물론 여덟 살이었던 모차르트가 그렇게 썼다기보다는 그의 아버지 레오폴트가 기입해 넣었을 것.. 2013. 12. 8.
‘피아니스트’ 베토벤의 마지막 연주 - 베토벤, 피아노 3중주 7번 B플랫장조 Op.97 ‘대공’(Archduke) 루드비히 반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출처: 위키피디아] 베토벤이 태어난 해는 1770년입니다. 그의 생년을 새삼스럽게 거론하는 이유는 당시 유럽의 사회적 변화를 다시금 반추해보기 위해서입니다. 베토벤이 태어난 직후의 가장 큰 사회적 사건은 아마도 농노제 폐지라고 해야겠습니다. 계몽군주로서 많은 개혁을 단행했던 황제 요제프 2세가 농노제를 폐지한 것은 1780년대의 일이었습니다. 이어서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났고, 나폴레옹 군대가 유럽 사회를 전운 속으로 몰아넣습니다. 자, 이렇게 당시의 큰 변화를 복기하는 이유는 귀족사회의 몰락을 설명하기 위해섭니다. 그렇습니다. 광활한 영지와 농노제도에 의해 유지됐던 귀족들의 사회경제적 기반은 급속히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전쟁까지 벌.. 2013. 11. 26.
국왕 마저 감동시킨 최고의 음악 - 헨델, 메시아(The Messiah) 헨델은 중풍을 맞았습니다. 그의 나이 52세가 되던 1737년 봄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요? 음악적 정력가였던 헨델이 중풍을 맞게 된 이면에는 당시 런던 음악계의 복잡한 상황이 얽혀 있습니다. 제가 에서 몇 번인가 설명했듯이, 헨델이 생존했던 시절의 런던은 음악을 일종의 돈벌이로 간주하는, 말하자면 유럽에서 음악 산업이 가장 번성했던 도시였습니다. 그중에서도 귀족과 부르주아 청중에게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장르는 뭐니뭐니해도 오페라였습니다. 헨델의 음악적 생애에서 오페라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이탈리아어로 된 오페라를, 런던에서 공연하려는 목적으로 작곡했던 최초의 음악가가 바로 헨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헨델(George Frideric Handel) [출처: 위키피디아].. 2013.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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