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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冊)

아베 규탄 대회 - 역사의 현장

by Khori(高麗) 2019.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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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화문 서점에 들렀다. 구경을 마치고, 광장에 나가보니 20세기 vs 21세기의 생각이 충돌한다. 길가에서는 길 한폭판 사람들을 욕하고, 길 한복판 사람들은 길가의 사람들과 다른 생각이 넘쳐난다. 그 경계에 차가 다닌다. 그것이 진실이자 사실이다. 그 사실만큼 그들의 주장과 생각에 얼만큼의 진실과 사실이 담겨있는가? 내 생각이 모든 진실을 담고 있지 않지만 진실의 양이 많은 것은 자명하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구경을 하다, 광장을 걸어 30분 가량 시간을 보냈다. 그 중 십분은 세종문화회관의 광고와 현실의 아이러니를 잡기 위해서 서있었다. 광장은 언제나 자유롭고 소란스럽다. 자건거를 끌고 들어오신 아저씨가 젊은 사람에게 시비를 건다. 내가 불편하는 것은 다투는 것이 아니다.

 왜곡된 진실을 주장하는 사람, 왜곡된 진실을 주장하는 사람에게 혼을 판 사람, 왜곡된 진실을 알지만 어떤 이유로 그들을 도와야만 하는 불쌍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거짓을 진실로 믿는 어리석은 사람도 존재한다. 인간의 역사에 그런 일은 많다. 주장하는 사람은 목적과 사명이 있을 것이고, 혼을 팔고 부끄러움을 뻔뻔하게 주장해야하는 사람은 생존이 걸린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생존이 걸리면 그것이 옳다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라 삶을 살아갈 방법을 찾기 위한 수단이 된다. 아니면 사리분별을 못하는 안타까운 일이 있을 수 있다. 

 인간은 제대로 걸어야 시간이 흐른뒤 후회가 없다. 과거의 시대가 우리의 의지와 달리 여기서 치이고, 저기서 치이며 삐뚤빼뚤 걸어온 것을 비난만 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왜 그렇게 걸어왔는지, 우리가 가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 삐뚤빼뚤 걷기 이전에는 어떠했는지, 자라나는 후손에게는 어떤 세상을 물려주고 갈 것인지 생각해야한다.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세대는 공동체의 문제아가 될 수 밖에 없다. 가족도 마찬가지다.

 과거가 있기 때문에 현재가 존재한다. 지금은 이념, 정파의 논쟁의 틀을 갖고 있지만 세대간의 갈등 측면도 높다. 현재를 기준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미래를 위해서 과거의 아픔을 극복하는 방향을 언급한다. 좀더 나이가 많은 세대는 그들도 불가피하게 한 사람들도 존재한다. 그들의 삶이 부정당하는 것이 속상할 수 있다. 차라리 자발적으로 지금 세대가 부정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하고 이익을 얻었다면 모르겠지만 노년 세대들은 그런 불편함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21세기를 살아가는 20세기 관념의 세대와 21세기 미래형 세대의 충돌이 혼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런 충돌속에서도 한국인이 갖고 있는 정체성을 부인하거나 흔드는 일이 용납될 수 없다. 경제는 총성없는 전쟁이다. 경제에 정치가 개입되는 순간 나쁜 방향으로 가속된다. 경제는 생존, 상생,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한 공헌적인 개념의 활동이다. 이 활동이 상대방의 숨통을 노리는 순간 전쟁과 같이 피아구분은 불가피하다. 

 이 시점에 상대방을 돕는 행위는 한국인의 혼과 정체성의 입장에서는 옳지 않다. 국가보안법에서도 주적이었던 북한을 돕는 것은 이적활동으로 간주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인이라면 어떻게 한국을 공격하기 위한 일본의 주장을 홍위병처럼 동조할 수 있는가? 정치가 타락해서 적의 적은 친구라하더라도 한국인이라면 넘지말아야 할 선이 존재한다. 故 노회찬 의원의 말처럼 외계인이 공격한다면 모든 국가가 일치해서 대처해야 한다. 한 국가의 특정분야를 공격해서 피해를 만들려는 의도에 대항해서 의병활동은 못해도 상대 국가를 지지하는 파렴치한 매국행위는 근절되어야 한다. 이런 곳에 국가보안법을 적용해야한다는 처벌과 규제중심의 논의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 한국인, 공동체를 구성하는 최소한의 연대의 틀은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가 친탁, 반탁처럼 싸울일인가?

 100년 전 스스로를 지킬 힘이 부족해, 굴욕을 참으며 생존해야 하는 시절이 있었다. 그 과거이 사실이 100년이 지나서 다시 성립되어야 할 명문과 이유과 없다. 그 때의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의 실력은 엄연히 다르다. 그 실력이 축적은 과거세대와 현재세대의 이어달리기의 결과다. 일본처럼 우리도 500~1,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한심한 섬나라에 문명을 전파한 상류문하라며 그들을 폄하하고 싶지 않다. 770여회의 침략적 도발의 기록을 들먹이며 그들의 속된 근성을 탓하고 싶지도 않다.

 일본은 倭의 컴플렉스를 벗어나지 못한 불쌍한 나라라고 생각한다. 컴플렉스가 생기면 컴플렉스를 만드는 대상을 혐오하고 증오한다. 그와 관련된 진실을 외면하고 왜곡하는 것도 그렇다. 컴플렉스가 특정 분야에서는 강력한 동기부여와 몰입의 원인이 된 부분도 존재한다. 그러나 갑자기 졸부가 과거의 못살고 못배운 과거를 보상받기 위해서 하는 행동과 지금 일본의 꼴통짓은 크게 다르지 않다. 현명한 사람은 알아서 살아가고, 바보는 어찌할 수 없고, 중간에 힘써야 한다. 그런데 '극장 앞 독립군' 광고 아래에서 "대한민국에 친일파가 어디에 있느냐?"는 한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 재미있다. "당신들은 어떻게 애국자가 되었소?"라는 질문을 던져도 시원치 않다. 

 나와 다르면 차별과 공격을 가하는 행위는 倭의 혼을 갖은 제국주의 일본이 100년 전에 한 만행의 방법과 다름이 없다. 광장이 열리고 다양한 의견이 생기는 일은 좋은 일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나와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대책과 방법을 갖고 대한민국이 더 좋은 미래로 갈 수 있는가의 문제다. 대책도 없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상대방을 헐뜯는 행위가 결국 지금의 형세에서는 잠재적 경제 전쟁을 일으키는 자를 돕는 21세기 친일파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일본도 경제가 좋지 않다. 어마어마한 대외적자를 갖고 있다. 정부는 200%가 훨씬 넘는 부채를 통해서 굴러가는 신기한 나라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없지만 파산한 도시들도 있다. 젊은 층의 부족으로 노령인구가 강도높은 근로를 해서라도 움직여야 하는 나라다. 과거 전자제품의 아성을 쌓은 파나소닉도 국제시장에서 과거만 못하고, 화려했던 시절은 뒤로한 소니도 마찬가지다. 먹고살기 힘들면 우경화가 되고, 우경화가 거세지면 전쟁을 하는 것이 인간의 역사다.

 배고파 짜증나면 시비를 거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사람을 물어 뜯으면 금수만도 못한 것이다. 倭가 아니라 우리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한일무역전쟁 #친일파 #토착왜구 #아베규탄집회 #kh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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