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덕 2권을 1/3 정도 읽고 있다. 오늘은 책 읽을 정신과 시간이 없다. 그래도 3월에 3권까지는 읽어 보려는 중인데 출장이 있구나. 에라 모르겠다.
엊저녁에 달봉이 별봉이랑 able to do와 want to do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했다. 별봉이는 그래도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긍정의 마음을 갖고, 별봉이는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현실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살아보며 갖게 된 생각이 있다. 하늘이 준 재능이 있다면, 그것으로 할 수 있는 것을 한다면 행운이다. 하늘이 준 재능이 너덜머리가 나면 돌이킬 수 없는 큰 재앙이다. 이것저것 자신을 알아가며 할 수 있는 것 중에 선택하고, 시간을 흘려보내며 전문성을 쌓고, 그것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 보편적인 관점에서 가장 좋다. 내 경우가 이런 경우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것을 잘하는 행운은 없지만 아쉽지 않다. 그보다 내가 할 수 있고, 잘하게 된 것이 세월이 지나가면 무용지물이 되기도 하니 사람은 언제나 준비하고 내가 잘하는 것에 세상의 변화를 조금씩 담아가는 것이면 충분하다.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하고 싶은 방향으로 간다는 것이 안전한 길이란 생각을 한다. 이런 생각을 하다 오르락내리락 요란한 주식과 환율을 보다 잠이 들었다. 어차피 주식은 조금 흑자 났을 때 다 처리했다.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 미팅을 하러 갔다. 집에서 지하철 두 구간정도라 개천을 따라 바람 쐬며 걸었다. 횡단보도를 바쁘게 걷는 사람들을 보며 '난 천천히 걸어가도 된다네'라는 못된 마음을 품고 거리 구경을 했다. 이렇게 걷다 보니 생각보다 훨씬 빨리 도착했다. 커피가게에 들러 17인치 노트북을 폈다. 조금 더 잘 보이기는 하는데 무겁다. 수주와 출고 처리를 마무리하고 업체 사무실에 도착했더니 멀리서 온 연구소 부소장, 프러덕트 매니저, 한국지사 영업과 기술인력이 다 모여있다. 이렇게 3개국 나라 말이 오가는 미팅이 됐다. 한국어, 영어, 중국어, 다이어그램이 난무하는 미팅 재미있다. 혼자서 이 양반들을 다 대응해야 하니 정신없기도 한데 3시간 정도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한국 지사에서 미팅 있다고 빨리 끝내자고 했는데 정작 멀리서 온 사람들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미팅을 했다. 늦게 끝난 건 내 탓이 아니다.
몇 번을 말해도 안 된다고 한 사항도 검토해 보겠다고 하고, 내가 봐도 무리가 가면 안 해도 되다고 했는데 검토해 보겠다고 한다. 가능성이 높은 싸가지 없는 답을 하는 AI보다 사람과 사람이 하는 미팅이 주는 장점이랄까? CHATGPT에 열광하지만 오용과 악용의 상상을 해보면 꽤 쓸만한 물건인 동시에 위험한 물건의 가능성을 본 것 같다. 미팅 끝나고 부소장과 PM이 좋은 미팅을 했다고 좋아하니 감사할 뿐이다. 내게 그저 시장을 관찰하며 필요한 것들을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었는데. 어제도 미팅 어젠다를 보내고 한국지사도 도움이 될까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관련 자료를 취합해 줬다. 한국지사 입지도 올라가고 이해가 되면 대화가 편해지진다. 그렇게 시스템에 솔루션을 조금씩 담아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상인의 도라고 생각한다. 이익을 좇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도우면 사람은 보답을 한다. 그게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믿음을 갖고 산다. 부작용이라면 가끔 '이런 배은망덕한 것들'이란 생각이 마음속 깊은 심연에 조금 쌓일 때도 있다. 어차피 성인군자는 아니니까 경치 좋은 곳에 가서 버리고 오기도 한다.
연구소장 후배가 매일 나보고 영업이 쓸데없이 많이 안다고 타박을 하는데, 이게 어떤 공부를 해서 그런 것 같지 않다. 하다 보니 부작용 없이 할 만한 일이고, 그 일 속에 내가 하고 싶은 해외영업을 하고, 이걸 좀 더 잘하려다 보니 자꾸 만져보고 사용해 보고, 고객을 관찰하게 된다. 궁금한 점이 있으면 개발자들을 못살게 굴며 지식의 한 조각을 얻고, 책도 찾아보았던 것 같다.
이런 경험이 축적되고 난뒤, 고객들이 더 좋아하던 것을 찾는 일이 마케팅 업무가 되고, 때론 사업기획과 전략이 되기도 했다. 개발을 연구소가 하지만 애플리케이션은 꼭 개발자 의도만으로 시장을 충족하지 않는다. 기획 개념으로 괴발새발 순서도 비슷하게 스케치를 해서 개발자에게 갔었다. 이런 종이를 받으면 꼭 알아볼 수 있게 PPT로 만들어 오라는 사람이면 완전 땡큐다. 대부분 바빠죽겠는데 꺼지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덤으로 여러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서 협상을 하는 것, 사람이 감동받는 것 또는 순식간에 뚜껑을 날리는 방법을 본의 아니게 알게된다.
조금씩 생각을 더해 호기심을 자극하고 그 사람이 해보는 것과 호흡이 맞으면 사건이 발생되는 발화점이다. 불이 붙으면 이것이 사업이 되는지 사업을 운영할 예산확보, 실행이 됐을 때 지속사업이 되는지를 분석한다. 남의 것이나 일이라고 생각하면 오차가 커지고, 내돈이나 내 것이라고 생각하면 엄청 정확해 진다. 사람 다 그렇다. 자연스럽게 재무적인 사고를 더하게 된다. 어려운 것 같지만 사실 예측은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른다. 그러나 합리적인 분석으로 확률이 올라갈 선택을 하는 것일 뿐이다. 문제는 '합리적'이라고 말하고 나 혼자만의 딴 나라 생각인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지의 차이다. 확인해 보면 안다. 스스로가 얼마나 딴나라 사람인지. 내가 잔소리를 듣지만 자주 이것저것 엉뚱한 것을 물어보는 이유다. 합리적이란 말이 절대적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 매일 변하니까.
미팅한 PM이 내가 뭐 하는 사람인가 궁금한가 보다. 천상 '잡부'라고나 할까? 한국어로 말했더니 알아듣는 사람만 웃는다. 안 하는 것도 없고, 하는 것도 없고.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나 보다 했더니 현장에 간 팀장이 연락이 왔다. 뭐가 안된다고 두서없이 말이 많다. 세상에 문제가 없던 날은 하루도 없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잘 가다듬어야 한다. '무엇이 문제인가?', 그 무엇을 6하원칙에 맞게 간결하게 정리할 수 있는가? 그래야 어디 도움을 요청하거나 할 것 아닌가? 팀장이 '안 되는데'라고 넋두리를 하면 내 질문은 '뭐가? 주어가 없어? 뭐라는 거야?'라고 물어보니 서로 환장할 노릇이다. 이렇게 다른 둘이 잘 만들어가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고 주변 사람들이 말하곤 한다. 팀장 녀석은 친절하고 나는 까칠하지만 차분하게 파악하는데 집중한다. 서로 정신 사납게 한다고 하지만 둘을 합하면 잘 돌아간다. 사실 팀장 녀석이 바빠죽겠는데 안 알려주고 약만 바짝바짝 올린다고 대개 긴 잔소리를 한다. 억울하게 말이야. 최종적으로는 문제점을 재점검하기로 하고 다음 주에 나보고 같이 가잔다. 헐!!!! 푸헐! 컴공과 나온 놈이 매일 무용지물학과를 나온 나에게 왜 이러는 거야? 옳지 않아 옳지 않아!!
퇴근하는 팀장에게 "그런데 너 언제까지 행님을 막 부려먹으려는 거냐?"라고 물어봤다. 또 흰소리를 주야장천 늘어놓는다. "아니 그러니까 언제 내가 하는 일 다 갖고 갈 거냐고?"라고 따졌더니 배가 고프니까 끊으란다. 나쁜 시키. 얼른 내가 하는 일을 다 알려주고 손꾸락질만 하면 좋겠는데, 그럴 마음이 1도 없고 계속 뭘 시킨다. 하극상이여 하극상. 내일은 또 출장 간다고 통보를 하던데.
집에 돌아왔더니 달봉이가 엄마를 음청 찾아댄다. "야! 너 왜 맨날 내 마누라한테 뭘 자꾸 해달라는 거야? 내 마누라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라고 했더니 씩 웃고 낼름 내 마누라한테 간다. 미국에 간다니까 업체들이 어딜 가냐고 질문도 많고 일도 많이 만든다. 해보자는건가? 친구는 보자고 하고, 독일에 계시던 양반이 갑자기 한국에 온다고 하고 다들 봄바람이 나셨나? 도통 알 수가 없는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막판 내일 방문해달라는 업체까지. 내일 일은 뭐 내일의 내가 어떻게든 하겠지. 책은 오늘 건너뛰고 쉬어야겠다. 오늘 만보 넘게 걷고, 일을 하느라 머리를 너무 쓴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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