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은 한국 주류 역사학계의 권력을 낱낱이 고발한 추적 보고서!
1945년 조선총독부는 해체되었지만,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는 한국 주류 역사학계로 승계되었다. 이후 독립운동가가 친일파의 손에 청산되면서 한국사 원형과 진실은 일제의 지배논리에 맞게 변형되었다. 조선사편수회가 날조하고 왜곡한 역사는 이른바 ‘실증주의’로 치장되었고, 그들이 가장 두려워한 독립운동가의 과학적 역사학은 ‘신념이 앞선 관념론’ ‘국수주의’로 전락했다.
이 책은 조선사편수회가 확립한 식민사관을 지난 100여 년간 모든 것을 동원해 사수해온 주류 역사학계의 ‘정설’을 파헤치고, 그 역사적 뿌리와 맥락, 현실과 구조를 명징하게 드러내 논증하기 위해 쓴 식민사학 추적 보고서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100년 동안 한국사를 지배한 역사 권력의 실체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며, 우리가 지금껏 학습해온 한국사를 다시 새로운 시각으로 냉철하게 바라봐야 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 출판사 서평
식민사관 청산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광복 후 68년을 맞이하는 지금까지 조선사편수회가 창안한 식민사관은 단 한 번도 종합적으로 검토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이는 조선사편수회에서 한국사를 날조한 쓰다 소키치, 이마니시 류 등 일제 사학자들과 이병도가 한국 주류 역사학계를 장악한 결과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출신 학자들이 만든 학문 권력은 동북아역사재단, 국사편찬위원회 등 국민의 혈세를 받는 기관에도 영향을 미쳤고, 일본과 중국의 극우세력에게 유리한 논리를 지속적으로 제공해왔다.
저자는 한국사의 태두인 이병도의 친일 행태를 낱낱이 파헤치고 고발하고 있다. 자신의 권력과 명예를 지키기 위해 우리 역사를 조작한 이병도의 학설은 그의 제자들에게 이어졌으며, 결국 우리 스스로 주체적 관점을 갖고 역사를 바라볼 힘을 빼앗아버렸다. 이러한 식민주의 역사관을 극복하고 새로운 한국사관을 세우기 위해 이 책은 누가, 왜, 어떻게, 언제부터 부조리한 원칙과 풍토를 만들었는지,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지 하나씩 살펴보고 있다. 또한 훼손된 역사를 다시 제자리에 놓아두는 작업 역시 시급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들이 바꾼 우리 역사, 잘못된 고대사 정설
최근 중국 지린(吉林) 성 지안(集安) 시에서 새 고구려비가 발굴되었다. 중국은 “고구려는 동북지방의 소수민족 정권”이었다고 주장한 동북공정 역사학자를 이 비석의 연구에 투입했다고 밝혔다(《한국일보》, 2013년 1월 26자 참조). 이처럼 우리 고대사를 두고 중국은 호시탐탐 자국의 입장에 유리한 증거를 발굴하고 왜곡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정작 우리 역사를 지키고 보존해야 할 동북아역사재단이나 주류 역사학계에서는 터무니없는 중국의 주장에도 그 어떤 조치나 대책을 보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 책에서도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영토 분쟁 중심에 있는 우리 고대사 문제를 가장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병도의 잘못된 역사관을 이어받은 주류 역사학계는 고조선 개국을 단지 신화적 차원에서 단정하고, 건국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또한 “한반도에 한사군이 있었다”는 주장으로 우리 민족의 주체성을 왜곡, 지배당한 역사로 치부한다. 게다가 《삼국사기》초기 기록이나 《삼국유사》에 나온 고조선 신화마저 위작이라고 매도한다.
이처럼 우리 민족의 역사를 축소시키는 데 일조한 이병도의 학설은 어떤 여과 장치 없이 김원룡, 송호정, 노태돈 등의 고대사학자들로 이어질 뿐 아니라, 한국 통사의 대명사인 이기백, 진보주의 학자로 불리는 박노자까지 받아들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우리 역사를 올바르게 이끌어가야 할 주류 역사학자들은 결국 그들의 권력을 내려놓지 못했으며, 역사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한 역사학자들을 강하게 매도하고 비난하기만 할 뿐, 제대로 된 역사 고증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다고 맹렬하게 비판한다.
역사를 역사답게 만드는 힘은 우리에게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오랜 역사를 통해 단군을 건국 시조로 인식해온 우리 민족주의 운동의 전통은 4‧19혁명, 광주 5월 항쟁, 6월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특히 신채호와 김구의 민족주의는 다른 민족을 억압하거나 차별하자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류가 형제처럼 지내며, 타민족과 화합하고 이상적인 국가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한국을 영구 통치해야 했던 일제는 이들의 민족주의를 강하게 부정하고 억압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광복 후 식민사관을 없앨 수 있었던 결정적 기회는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의 발족은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정권의 기반을 친일파에 둔 이상, 민중이 바라는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거꾸로 친일파의 손에 의해 독립운동가들이 청산되고 말았다.
한‧중‧일의 영토 분쟁이나 위안부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채 과제로 남아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새로운 역사관을 찾아나서야 한다. 저자는 역사를 바꾸는 일은 항상 낮은 곳에서 묵묵히 이 땅을 지켜온 민중의 몫이었다고 말하며, 우리가 시도한 발상의 전환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강조한다. 또한 우리의 사고와 의식, 일상을 지배하는 가치를 각자의 영역에서 문제제기하고 새로운 꿈을 찾아 연대의 장으로 나서야 한다고 재촉한다. 저자의 말처럼 “왜곡된 기억을 거부하고 전혀 새로운 상상력을 발동해 민중이 주역이 되는 경이로운 역사”는 결국 우리가 만들어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 본문 중에서
식민사관 논란은 단순히 역사학계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역사관은 그 시대의 세계관을 함축한 것이어서,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젠더‧교육‧법‧예술 등 사회 전 영역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한국사회의 모든 문제가 식민사관에서 비롯되지는 않겠지만, 그로부터 자유로운 것도 없다. 식민사관은 오늘도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사가 죽어야 한국이 산다는 말이 성립하는 것이다. _28쪽, <이병도가 살고 한국사가 죽었다> 중에서
한국 주류 역사학계는 이병도를 필두로 김철준, 김원룡, 한우근, 이기백, 이기동, 노태돈, 송호정 등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제자들로 대를 이으며 역사학계의 권력을 거머쥐고 있다. 대한민국 법조계의 고위직을 서울대학교 법학과 출신이 싹쓸이 한 것과 같다. 서울대학교가 경성제국대학을 이은 관학으로 한국의 대학 가운데 최고 지위에 군림하면서, 한국을 마치 ‘서울대학교 공화국’으로 만들어 온 맥락과 완전히 일치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들의 역사관과 ‘학문 아닌 학문’은 흡사 폭력적인 이데올로기임에도 한국 역사학계를 손에 틀어쥐었다. _62쪽, <이병도가 살고 한국사가 죽었다> 중에서
이마니시 류는 조선사편수회에서 ‘단군조선’을 곰과 호랑이의 허황된 이야기로 왜곡하는 데 앞장섰다. 이병도는 그의 밑에서 책임편찬을 맡았다. 일제 식민사학자들은 단군사화를 기록한 일연의 《삼국유사》가 고려 후기에 저술되었다는 이유로 단군의 역사적 실재를 부정했다. 즉, 이 책은 일연의 창작이라는 주장이었다. (…) 당대에 기록한 1차 사료는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2차 사료도 철저한 사료 검증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추출해야 한다. 그리고 역사의 실재 현장을 재차 확인해야 한다. _92쪽, <고조선 건국을 왜곡하는 역사학계의 정설> 중에서
서기전 1세기경 《사기》나 서기 1세기경 《한서》, 3세기 후반 《삼국지》, 5세기경 고대 남송의 《후한서》를 비롯한 중국 고대 사료들에서 한사군의 위치를 추적해야 한다. 1차 사료를 해석한 2차 사료보다 1차 사료를 우선해야 한다. 이것은 역사학의 기본이다. 중국 고대 사료는 일관되게 한사군 중심지인 낙랑이 요동에 있었다고 기록했다. 고조선과 한나라의 국경인 패수가 지금의 난하라는 사실도 중국 고대 사료에 근거해 어렵지 않게 비정할 수 있다. “패수가 압록강이다, 청천강이다” 하는 고정관념만 버리면 그렇다. _167쪽, <한사군은 한반도에 없었다> 중에서
《삼국사기》는 현전하는 우리나라 최고 사서다. 그런데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 한국 주류 역사학계의 확고부동한 정설이다. 식민사학자들은 《삼국사기》 초기 기록에 대한 어떠한 연구도 없이 일제 식민사학이 만든 부동의 정설에 따라 가짜라고 주장한다. (…) 그렇다면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믿을 수 없다는 강도 같은 주장을 한 사람은 누구일까? 그 창안자는 바로 이병도의 스승 쓰다 소키치다. _220쪽,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둘러싼 논란> 중에서
우리 사회의 많은 분야 중에서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할 것이 역사관이다. 역사관은 한 사람의 종합적인 인식체계이자 한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시도한 발상의 전환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이 순간 영혼의 소리에 집중해보자. 우리의 사고와 의식, 일상을 지배하는 가치를 각자의 장에서 문제제기하고, 새로운 꿈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며 연대의 장으로 나오자. 모두를 위한 역사는 없다. 일제 식민사관에 균열이 생길 때, 우리는 역동적으로 굽이치는 변혁의 물결을 맞을 것이다. _ 347쪽, <잊을 수 없는 진실, 왜곡할 수 없는 역사> 중에서
▶ 지은이소개_이주한
1964년 서울에서 태어나 숭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했다. 단재 신채호 선생 기념사업회 간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이자 역사비평가로 활동 중이다. 그는 역사적 배경과 맥락, 근원을 입체적으로 파헤치는 예리한 역사비평을 추구하며, 사실과 사료비판에 엄밀한 역사, 다양한 시각과 해석이 공존하고 대중이 소외되지 않는 열린 역사를 지향한다. 세계에 유래가 없을 정도로 훼손되고 비틀어진 한국사의 원형을 복원하기 위해 치열하게 연구하고 있으며, 지은 책으로는 《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이 있다.
▶ 주요 목차 소개
저자 서문: 왜 한국사가 죽어야 한국이 사는가
제1부 식민사관의 핵심을 꿰뚫다
이병도가 살고 한국사가 죽었다
한 원로 역사학자의 생생한 증언|잘못된 역사의 정설을 만들다|식민사관을 만든 핵심 인물들|권위적인 스승이 되길 자처하다|왜 그들은 식민사학을 받아들였나
식민사관을 관통하는 프레임
역사를 보는 주체적 관점이 없다|식민사관의 핵심 명제
제2부 그들이 바꾼 우리 역사를 되돌려야 한다
고조선 건국을 왜곡하는 역사학계의 정설
동북아역사재단은 왜 진실을 부정하는가|단군은 고려 후기의 창작물이 아니다
우리 역사에서 사라진 단군조선
고조선이 없으면 한국사도 없다|과거 기록에 남아 있는 고조선|“신화는 역사가 아니다”라는 사고를 버려라|문헌 고증을 외면하는 역사학자들|고조선이 교과서에 오르지 못했던 이유
한사군은 한반도에 없었다
한국사 원형을 가르는 척도, 한사군|우연을 필연으로 만들어버린 조선총독부|우리가 외운 한사군의 위치는 거짓이다|중국의 역사 왜곡에 대한 반증|동북아역사재단이 중국을 지지하는 이유|거짓된 역사, 강요된 식민주의를 버리자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둘러싼 논란
《삼국사기》도 못 믿게 하는 조작꾼|임나일본부설도 이해하지 못하는 학자|1차 사료의 증거마저 부정할 수는 없다|임나일본부설을 존속하기 위한 속임수
제3부 이기백과 박노자의 역사관을 비판한다
한국 통사의 대명사, 이기백의 《한국사 신론》 비판
이상한 신민족주의 사학을 주창하다|세련되고 현란한 표현으로 감춘 진실
식민사학을 유지하려는 꼼수
문제의식의 부재, 박노자의 《거꾸로 보는 고대사》 비판
신채호의 진보적인 시각마저 부정하다|박노자의 글에는 우리 역사가 없다|식민사관을 그대로 답습하다|한국의 주체적 관점과 현실부터 파악하라
제4부 우리는 우리를 기다렸다
한국의 민족주의, 어떻게 볼 것인가
단군이 민족주의의 구심점이 된 이유|가짜 민족주의에 속았다
반민특위 해체가 이병도와 식민사관을 살렸다
친일파 청산을 피하기 위한 계략|이승만이 선택한 최후, 친일파가 되는 것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그들이 만든 ‘범죄의 재구성’
역사의식도, 역사관도 없는 그들의 모순|역사 장악의 행태는 반드시 추적해야 한다
잊을 수 없는 진실, 왜곡할 수 없는 역사
역사 전쟁의 한복판에 한국이 있다|나라를 위한 바른 역사관이 필요하다
저자 후기: 역사를 역사답게 만드는 힘, 민중에게 있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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