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글
http://khori.tistory.com/entry/%EA%B1%B4%EA%B0%95%EA%B2%80%EC%A7%84-%EC%AB%84%EB%A6%AC%EA%B8%B4-%EB%A7%A4%ED%95%9C%EA%B0%80%EC%A7%80
건감 검진하고 일주일이 지났다. 많은 약속들이 분주하게 나를 부르더니 약속이 엉망진창으로 뒤죽박죽이 되어 전부 재조정했다. 보기로 약속하고 얼굴을 보지 못한 녀석을 보러 강남에 다녀왔다. 종종 다니던 포장마차에서 오랜만에 맥주 한 잔을 마셨다. 어차피 내일 검진 결과인데 뭐.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고 아침에 일어나니 병원에... 이런 표현이 적절하지 않지만 "더럽게 가기 싫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곳이 대개 깨끗한데 저런 미사여구가 붙어야 감정 표현이 착착 붙는 심사가 든다. 아직도 삐뚫어 지거나 쫄리거나 그런거다. 경각심이란 알람이 작동하는지 모르겠다. 2층에 갔더니, '소화기 내과는 일층으로 가세요' 해서 다시 내려왔다. 접수를 하려고 이름을 이야기 했다.
간호사 처자 선생 : 000 담당의사 선생님 오늘 안나오셨는데요?
나 : 그럼 연락을 주셨어야죠 (뭬야!!)
간호사 처자 선생 : (모르겠고, 나는 나의 일을 이란 단호한 표정으로) 2#$@% !@#43..!!!!..$%& ^%.... 앉아 계세요 (이 표현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간호사 처자 선생 : 2번 방으로 가세요
아하..지난주 끊임없이 물어보는 할아버지의 자세와 대응 자세가 이런 것이랑 비슷하겠구나. '사람만큼 손이 많이 가고 피곤한 것도 없고 또 감사한 존재도 없긴 하지' 라는 생각을 다시 했다. 단지 나한테 기분 좋지 않은 시그널이 올 때 불편한거다.
건조한 표정과 주말 근무의 피로로 얼굴이 전부 다크한 젊은 의사 선생이 처량해 보인다. 보람있고 대우 받는 고퀄의 3D 업종이란 확신을 다시 한다. 어째던 나보다 불쌍해 보였다.
젊은 의사 선생 : 암은 없구요
나 : (대단히 건조한 말투에, 기분이 대단히 건조해짐 ㅡㅡ;; 안도의 한숨 이런거 안나옴)
젊은 의사 선생 : 위궤양이 있고, 조금 헐었고, 헬리코박터균이 있네요. 헬리코박터 약은 2주 처방을 할테니 까먹지 말고 드셔야 되요. 열에 일곱은 잘 치료되요. (나이 좀 된 약사 아줌마도 그랬다. 정주행 안하고 중간에 끊기면 치료율이 절반이하로 떨어지고, 입이 엄청 쓰다고 해본것 처럼 말했다 의사 선생이 가장 중요한 "입이 쓰다"는 사실을 안 알려줬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나 : (열에 일곱에도 못들면 바보라는 소리지..그런거야??)
젊은 의사 선생 : 2주 약 드시고, 그리고 4주가 더 지나면 내시경 한번 더 합시다. 예약해 드릴께요.
나 : 출장가요~~
젊은 의사 선생 : 그냥 밥 굶고 오셔도 되요. 4주후에요!
나 : (헐... 왜 눈깔에 힘을 주고 그래..ㅡㅡ;;;) 그런데 우리 엄니가 한약을 해줘서 그거 먹을 때 같이 먹어도 되요?
젊은 의사 선생 : 제가 한약은 모릅니다......................
나 : (어째 말투는 신가다인데 태도는 구가다냐....진실을 이야기하는 태도는 맞는데!!)
병원을 나오는데 어제 출장 다녀온 직원들이 재잘재잘 떠든다. 카톡에 몇 자를 적었다.
나 : 구가다가 되가는 중 ㅋㅋ
모 직원 : 구가다죠.
모 직원 : 저도 치과에요
나 : 구가다 마지막 코스를 선행해서 떼는구나. 술금판정, 4주후 재검
모직원 : 이 참에 끊으시죠
나 : 헐 나쁜놈
모직원 : 출장금지 LOL
마나님 카톡이 온다
마나님 : 검사결과?
나 : 약을 다발로 받음. 헬리코박터
마나님 : 검사하면 그거 거의 다 나옴.(위로인가 잠시 생각해 봄) 검사결과는??
나 : 아직 안나옴
집에 터덜터덜 걸어오는 길에 갑자기 구가다라는 말을 생각해 봤다. 구닥다리와 같은 의미인데, 지인이 가끔 사용한다. 어려서는 할머니, 고모, 부모님들이 사용하던 일본식 표현이다. 찾아보니 구형이라는 의미다. 나도 이젠 구가다다. 그렇다고 슬프거나 노여워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거워 춤이라도 추고 싶은 기분이 드는 것은 절대 아니다.
사람들은 신제품을 좋아한다. 제품만 그런 것이 아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남편들의 서열은 자연스럽게 하락한다. 그 때부터 구가다의 삶이 주변에 물샐틈 없이 빈틈없이 다가오는 거다. 구가다는 어째든 손이 많이 가니 말이다. 그런데 잘 익숙해 지지 않는 것이 문제다. 바라보기만 했지, 그것이 나의 삶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구다가라고도 하면 예쁘게 포장된 빈티지, 험하게 표현된 구닥다리나 꼰대, 고급지게 표현 된 명작 이런 단어가 함께 생각난다. 빈티지는 추억을 더듬는 매개체와 같은 느낌을 갖는다. 정체성이 없거나 혼이 없는 메마른 느낌이 든다. 구닥다리는 철지나, 쓸모 없음의 감이 온다. 꼰대는 시대의 변화와 상관없이 과거의 사유체계를 정신 승리법으로 지금 구현하는 후덜덜한 사람이다. 귀가 막혀있거나, 듣는 기능이 동작하지 않는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 명작이나 명품은 뭘까? 물건으로보면 세월이 지나도 형태를 잘 유지하고, 시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고급진 자태를 유지하는 것 또는 시대가 지나도 창피하지 않는 느낌을 오래 유지하는 것이다. 그게 얼마나 가능할까? 생각해 보면 명품이란 이름으로 계속 새로운 제품이 나온다. 명작이 그림이면 사람들에게 원본의 형태로 다시 보여지며 감동을 주고, 음악이라면 다시 해석되어 연주된다. 사람은 글쎄...
나는 흰머리가 거의 없다. 나는 가끔 은발처럼 흰머리가 내 생김새와의 조화와는 상관없이 괜찮아 보일때가 있다. 가죽에 주름이 가는 것은 사용에 비례하니 당연하다. 머리가 벗겨지지는 않았으나, 까지면 한올한올에 연연하느니 못해본 skin-head를 하는것이 속 시원할꺼라는 생각을 한다. 겨울에 추우면 털모자를 하나쓰면 된다. 이말인 즉, 사람은 형상을 유지하기 힘들다. 명품은 브랜드라는 이름으로 기억되고, 명작은 감동으로 기억된다. 사람은 무엇으로로 기억되어야 하는가? 어차피 구가다의 삶에서 자유롭지 않은데 무엇이 좋을까? 물건인 경우 구가다의 재발견은 드물다. 사람은 구가다가 되어가고 무엇으로 재활이 가능할까?
한 가지는 고결한 인품(이런 표현이 문맥상 거시기하지만)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삐뚫어진 인품이라도 잘 두들기면 펴지는 것이다. 그 인품은 결국 하나의 브랜드가 되고, 그 사람만이 고유하게 갖고 있는 철학, 생각이 된다. 그 정신이 깃든 결과물이 분야, 취미, 삶으로써 세상에 조금씩 씌여진다.
내가 어떻게 여기에 와있고, 어디로 갈 것이고, 무엇을 할 것인지에 따라서 구가다의 길도 변화한다. 갑자기 써 놓고 보니 술먹고 깨어'나는 누군가, 여긴 어딘가?'와 같은 느낌처럼 보인다. 그 목표, 선택, 실행에 따라서 구가다의 수준이 결정될 것이다. 그냥 구다가, 구닥다리, 꼰대, 빈티지, 존경받는 사람, 성인군자와 같은 길이 결정되겠지. 높은 길은 힘들겠지만 그냥 구닥다리와 꼰대는 달성하기 쉬운 목표다. 그래서 꿈이라고 표현하기 위해서는 조금 어려운 수준을 도전해 보기로 하자. 분수것 하는거에요~~ 언감생신버전 아니구요...그래서 거울한번 봐야해요.
'잘살아보세 (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무말 대잔치 (2) | 2018.07.30 |
---|---|
일을 너무 저질렀어 (0) | 2018.06.30 |
건강검진 - 쫄리긴 매한가지 (0) | 2018.03.02 |
황금개해 D-2 (0) | 2018.02.13 |
2017.12 티스토리 초대장 (34) | 2017.1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