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교수의 책은 집에 들여두면, 시간을 흘러보내야 읽게 된다. 처음처럼이란 책을 제외하고는 모두 그렇다. "강의"란 책은 무려 1년이 넘게 걸린 듯 하다. "나무야나무야"도 최소한 몇 달을 흘러보낸뒤에 듣게 된다.
이번에 읽게 된 "담론"도 일년이 넘었다. 가방에 넣어 다닌지 오래되다보니 책표지가 닳았다. 누가보면 열독을 한지 오해를 하게 생겼다. 팟캐스트로 진행하는 강의, 북콘서트 몇 자락 듣고 나서도 책을 잡지 못했다. 그 사이에 일면식이 없지만, 저자와의 이별을 했다. 책을 읽는 중간에 다시 팟캐스트를 다운로드해서 들어보게 된다.
마지막 강의라고 말하고 마지막 강의가 되어버린 사실이 충분하지 않다. 담론이란 책 속에 신영복이 그려온 사람의 무늬와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 진실될 이야기를 적층해서 한 권의 책속에 그가 하고자 하는 생각, 그 생각을 실천한 발걸음이 있다고 믿는다. 책의 띠지에 드러난 그의 얼굴을 통해서 나는 또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돌아보게 된다.
책은 크게 두가지 이야기로 나뉘어 있다. 시경, 논어, 노자, 장자, 묵자, 법가등 춘추전국시대의 동양고전을 물흐르듯 펼쳐나간다. 큰 얼게는 "강의"란 책과 같다고 생각한다. 매번 그가 설명하는 구절을 볼 때마다 고전을 접하는 맛이 다르다. 대부분의 책들이 글자의 해석과 의미를 가르친다는 압박의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그의 글은 누구를 자르치는 주종의 관계가 아니라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설명하듯 따뜻하다. 이 또한 책을 대하는 나의 마음자세에 따른 것이리라. (http://blog.yes24.com/khori/8026664)
나에게 다가온 장은 "사실과 진실"이다. Fact와 Truth의 차이는 같은 듯 다르다. 진실은 보다 다차원적인 사실을 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한 장의 사진과 한 편의 영화만큼 차이가 있다. 그 차이만큼 진실에 다가가는 이야기는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이 인간이 그려내는 무늬이고 바로 인간문명의 한 조각이자 씨앗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중간중간 이런 좋은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동시에 대체 내가 뭘 제대로 알기나 하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것이냐?라는 자문 자답을 한다. 스스로 공부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설명해보고 다른 이야기도 듣고, 반응이 좋으면 잘 활용해 보기도 하는 교감과 공감을 한다. 회사생활을 하며 좋은 선생님을 찾아다니는 것은 어렵다. 삶의 선행자를 책으로나마 만나야 하는 이유이고 즐거움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하나의 관계도 그렇게 쌓여갈 것이라 생각한다.
세상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것처럼 이상적이거나 단순하지 않다. 사회라는 곳에 발을 내딛은 시간이 그리 적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멋진 가면을 쓰고 품격과 예절바른 행동속에서, 정글과 같은 행동양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춘추전국시대의 인간 군상은 수 천년전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현재에 존재하는 인간의 다양한 양식이기도 하다. 그 속에서 상처도 받고, 고난을 겪으며 희망과 행복을 꿈구며 살아가는 것이 삶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슬프지만 또 다르게 보면 숙명이다.
"비극에 공감하는 것은 그것을 통하여 인간을, 세상을 깨닫기 때문입니다"라는 구절이 있다. 사람이 가장 정확하게 배우는 것은 실패를 통해서다. 태어나면 백지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것도 인간에게 주어진 굴레다. 시지프스의 신화가 바위를 갖고 표현했다면, 신영복 교수는 인간의 굴레를 이렇게 쉽고 품격있게 표현한 것이란 생각을 한다.
후반부는 많은 부분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사실 이책도 산지가 오래되었는데..), "나무야나무야"의 구절을 많이 인용하고 있다. 그 중에서 "관계와 인식", "상품과 자본"이란 부분입니다. 그 중간중간 신영복이란 사람이 체험하고 고뇌하고 성찰하던 세상의 이야기있습니다. 인간의 원초적 감성을 솔직하게 들어냅니다. 그래서 더 따뜻한 마음과 공감, 입장의 동일함을 느낄 수 있어 참 좋습니다.
상품과 자본이란 장을 통해서 우리 배워온 경제학(생존학)이 세상에서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대학을 나와서 전공에서 배운 것이 사회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움직이는지를 이해하는데 많은 시간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일부는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배웠는데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니 가르쳐줬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내가 갖고 있는 관계와 인식이 교과서를 답으로 여기고 외우고 쓰는데에 여념이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자본주의의 부흥과 그 폐단의 횡포속에서 살고 있는 지금 어떻게 대책을 세우고 살아갈 것인가를 돌아보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경제가 살아가는데 중요한 분야이지만 이도 삶의 입장에서는 비중이 높을 뿐 전부는 아니니까요.
책의 끝자락에 이야기하는 노교수의 당부는 그래서 참 고맙다는 생각을 합니다. "살아가는 이유와 먼 길을 떠나는 사람에게 드리는 길채비"가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깨닫는 삶이란 이유는 진부하다는 생각도 하게 합니다. 똑같은 하루가 없는 변화하는 나날을 살아가는 우리는 매일 새로운 정보와 관계를 만들어 갑니다. 매일 공부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자각하고 깨달아야 한다는 것을 한참의 시간을 들여서 알아갈 뿐입니다.
다른 하나의 이유는 "자기의 이유"입니다. 저는 정체성이란 말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마다 결이 다르고, 격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격을 다듬어 가며 자신만의 무늬를 채워 세상과 조화를 이루는 일이 정체성이란 말로 쉽게 교체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사실과 진실사이의 이야기를 채우고, 나와 관계하는 대상을 통해서 나의 존재를 다시 인식합니다. 이를 통해서 존해하는 것만으로도 이유는 충분하게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할 수 있다면, 더 나은 무늬, 관계, 조화를 만들어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삶이란 시간에서 자유로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일 부터는 다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 논어를 읽어볼 요량이었는데 담론을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이 많이 차분해 집니다. 얼마나 잘 다르릴지는 또 저에게 달린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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