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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살아보세 (書)

또 하나의 외침 - 소비자로써 삼성

by Khori(高麗) 2014.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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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서울신문>


이 기사를 보면서 재벌보다 강한게 학연이고 대학이라는 생각과 불쌍한 학생들만 또 죽어나겠다는 생각이다. 몇일전 학교에서 성적표를 뗄일이 생겨, 정말 오랜만에 학교안을 걸어볼 일이 생겼다. 다 사라져버린 학교안 공간들이 빼곡한 건물들로 가득차 있다. 벤처회사들 군락처럼 들어선 현대신 건물만큼 학교의 구성원들 마음의 공간이 줄어들었을것 같은 생각과 그 현대식 건물만큼 지식과 지혜가 고도화되었는지 생각해 보게된다.


지금도 한 10여년은 된것 같다. 연세대 송자 총장이 토론에 나와서, 기업에게 받는 불평이 인사하라는 재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이 엄청나다는 비판이었다고 한다. 그러시면서 대학이 불량품을 양산한다고 자책하시던 말씀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내가 회사에서 신입사원들 면접을 보거나, 뽑거나 하면서 이말이 10년지 지나서도 생각나는 것은 왜 일까?


신체적 조건도 좋아지고, 영어도 잘하고, 자격증도 많고, 학점도 훨씬 좋아졌다. 신체적 조건이 좋아진 만큼 정신적 성숙도 좋아졌는가라고 생각하면 꼭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회사란 조직, 팀의 구성원으로보면 봉사활동을 해봤는지 모르겠지만, 남을 위한 공헌과 기여의 마음자세는 보기 힘들다. 다만 내것이라는 집착만 강하다. 게다가 시키는 것 외에는 자발적으로 하는 것들이 적어보인다. 이런 말은 부려먹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10년뒤 과장, 차장과 같은 중간관리자로 성장하기 위한 리더쉽이기 때문이다.


영어 연수 안갔다가 온 사람들이 드물다. 하지만 말하기 읽기, 쓰기를 보면 참 재미있다. 누가 그런 쓸데없는 것을 물어보냐고 했더니, 고객에게 useless라는 단어를 쓰는 영어전공자를 보면 기가막히기도 한다. 사람의 관계나 맥락이 보이지 않는 좁은 시야, 수동적인 자세때문일것이다. 그리고 돌아서서 후회하기도 한다. 한가지 단면이겠지만 공부할때 하고 좀더 다양한 사회속의 단면을 겪어본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차이이기도 하다. 대학때 어떤 필요것을 사보고 경험해 보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도 해보기도 했다. 일부 등록금을 벌기 위해서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이라고 보긴 어렵다. 그리고 나는 그것은 노동이지 아르바이트라고 판단하기 어렵다. 몇일전 텔레비젼에 나온 학생들 취재를 보면서 더 그런 생각을 한다. 그런데 그들은 직업란에 학생이라고 써야하는 현실이 더 마음아프다.


취업경쟁시대에 학점 인플레이션이란 말이 생겨났다. 나도 IMF때 취업을 했기 때문에 지금과 비슷하다. 많은 자리가 나오지 않는 경제상황도 힘들다. 하지만 취업하고 놀다가 없어진 회사로 갈데가 없어진 사람들은 더 충격적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실력이 필요하다. 대학은 공부하는 곳인지 취업준비학교인지 구분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자신의 전공분야에 대한 일정 수준의 지적충실도는 필요하다. 관련분야로 갈 상황이 많기도 하고, 자신이 추구하는 분야의 지식을 높이 쌓아야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면접때 교과서나오는 이야기를 물어봐도 버벅거리는 사람들이 많다. 산학연계를 할때 많은 교수님들이 회사에서 버벅거리는 것에 비하면 애교정도지만 말이다.


이런 부정적인 단면을 짚어보는 것은 대학이 정말 큰대, 배울학을 조금이라도 잘 실현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학교건물만큼 부동산투자는 잘 하는지 모르겠지만 본업을 잘 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예전 90년대초만 해도 학교내 건물등은 지적도에 안나오는 건물이 만을만큼 불법건물도 많다. 학교라는 혜택이 존재하는 것이고, 면세(부과세면제)라는 혜택만 따먹고 본업을 하지 않는 곳인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학생인원들이 90년대까지는 유지되고, 전부다 대학을 가지는 않았기에 엄청나게 학교가 늘어났다. 운동장도 없는 대학을 보면서 당시 나는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흙을 파먹고 사는 사람이 땅한자락 밟을 곳도 없는 학교...직장인을 위한 학교가 아니라 전업이 공부인 학생들을 위한 그런 학교를 왜 만드나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두메산골에 있는 대학도 그렇다. 합숙소도 아니고 학생들이 편하게 접근할 곳에 있어야하지 않은가? 


그렇게 세월이 흘러 다 고학력자 시대가 되었는데 더 웃긴 상황이 되버렸다. 쓸모없는 학교는 통폐합을 하고 없애야한다. 대학들이 재단납입금은 불성실하게 해도, 재단적립금은 충실히 한다. 그렇다면 이익을 위한 기업의 내부유보와 동일한데 수익창출의 과정을 본다면 당연하게 강력하고 정기적인 세무조사도 필요하다. 그로 인한 과징금등은 당연히 대학발전을 위해서 써야한다고 생각한다. 공부 안하는 대학교수들은 자리를 빼야한다. 어떻게 평가하냐고? 일정나이까지는 학기에 한번 자신의 생각과 다르거나 반대되는 이론의 교수와 학부생을 위한 공개 토론수업 한 번이면 족하다고 생각한다. 토론은 none-zero sum이다. 자세도 되어야하고, 성품도 되어야하고, 묻어야 할 것을 묻지 못하는 부분도 타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건 10년된 노트외워서 해야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샌들의 강의를 볼때 교수는 끊임없이 학생들에게 질문한다. 그와다른 세대 사람들이 수업을 듣는 동시에 그는 젊은 후세를 이해한다는 생각이다. 


학생들 본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들의 등골을 빼서 쌈지돈을 빼왔다면 대학은 당연히 그들에게 더 합리적인 서비스를 해야한다. 지금은 대학의 내부고객인 학생들을 잘 인도한다고 보기도 힘들고, 외부고객인 기업들의 요구도 맞추지 못하는 문제아가 되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시대에 뒤 떨어졌기 때문이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노여워하고 괴로워할 것이 아니라, 내가 왜 남들에게 인정받지 못할 수준인가를 걱정해야한다. 그럼에도 교묘히 냉정한 현실을 도피하는 듯한 기사를 통해서 사회의 복잡한 연계와 안일함을 함께 본다. 삼성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제품도 사지 않는 안티에 가깝다. 그럼에도 그들이 이런 권리행사는 무언의 충고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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