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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공연 (劇)

모든 것을 뛰어넘는 생존의 시간 - 모가디슈(★★★★+1/2)

by Khori(高麗) 2021.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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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서 근대라고 부르는 시간부터 한반도의 역사는 아주 복잡하게 이어지고 있다. 가장 먼저 생각해야  것은 한반도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단결하고 힘을 모으지 못해 갈라지고, 약해진 주체는 외세의 굴욕을 견뎌야 했다. 굴욕을 넘으며 생존을 지켰지만, 다시 갈라져  다른 복잡한 이념과 정치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시대의 끝자락을 그리고 있다. 80년 후반부터 90년까지 라면 아직도  땅은 경제의 도약과 달리 정치적 통지는 빨갱이와 빨갱이가 아닌 사람으로 너무 쉽게 구분되던 시대다. 불과 80년 초반에만 가더라도 대한항공 폭파사건, 아웅산 테러, 간첩사건 등 냉전의 시대에서 자유롭지도 않았다.  시대도 벌써  세대인 30년이 흐른 시점이다.

 

 현재의 소말리아는 해적으로 유명하고, 우리에게도 아덴만의 기억이 있다. 어쩌면  영화 속에서 현재의 소말리아의 원인을 보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든다. 대한민국과 북한은 냉전의 시대에 가장 첨예한 첨병의 역할을 했을지 모른다. UN의 승인 국가도 아니었다. 지금 보면 UN의 역할은 글쎄? 차라리 G7, G20이  중요하다. 시대를 움직이는 국제조직에서 인정받는 것이 적대적 입장에서는 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생각은 쉽게 이해된다. 그러나 내정하게 생각하면 무엇이 국가의 이익인가라고 생각하면 협소한 생각이란 생각이 든다. 물론 지금의 관점이기 때문에 이런 말을   있다는 점이 그때도 유효하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소말리아에 80년대에 대사관이 있었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올림픽과 아시안 게임 때에도 참가국을 늘리기 위한 노력이 엄청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계열이 제3 세계에 많은 노력을  것은 사실이다. 지금도 중국이 엄청나게 아프리카에 투자하는 것도 UN에서  표를 얻는 중장기적 선거운동과 다름없다. 이와 동일한 선거운동을 대사관을 통한 외교활동을 통해 진행되는 장면이 묘사된다.

 

 내가 알기로 대사관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상무관들은 어떤 면에서 산업 스파이라고 해도 무방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아프리카 지역 대사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대사인지 장사꾼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소말리아와 같은 나라에 간다면 기초 훈련과 사격 훈련도 받을 수 있다. 극 중에 그려지는 참사관은 한국은 안기부 소속이고, 북한의 참사관도 보위부라고 하니 별반 차이가 없다. 공항을 면책특권에 따라 가볍게 통과하고, 검사도 하지 않는 외교 행랑에 들어간 기념주화, 올림픽 개막식 비디오테이프, 술을 보면 웃음이 나지만 현실적이다. 지위가 있다고 개인적인 취향까지 품격 넘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본능에서 자유로운 인간은 없기 때문이다. 

 

 외교전이라는 것이 서희가 역사적 지식과 논리로 강동 6주를 얻는 것과는 차이가 없다. 정보를 흘려 반군에게 북한이 무기를 판다는 뉴스를 만든다. 요즘 신문기사가 사실인지, 사실에 MSG를 잔뜩 버무린 이야기인지 알쏭달쏭할 때가 있다. 정략적 목적은 외교전과 요즘 기사나 차이가 있는가? 그런가 하면 적국의 외교관이 정상을 만나는 정보를 파악하고, 정보를 이용해서 테러를 가하는 모습이 우리가 상상하는 외교전인가? 사실 적대국과 경쟁하며 예의염치를 다 차리는 것은 옛날 송나라 군주가 예의 차리가 목숨 잃고 전쟁에 패한 것과 다름없는 바보짓이다. 

 

 UN에서  표를 얻기 위해 장관에게 로비를 하는데 장관의 말이 아주 인상적이다. 대통령이 발표를 하고, 회의에 참석하지만 실질적으로 발표문을 작성하고, 회의 일정을 잡는 것은 본인이라고 말하며 5만 달러의 뇌물이 아닌 형식의 뇌물을 요구한다.  명은 자신의 직분을 수행하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하는 공무원이고, 다른 한쪽은 공무원의 자리를 차지하며 숟가락을 얹어 자신의 이익을 챙긴다. 내가 종종 정치가 바뀌려면 정치인도 변화해야 하지만, 국가라는 행정기구를 운영하며 늘공이라 불리는 공무원의 변화만큼 변화의 폭이 제한된다고 생각한다. 

 

 불안한 정세를 따라 반란이 생긴다. 춘추전국시대뿐만 아니라 왕조가 망하는 것은 반군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인간의 역사에 끊임없이 생긴다. 영화를 보면 소말리아 반군의 명분은 나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선전, 선동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그들의 실행이 올바른 방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혼돈의 시간을 던졌기 때문이다. 정부는 혼돈의 시간을 막지 못한 무능력을 보여줬을 뿐이지만, 그래도 하나로 일어선 체제는 견고하다.

 

 그 혼란 속에 적성국가, 주적이라고 표현할  있는 대한민국과 조선 인민 민주주의 공화국이 타국에서 내동댕이쳐진다. 통제할  없는 군중은 무섭다.  군중에 청소년들이 포함되면  강력하다. 419가 그랬다. 세월호의 잔상도 있지만 박근혜 탄핵집회 때 여중생들을 거리에서 보면서 이 정권은 망했다고 생각했다. 우리나의 해방은 도둑처럼 왔지만, 혼돈은 느닷없이 생긴다. 그렇게 오랜 기간 외교관계를 수립했음에도 북한 대사관은 반란군인지 시위대들에게 유린당한다. 생존을 위해서 길을 나서지만 갈 곳이 마땅하지 않다. 그렇게 찾은 곳이 같은 민족이라는 끈이 있는 대한민국 대사관이다. 사실 말만 서로  통한다는 것 외에 정치, 이념, 냉전시대의 환경에서 절대적으로 최악의 상황을 서로 맞이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한국 대사관을 지키던 경비병력도 도망가고, 이젠 정말 한반도에 사는 조선사람인지 한국사람인지 이것을 남한 사람, 북한 사람이라고 해야 할지 하여튼 서로 한글을 쓰는 사람들만 남았다. 북한의 대사가 '이제부터 제1의 과업은 생존이다'라는 말은 아주 시의적절하다. 그럼에도 공무원들은  자신의 일에 부지런하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참사관은 '전향서'를 만들고, 북한 대사관 사람들은 음식 앞에서 먹지를 못한다. 신뢰가 없다는 것은 무엇을 함께 도모하기 힘들다. 믿었던 신뢰가 무너지면 이것은   분노, 배신감, 적대적 행동을 보여주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나 그들에겐 역시나 하나뿐인 목숨을 남겨, 고국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공동의 희망이 있다.

 

 그 생존이란 희망 앞에 서로의 뜻을 같이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함께 넘어야 하는 시간을 생사고락을 같이 한다고 하면 맞을까? 한국전쟁 때 팽덕화를 위시해서 많은 중공군이 참전한 것은 정치적인 목적과 이유도 있지만 모택동과 만리장정을 함께  수많은 조선인 동포들 때문이란 말이 있다. 생사고락을 같이 하면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많은 우여곡절을 넘어 이태리 대사관으로, 다시 공항으로 다시 케냐로 움직인다.

 

 그러나 그들 모두 나라의 녹을 먹는 사람들이다. 공항에 도착해서 그들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그들과  다른다. 서로 생사고락을 같이하고, 공동의 생존과 희망을 품는 시간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된 내용, 준수해야  법과 제도에 따라서 행동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그들의 임무에 충실하다는 것을 비판할  없다. 그런 현실이 인간적이 느끼는 감사, 안도, 신뢰, 공감을 뛰어넘은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행동과 태도를 보면 많은 생각을 갖게 된다. 이런 일은 우리가 일상에서 살아가는 것에도 느낄  있는 일이다.

 

 뭔가  기대를 하지 않고 개봉 영화를 봤다. 차분하게 무더위를 잊고 러닝타임을 즐길  있는 영화다. 류승완 감독의 '다찌마와 리'를 오래전 인상 깊게  적이 있다. '베를린'의 마지막 갈대밭 장면도 아주 인상적이었다. 3-4년에  번씩 한반도의 역사적 배경을 토대로 만드는 영화를 보며 이런 느낌을 계속 갖게 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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