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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_예술 (冊)

문화, 체제의 부당성에 대한 100년의 통찰

by Khori(高麗) 2019.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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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의 딥러닝은 인간의 학습 모델을 보방한다. 경험을 반복해서 쌓으면 지식과 노하우를 축적한다. 그 결과물이 효과적이라면 실력이 된다. 딥러닝은 그 본질을 파악하고 접근하는 인간의 접근법과 동일하다. 그런데 세상은 현상에 치중한다. 기계도 공부하면 사람은 더 열심히 공부해야할 뿐이다.

 

 소설 책을 읽고 왠 쓸데없는 소리인가? 이 책은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 그리고 현재 경험한 한 여성이 겪고 있는 다양한 환경과 반복적 경험을 통해서 사람들이 깨닫기를 바라고 있다. 

 

 페미니즘에 관심이 없다. 남성학도 관심이 없다. 인간에 관하여 관심은 많다. 인간학이란 범주 아래에 남자와 여자가 있다. 물리적 차이와 차이로 발생되는 어쩔 수 없는 사항은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이기에 평등한 권리,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 차이를 너무 극명하게 분류하면 남자는 여자일 수 없고, 여자는 남자일 수 없음으로 차별하는 근거가 된다. 타인을 위해 존중해야하는 것을 듣고, 정리하는 것이 먼저다. 그렇게 베풀어 받는 일이 남녀간의 다양한 이슈, 사회속이 다양한 이슈를 슬기롭게 풀어가는 방식이다.

 

 102살의 베르트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이 문제는 앞으로도 영원할 것이다. 하지만 같은 방식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방향으로 문명은 발전하고 있다. 여성의 권리는 더디게 보장된 측면이 제도적으로 존재한다. 이런 핸디캡에 대한 100년간의 과격한 투쟁을 이 소설에서 그려낸다. 그것도 아주 재미있게 경청하는 구조다. 작가가 남자라는 사실이 재미있지만 아이러니한 포인트다.

 

 전쟁은 대부분 숫컷들의 물리적 충돌이다. 아이나 큰 어른이나 숫컷들은 공통점이 있다. 그 과정에서 베르트가 겪은 문제와 과거 왜놈들과 그들의 성노예를 강압받은 사실을 통해 숫컷들이 갖고 있는 특징과 문제점을 잘 알 수 있다. 원치않는 물리적 피해를 전쟁의 과정에서 강요받는다. 한국전쟁도 유사한 사실이 있지만 그 자료를 볼 수가 없다. 왜 숨겼을까? 그런 다양한 사실속에서 그런 일이 옳지 못하다는 것은 논할 여지가 없다. 그런데 베르트는 그런 독일군 어린 숫컷을 떼려잡아 묻는다. 이 소설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있는 부분이다. 처음엔 전쟁이란 관점에서 읽다보니 책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쉽게 이해하게 된다. 전쟁 후 숫컷들이 여성에게 강요하는 역할, 원초적인 성적 억압에 맞서는 베르트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리고 베르트는 연속적인 성공과 7번의 삽질신공을 보여준다. 

 

 그 이야기를 콜롬보라고 불리며 불안한 세 번째 결혼생활을 하는 수사반장에게 이야기 한다. 범죄의 부인이 아니라 다양한 제도, 문화, 환경속에서 살아가는 어려움에 대한 그녀의 판단이다. 특히 그녀가 진정으로 사랑한 루터가 안게된 숫컷의 테러를 보면 정말 수컷들은 크나 작으나 문제거리다. 물론 여자들이 만들어 내는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 책은 그런 다양한 이야기를 1세기를 살아낸 여자를 통해서 제기하고 있다. 베르트가 다시 범죄자들을 응원하는 과정은 그녀가 바라는 세상의 모습, 작은 소망을 담고 있다. 과거와 현실을 넘나드는 구조가 지루하지 않게 잘 구성되어 있다.

 

 책을 읽으며 여성이 남성보다 우성이라는 나의 관점이 더 강화됐다. 그런점에서 제도와 문화가 그렇게 발달된 이유가 어떤 이유일까? 우성에 대한 균형을 시도하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상상을 해봤다. 이런 상상을 비겁한 변명이라고 비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상상도 못하냐고 남녀평등하게 쌍욕을 날리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몸을 쓰고 사는 것보다 머리쓰고 사는 것이 더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남성은 힘쓰는 일에 최적화된 존재고, 여성은 머리쓰는 일에 최적화된 존재인가? 문명이 발달할수록 물리적인 동작 중심의 문화에서 머리를 쓰고 기계를 쓰는 환경으로 바뀐다. 요즘 시대를 보면 이렇게 보일 때도 있지만 세상에는 두 가지 일이 균형을 이루어야 돌아간다. 남녀의 문제도 그렇다. 

 

 남성으로 상징되는 루거총과 22구경 장총에 제거되는 덜떨어진 숫컷을 보면 한심하기 그지없다. 작게 이기고 크게 지는 일이 반복된다. 수컷이 남자라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인간은 기원전에도 현재에도 크게 변화한 것이 없다. 문제의 형태만 다를 뿐.. 그래서 베르트가 담담하게 이야기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insight를 귀기울이지 않는다면 언제 수컷 몸뚱아리에 구멍이 날지 알 수가 없다..그렇고 말고  최근의 딥러닝은 인간의 학습 모델을 모방한다. 경험을 반복해서 쌓으면 지식과 노하우를 축적한다. 그 결과물이 효과적이라면 실력이 된다. 딥러닝은 그 본질을 파악하고 접근하는 인간의 접근법과 동일하다. 그런데 세상은 현상에 치중한다. 기계도 공부하면 사람은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할 뿐이다.

 

 소설책을 읽고 왠 쓸데없는 소리인가? 이 책은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 그리고 현재 경험한 한 여성이 겪고 있는 다양한 환경과 반복적 경험을 통해서 사람들이 깨닫기를 바라고 있다. 

 

 페미니즘에 관심이 없다. 남성학도 관심이 없다. 인간에 관하여 관심은 많다. 인간학이란 범주 아래에 남자와 여자가 있다. 물리적 차이와 차이로 발생되는 어쩔 수 없는 사항은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이기에 평등한 권리,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 차이를 너무 극명하게 분류하면 남자는 여자일 수 없고, 여자는 남자일 수 없음으로 차별하는 근거가 된다. 타인을 위해 존중해야 하는 것을 듣고, 정리하는 것이 먼저다. 그렇게 베풀어 받는 일이 남녀 간의 다양한 이슈, 사회 속의 다양한 이슈를 슬기롭게 풀어가는 방식이다.

 

 102살의 베르트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 문제는 앞으로도 영원할 것이다. 하지만 같은 방식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방향으로 문명은 발전하고 있다. 여성의 권리는 더디게 보장된 측면이 제도적으로 존재한다. 이런 핸디캡에 대한 100년간의 과격한 투쟁을 이 소설에서 그려낸다. 그것도 아주 재미있게 경청하는 구조다. 작가가 남자라는 사실이 재미있지만 아이러니한 포인트다.

 

 전쟁은 대부분 수컷들의 물리적 충돌이다. 아이나 큰 어른이나 수컷들은 공통점이 있다. 그 과정에서 베르트가 겪은 문제와 과거 왜놈들과 그들의 성노예를 강압받은 사실을 통해 수컷들이 갖고 있는 특징과 문제점을 잘 알 수 있다. 원치 않는 물리적 피해를 전쟁의 과정에서 강요받는다. 한국전쟁도 유사한 사실이 있지만 그 자료를 볼 수가 없다. 왜 숨겼을까? 그런 다양한 사실 속에서 그런 일이 옳지 못하다는 것은 논할 여지가 없다. 그런데 베르트는 그런 독일군 어린 수컷을 떼려 잡아 묻는다. 이 소설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있는 부분이다. 처음엔 전쟁이란 관점에서 읽다 보니 책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쉽게 이해하게 된다. 전쟁 후 수컷들이 여성에게 강요하는 역할, 원초적인 성적 억압에 맞서는 베르트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리고 베르트는 연속적인 성공과 7번의 삽질 신공을 보여준다. 

 

 그 이야기를 콜롬보라고 불리며 불안한 세 번째 결혼생활을 하는 수사반장에게 이야기한다. 범죄의 부인이 아니라 다양한 제도, 문화,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어려움에 대한 그녀의 판단이다. 특히 그녀가 진정으로 사랑한 루터가 안게 된 수컷의 테러를 보면 정말 수컷들은 크나 작으나 문젯거리다. 물론 여자들이 만들어 내는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 책은 그런 다양한 이야기를 1세기를 살아낸 여자를 통해서 제기하고 있다. 베르트가 다시 범죄자들을 응원하는 과정은 그녀가 바라는 세상의 모습, 작은 소망을 담고 있다. 과거와 현실을 넘나드는 구조가 지루하지 않게 잘 구성되어 있다.

 

 책을 읽으며 여성이 남성보다 우성이라는 나의 관점이 더 강화됐다. 그런 점에서 제도와 문화가 그렇게 발달된 이유가 어떤 이유일까? 우성에 대한 균형을 시도하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상상을 해봤다. 이런 상상을 비겁한 변명이라고 비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상상도 못 하냐고 남녀평등하게 쌍욕을 날리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몸을 쓰고 사는 것보다 머리 쓰고 사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남성은 힘쓰는 일에 최적화된 존재고, 여성은 머리 쓰는 일에 최적화된 존재인가? 문명이 발달할수록 물리적인 동작 중심의 문화에서 머리를 쓰고 기계를 쓰는 환경으로 바뀐다. 요즘 시대를 보면 이렇게 보일 때도 있지만 세상에는 두 가지 일이 균형을 이루어야 돌아간다. 남녀의 문제도 그렇다. 

 

 남성으로 상징되는 루거 총과 22 구경 장총에 제거되는 덜떨어진 수컷을 보면 한심하기 그지없다. 작게 이기고 크게 지는 일이 반복된다. 수컷이 남자라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인간은 기원전에도 현재에도 크게 변화한 것이 없다. 문제의 형태만 다를 뿐.. 그래서 베르트가 담담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insight를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언제 수컷 몸뚱아리에 구멍이 날지 알 수가 없다.. 그렇고 말고.

 

루거 총을 든 할머니
국내도서
저자 : 브누아 필리퐁 / 장소미역
출판 : 위즈덤하우스 2019.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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