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책은 50페이지를 보면 결정난다. 더 읽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 원인은 나를 자극하는 호기심이 만들어지는가에 달렸다. 그 외에는 내가 꼭 읽어야 하는 이유가 있을 때만 놓지 않고 보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김진명이 소설은 재미있다. 같은 책을 읽어도 모두에게 재미가 다 다르겠지만, 내가 재미있어하는 것은 작가가 세상을 보는 일관된 시각과 이 시각에 음모론과 같은 다양한 소재를 기가막히게 구성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기연과 우연이 무협지같은 부분이 존재하지만, 그가 한반도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랑은 대단하다. 대부분의 책이 근현대사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고, 다시 고구려를 재조명하며 독자들의 애간장을 녹이는 능력이전에 그가 꾸준하게 갖고 가는 시각에 대한 독자들의 호기심이다. 나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부터 그의 책을 거의 빠짐없이 보고 있는 이유다. 친필 사인책도 하나 있고.
특히, 이 소설을 통해서 동북 아시아의 국가별 상황을 읽어 낸 후, 한반도의 방향에 대한 작가의 시각을 소설에 풀어냈다. 그런 다차원적인 시각은 역사학자들이 시대를 읽어 내는 방법이다. 소설가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충분히 매일매일의 현대사에 깊은 관심과 그 현대사를 이야기로 풀어서 세상에 내놓고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경직된 관계가 해소되고, 특사가 다녀오는 상황이 그의 예측과 상당히 유사하다. 즉, 시대의 맥락을 그가 잘 읽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현실예측이 재미를 넘어서는 것은 이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위험, 그 위험과 각국의 정치력, 군사력이 갖고오는 내재적 위험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두툼한 로스차일드의 책에서나 볼 수 있는 자본의 역사는 세상에 강력한 힘으로 존재하는 정치력은 곧 경제력이라는 말을 애둘러서 하고 있다. 물리적인 파괴력을 갖는 군사력이란 다른 축은 쉽게 눈에 뛰는 힘이다. 그 형태가 자본과 권력이란 형태로 인간의 세상을 움직여왔다. 소설이지만 그가 펼쳐가는 이야기가 이 축의 기본전제와 시대 상황을 잘 그려냈다. 초반부의 과정과 세계은행, 원유와 같은 자원도 자본이 자본을 축적하는 방법이다.
세상의 황제는 재벌을 지향하고, 재벌은 황제를 지향한다는 농담이 있다. 사실 농담이 아니라 세상을 굴리는 자본과 권력이라는 축의 불가근불가원의 원칙을 잘 설명한 말이다. 앞으로 떨어져도 뒤로 붙어있고, 앞으로 붙어있어도 뒤로 멀어질 수 있는 입체적인 관계다. 소설속의 트선생이 전쟁을 결정하고, 다시 푸선생의 변심으로 다시 무산되고, 현실처럼 동북 아시아의 문제를 만들어 낸 당사자들에게 특사로써 이야기를 하고 있다. 책을 사고 한참뒤에 읽었지만, 현재이 시점이 참 절묘하다.
소설처럼 theory of everything을 풀어 낼 사람이 필요할지 모른다. 하지만 주인공인 인철이 불완전성이란 현실을 인정하고, 선택을 통한 실현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것처럼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은 나를 위한 현명한 선택을 해야한다. 남을 위한 결정을 하다가 시간을 소비하고, 나의 터전을 내준게 된다. 내가 하루종일 타인의 생각을 한다면 나란 존재는 없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그건이 주인정신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매일 늦은 밤에 읽다보니 오늘은 푹 자야겠다.
'소설_예술 (冊)'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성의 아이 - 십이국기 0편 (0) | 2018.03.19 |
---|---|
삼체 (0) | 2018.03.18 |
그 골목이 품고 있는 것들 (0) | 2018.03.01 |
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 (0) | 2018.02.03 |
나를 세우는 옛 그림 (0) | 2018.0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