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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_예술 (冊)

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

by Khori(高麗) 2018.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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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시집을 들고 읽게 될 줄이야!'라는 말을 할 만큼 시집은 나와 거리가 있다. 한편으로는 사람에게 다가오는 다양한 감정을 말과 글로 다 표현하기 힘든데 죽을 힘을 다해서 펼쳐내는 것이 참 고생들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점점 가끔 한 구절이 꼭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아서 말로 표현하지 못할 만큼 소중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럼에도 조금 거리가 있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다.

 사람을 기다리다 잠시 들른 서점에서 김기찬 사진관련 책을 찾아보았다. 70년대부터 서울과 근교의 골목풍경 사진을 많이 담고 있다. 그의 사진을 통해서 어렴풋히 흩어져가는 기억을 본다. 지금과는 또 다른 어른이 되버린 어린이의 회상을 보기도 한다. 아이가 그의 사진을 보면서 동남 아시아 아이들이냐고 해서 한참을 웃었다. 지금 내 또래 또는 나보다 열살쯤 많은 어른들의 어린시절이기 때문이다. 표지의 사내아이와 해맑게 웃는 소녀의 표정이 즐거워보인다. 그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보다, 요즘 거리에서 이렇게 해맑게 웃는 사람들을 본적이 언제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의 재미있고, 인간미 넘치는 흑백사진에 딱 맞는 책 제목이다. 사진첩인줄 알았는데 "안도현의 노트에 베끼고 싶은 시"라고 떡 하니 시집 간판이 주황색으로 예쁘게 칠해져 있다. 넉넉한 사진을 넘기며 사서 두어달 책장에 두었다. 출장갈때 들고 나가서 돌아온지 한참이 되서야 겨우 다 본 셈이다. 시집도 읽다보니 시간이 많이 걸린다. 

 비행기를 타려는데 배우 이경영을 보았다. 요즘 영화는 이경영이 출현한 영화와 출현하지 않는 영화로 나뉠만큼 다양한 역할을 한다. 90년대 명계남이 그랬다면 훨씬 수준 높은 연기력과 비중을 갖고 있다. 불한당의 화려한 악당역은 정말 잘 어울렸는데... 즐거운 마음에 난생 처음 "싸인"을 받아봤다.


 기분 좋은 마음을 갖고 비행기에서 책을 보자니 "불혹, 부록"이란 시가 나온다. 마음에 혹할 일이 있어야 한다니..아마도 자신의 삶을 바라보며 쓸모가 있는 사람이 되려는 마음이 아닐까? 이렇게 사진을 찍어서 회사 동료들에게 보냈더니, 그렇지 않아도 불혹이 되서 싱숭생숭한데 이런 테더를 한다는 지탄이 순식간에 날라온다. 어차피 비행기 뜨면 떠들어 봤자 아무 소용이 없으니...한장 더 보내본다.


 평화는 No Touch라는 구절보다 뻥튀기 가마니에 누었는지, 기댔는지 아이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절대적인 천진무구의 세계라는 말을 사진 작가의 멋진 사진이 잘 설명해 준다. 지금도 뻥튀기 기계를 보면 기분이 좋다. 알곡이 몇 배로 만들어지는 신기함이 꼭 배부른 상상을 하게 한다. 하염없이 입에 털어 넣어도 허기진 공갈빵 같은 속임수가 아쉽지만 눈과 혀는 매번 속는다. 

 이 책이 재미있는 이유는 시인 안도현이 시를 설명하기 때문이다. 매일 천개의 시를 읽는다고 한다. 그것을 추려서 책을 갈무리하고, 다시 그 책에 자신의 이야기를 더 한다. 내가 느끼는 감성과 시인이 바라보는 조언, 멋진 사진작가의 사진, 그리고 원작 시인의 시가 함께 있기 때문이다.

 아마 시대 배경이 훨씬 오래전이라고 생각한다. 6.25라고 부르는 한국전쟁을 기억하는 세대라면 팔십세에 가깝다. 한국전쟁 전후에서 한 가지 동작을 통해서 사람들이 살아왔던 방식, 가치관을 한번에 담아냈다. 무심코 나이먹으면 "나이나 세고 있겠지"라는 낙담이 나오다가 정말 무엇을 세고 있을지 생각해 본다. 하찮은 삶의 나이를 세고 있을지, 무엇인가 가족과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무엇인가를 세고 있을지..


'아직 얼마나 오래 그리고 이제'라는 시다. 유행가 가사처럼 과거를 묻지 않겠다는 것인지, 후회없이 살겠다는 의지인지, 과거는 모르쇠로 살겠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술을 담근다. 그 생각으로 술을 담근 것인지, 그런 의지로 술을 담근것인지 모르겠다. 괜히 짠한 기분이 든다. 그렇지만 또 저렇게 사람들과 자연과 더불어 마주앉아 이야기를 할 것이다. 지난날을 지껄이진 않겠지만 지껄이는 소리야 서로 들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아진다. 활자를 이해하는 책 보다 그래서 시를 읽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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