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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살아보세 (書)

세월호

by Khori(高麗) 2015.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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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http://www.gocoop.or.kr/sub4/menu3.php?idx=504&pmode=view


나이가 들면서 눈물이 느는듯 하다.


작년 이 맘때 전시장에서 듣던 참혹한 현실이 아직도 생생하다. 러시아 지인이 너의 나라에 배가 침몰해서 사람이 많이 죽은것 같다고 하는 말을 보면서 무슨 황당한 이야기인가 했다. 돌아와서 구조는 하나도 없고 죽는 사람만 늘어나는 방송을 계속한다며 불평하던 막내의 이야기도 일년이 넘었다.


길을 가다가 지하철 역 앞의 자욱한 노란 천조각과 그 속에 담긴 사람다움의 말을 보면서 눈물이 핑글돌때가 많다. 나는 그들을 모른다. 개인과 개인의 단절된 사회속에서 보면 말이다. 하지만 조금만 넓게 보면 그들이 나의 이웃이고 또 몇다리 건너면 또 가까워질 수 있었던 사람들이다. 세상은 그렇게 얼기설기 엉성한듯 해도 또 촘촘하게 이어져있다. 그 사람들과의 관계가 더욱 단절되는 사회를 살아가는 마음에 다시 한번 생채기가 생기는 현실을 본다. 세상에 따뜻한 가슴을 갖은 사람들이 많다는 확신과 확인과 희망을 갖고 살아가야하는 명제가 생긴다. 


300이 넘는 작은 꽃잎들이 떨어지는 것이 봄날의 떨어진 꽃잎과 어찌 같은가? 가족만 하더라고 천여명에 육박할 것이고, 조금만 가족의 범위를 넓혀도 수만명이 되는 사람들의 가슴을 후펴파, 검붉은 꽃잎을 심는 일이 어찌 작은 일인가? 


그런데 위로가 참으로 역겨움으로 돌아가는 현실이 더욱 침울하게 한다. 그들의 목소리를 듣기라도 할때면 나는 두가지를 느끼게 된다. 뜨거운 심장이 내가 인간임을 증명하고 그보단 심각한 미안함과 측은한 마음이다.  


사건은 어떤 일이 발생한 결과이다. 이 현상을 어떻게 해결하는가에 따라 사회적으로도 위로와 새로운 화합의 동기가 될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현상은 대단히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건이란 본질의 해결은 저 멀리 하늘 저편에 서성이고, 여기의 상황에 따른 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것 처럼 보인다. 계량적 분석을 통해서 효율을 지향하며 why를 말할 줄 아는 사람들이 똑같은 해결수순의 일에 why를 외면하는 것은 본질을 외면하는 것과 같다. 그냥 시간이 흘러가면 잊혀지겠다는 바램일 뿐이다. 한국의 근현대사에서도 이런 일은 많다. 하지만 잊혀진 일들이 있는가? 


김구선생이 좋아했다는 한시중에 어지러이 걷지 마라..이런 구절이 있는 시가 있다. 눈밭길을 어지러이 걸으면 뒷사람도 어지러이 걸을 수 있다는 구절로 기억한다. 반드시 바로 걷는 사람들이 그 어지러움을 논하기 때문이고, 인간이 걸어온 길은 겨울 눈길처럼 봄이 온다고 잊혀지는 것이 아니다.


죽은 자와의 의리는 없는 것인가? 이해관계에서는 그러기 싶다. 현재의 상황에 비슷한 현상이 존재한다. 하지만 죽은 혈육과의 정을 끊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그렇게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건 망상에 지나지 않다. 산이나 종교단체에 가서 바램을 욕심내는 마음의 자위행위에 불과하다. 남녀의 애뜻한 사랑만 평생 가슴속에 묻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훨씬 낮은 수준의 것이기 때문이다. 혈육의 정은 심장에 찍은 낙인처럼 오래 갈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것을 恨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그런데 지금의 세상은 참혹하다. 사람의 가슴을 예리하게 후벼파고, 상처를 주는 일을 서슴치 않는다. 그리고 이런 정신적 물리적 완력을 쓰는 사람들은 아직 발생하지 않지만 예상되는 상황을 상상하고 가정하고, 자신의 이익에 따라서 스스로를 옹호하는 듯하다. 마치 자신은 미리 다 알고 있고, 똑똑하다는 것을 입증하듯 방자하다. 누군가 다가올 슬픔에 따뜻한 위로를 받고자 한다면 내 이웃의 슬픔을 외면하면 안되는 일이다. 세상은 언제나 서로 돌고 또 공평하게 짐을 지게한다고 믿는다. 


어리석은 사람은 상황이 어려워지면 더 어리석어진다. 세상이 고요하듯 활력이 있다기보단 시끄럽고 활력이 없음은 지금의 시절이 수상하다는 것의 반증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사람다움마저 없다면 여기가 곧 지옥과 무엇이 다른가? 그걸 아름답다고 할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손을 내밀고 그들을 품어주는 따뜻한 가슴의 만남이 곧 치유다. 그렇게 세상이 멍들어 간다는 비관보다는 가슴의 온기가 빠져나감이 사람을 지치게 한다. 


그렇게 차갑게 가라앉은 따뜻한 봄날의 꽃잎들은 아직도 우리 시대에 생생하게 살아있고, 살려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웃의 몫이다. 그래야 다시 세상에 풍랑이 몰아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월은 아직도 잔인한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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