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녀석이 계속 PMP 자격증을 따라고 한다. 개발자도 아니고 해외영업을 하는 나에게 왜 이렇게 닦달인가? 그 꾐에 빠져서 PMP시험 자격을 위해서 필요한 35시간 교육시간을 이수중이다. 시험을 볼 것인가? 안 볼 것인가? 는 나의 자유의지에 달려있다.
스스로 봐도 자격증에 관심이 없다. 자격증의 부작용도 심각하다. 나는 판사, 검사, 의사, 교수, 기능사, 회계사, 변호사 등 모든 자격은 일정 기간이 되면 자격 유지 검증 시험을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속된 말로 금치산자가 되어도 한 번 자격을 따면 계속 유지된다. 하물며 운전 면허증도 갱신과 재검을 하는데 그 많은 자격증은 한 번 얻은 자와 한 번도 얻지 못한 자로 나뉘어서 시장의 카르텔을 형성한다. 그러나 실력자를 만나면 자격이 없다고 난리 치는 사람들이 많아져 소란스러워진다. 나는 교육을 갖고 이런 장사를 하는 부류가 싫다.
그런 내가 PMP 수업을 들으며 느낀 점이 있다. 일본이나 독일, Global leading company와 일을 하면서 받아 든 서류는 숨이 팍팍 막히게 한다. 학창 시절 빽빽이도 아니고 이걸 다 써오라고? 그러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녀석들은 이런 문서를 어떻게 만들기 시작했지?라는 궁금증이 생긴다.
그리고 그들이 이 서류라는 데이터 입력방식이 그 산업의 지식과 경험이 만들어 낸 지적 산유물임을 점차 알게 된다. 어떤 결과물을 만들기 위한 전제 조건, 그 조건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 필요한 사항을 확인, 점검하는 프로세스, 목표과 완료되면 종료하는 과정까지 체계적이다. 전체의 윤곽을 계략적으로 이해하게 된 것은 내가 직접 프로젝트를 하면서 하고 있는 일, 미진할 일, 하지 않던 일을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인과 같은 마스터는 지속적인 반복을 통해서 몸으로 그것이 만들어지는 체계를 품은 사람이다. 데이터로 만들지 못하더라도 그의 감각과 몸에 밴 습관적이고 기계적인 동작이 구분한다. 이런 장인의 과정을 시스템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 결과를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구조화하는 것이 PMP의 목적 같다.
우리는 경험이 축적되면 지혜가 당연히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른이 되면 마음도 넓어지고 아량이 자연스럽게 넓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의 인공지능 방식으로 생각해보면 나의 호불호를 나이가 먹어가면서 더욱 명확해질 수밖에 없다. 호불호의 반응도 훨씬 빨라진다. 반면 이 반응의 결과에 대한 학습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나는 나이가 들면서 아량이 넓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반응을 통해서 나에게 예측되는 결과에 따라서 참는 기술이 늘어난다고 생각한다. 기분이 항상 좋아지는 것이 아니다. 결국 경험이란 지식이 될지, 지혜가 될지, 그냥 스쳐가는 기억과 추억이 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학습경험, 체험을 통해 지식을 축적하고 그 지식을 내가 유사한 환경에 사용할 줄 아는 것이 실력이다. 사용하지 못하나 머리로 이해만 된 것은 여물지 못한 실력이다. 지식을 정리하면 문서가 되고 데이터가 된다. 이런 데이터가 중요한 것은 폭발적인 기폭제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시간의 극복을 문서를 통해서 한다. 태어나면 초기화된다. 처음부터 다시 가르치고, 그 결과도 항상 사람마다 다르다. 반면 인간의 지식과 지혜가 문서로 남기면, 그것을 실행하는 대상인 기계, 논리가 발전하게 된다. 인간은 무한하게 이어달리기를 해서 후손에게 이바지하는 형태로 살아가게 되어 있다. 물론 세상에는 그렇지 못한 놈들도 많다. 그래서 이런 놈들은 역사에 기록하고 나쁜 놈으로 부르게 된다. 편법으로는 내가 할 실력이 없으면 그 실력을 갖은 사람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하는 기술이 발전될 수밖에 없다. 인문학이란 크게 보면 이 범주안에 있다.
문제는 경험이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지만 신봉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연공서열 중심의 세상은 이런 한계를 안고 움직여 가는 것이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가면 경험이 지식과 지혜로 충만해진다는 조건이 절대 불변의 법칙이라면 좋겠지만 항상 그렇지 않다. 사람을 믿어야 세상이 돌아가지만, 세상에 사람만큼 못 믿을 존재도 없다. 이성과 감성의 경계에서 항상 갈등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 후기의 실사구시, 이용후생이란 구절이 나오면 안타까워한다. 그 시대를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이후에 발생된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나는 어떠한가?라는 질문에 당당한지 모르겠다. 팟캐스트를 듣다 보니 내 20대가 지금의 나에게 묻는다면 이란 말이 나온다. 지금 내가 지나온 20대를 바라보면 딱히 부러운 것도, 아쉬운 것도 많지 않다. 그 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점도 있고, 조금 바뀐 점도 있다. 더 많은 경험을 축적해서 내가 하는 일에 조금 더 사용하고 있다는 측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보다 누군가 나에게 더 많이 요청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뿐이다. 하루를 살아간다는 말보다 오늘 하루를 살아낸다는 말에 더 많은 무게를 두는 이유도 그렇다.
실력이란 어떤 대상에 효과적이고 효율성을 만들어 내는 논리를 적용하는 것이다. 그 결과물은 내가 갖기도 하고, 후임자에게 돌아간다. 내가 얻는 것보다는 그렇게 정착된 결과가 보다 많은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야 사람들에게 좋은 소리를 듣게 된다. 내가 만들어도 타인에게 도움이 되도록 발현되어야 한다. 경험은 내 안에 쌓여 뭐가 될지 모른다. 그것이 인생을 슬기롭게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새각한다.
#경험 #실력 #당신은어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