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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듣기 (音)

언제들어도 참 좋다.

by Khori(高麗) 2012.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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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바흐 / 브람스 / 차이코프스키 : 바이올린 협주곡 - 오이스트라흐

David Oistrakh
Universal | 1995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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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최고의 바이얼리니스트라는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의 연주는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오늘같이 늦더위속에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만큼 바흐를 연주하는 소리는 사람을 감상적으로 만들어주는듯하다.  휴식을 취할때도 안정을 할때도 그리 화려하지도 않고, 무엇인가 사람을 차분하게 해주는 듯하다. 


일일이 연주사의 소리를 기억하고, 곡의 테마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대단해 보이긴하지만 나처럼 편하게  짧은 시간을 즐기는 사람에게도 이정도면 충분히 대단하다고 할만 하지 않을까요? 자료를 찾아보니 만년 이등처럼 써있긴하지만, 잠시 일등보다 계속 이등을 한다고 해서 폄하될 이유도 없지요. 코간하고는 약간의 차이가 있어 보이긴합니다. 코간이 곡때문인지 좀더 중후한감은 있는해 보이거든요. 앞으로는 하이페츠의 연주도 관심을 갖아볼까 생각해 봅니다. 당연히 강남스타일같은 노래도 듣지만요..



<출처: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1joon&logNo=140031122832>

다비드 오이스트라흐[Oistrakh, David Fyodorovich, 1908.9.30~1974.10.24]

오이스트라흐는 우크라이나 오데사 출생. 5세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하였고, 1926년 오데사 음악연극학원을 졸업, 우크라이나 ·바르샤바의 비에니아프스키 국제콩쿠르 등에서 입상하여 국내외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유럽 ·미국 ·동양 등지에서도 연주여행을 하였고, 레코드로도 널리 명성을 떨쳤다. 그의 연주양식은 러시아의 음악 취향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정확한 기교, 거기에 특히 저음이 잘 어울리는 음색으로 칭찬을 받았다. 그는 또 지휘에도 뛰어났다.  아들 이고리 오이스트라흐도 역시 바이올린 연주자이며 부자가 함께 2중주의 연주활동을 하였다.

 

러시아 연주 양식에는 화려한 기교와 깊이 파고드는 정서의 표현을 그 특징으로 하는 유명한 '아우어파'라는 전통이있다. 그의 스승인 스톨랴르스키도 그 흐름을 탄 사람이니 오이스트라흐도 아우어파의 전통을 가진 연주자이지만 그 전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네오 아우어파'라 불리는 새로운 양식을 창조했다.  그의 기교는 결코 현란한 바이올린 테크닉을 추구하지 않고 조형력, 톤, 힘의 세 요소가 균형을 갖춘 것이다. 또 아름답고 뉘앙스가 풍부한 소리에 낭만적이지만 절제된 맛이 있는 표현력을 갖추고 있다.  누구에게나 그 따뜻한 마음을 넉넉히 나누어 줄줄 아는 그런 연주자이다.

하이페츠와 더불어 세계 바이올린계를 양분했던 거장 오이스트라흐는 1908년 오데사에서 출생했다. 1935년 지네트 느뵈 다음으로 비에니아프스키 콩쿨에서 2위를 차지하고, 1937년 브뤼셀에서 열린 이자이 콩쿨에서 29세의 나이로 우승하여 전 유럽에 명성을 드높이는 계기가 되었으나, 2년후 발발한 세계대전 대문에 1945년까지 동구와 소련에 국한된 활동을 했다. 따라서 전후 그의 유럽 출현은 참으로 충격적인 것이었다고 한다. 소위 스탠어드 레퍼토리 뿐 아니라 동시대 작곡가들의 것에도 관심이 많아 프로코피에프, 쇼스타코비치, 카발레프스키, 하차투리안과 같은 유명한 작곡가들의 것을 즐겨 연주했고 널리 알리는데 힘썼다. 그는 숨을 거두면서 "나는 평생 동안 연주자로 지휘자로 교육자로 일을 참많이 했다."고 곱개하였는데 그의 아들 이고르를 비롯해 크레머, 빅토르 피카이젠, 올레그 카간 등을 훌륭히 키워내 지금가지도 음악계에 공헌을 하고 있는것을 생각하면, 그의 교사로서의 업적도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다비드 오이스트라흐는 살아 생전에도, 지금도 여전히 하이페츠에 버금가는 '2인자'이기만 했을까? 지난 96년 3월호 '객석'의 집중 탐구기사 '4대 바이올린 협주곡의 세계'를 보면, 음반부분에 4대 바이올린 협주곡의 명반을 평론가와 칼럼니스트의 투표로 선정한 것을 볼 수 있다.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의 명반으로는 샤를르 뮌슈 지휘, 하이페츠 연주의것 (보스턴 심포니, RCA)이 선정되고 그 뒤를 따르는 것이 오이스트라흐(클뢰탕스-프랑스 국립방송 교향악단, EMI)이다. 차이코프스키 협주곡도 역시 하이페츠의 연주(라이너- 시카고 심포니,RCA)가 오이스트라흐(오먼디-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CBS)보다 우위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브람스 협주곡에서는 하이페츠가 아닌 레오니드 코간의 연주(콘드라신-필하모니아,EMI)가 명반으로 선정되었고, 오이스트라흐(클렘페러-프랑스 국립방송 교향악단)는 그 다음이었다. 이들 모두는 다 최고의 완성도를 자랑하는 음반이지만 오이스트라흐는 불행하게도 어느 하나에서건 윗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세상에는 협주곡만 있는 것은 아니다.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에선 아직도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의 연주만한 것을 찾아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오이스트라흐는 하이페츠같이 완벽하진 않았으나, 그 연주의 완숙도면에서 최고의 경지에 올라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이페츠는 '너무 완벽해 차갑다'는 평을 자주 들었으나 오이스트라흐는 그 반대로 '따뜻한 인간미가 넘친다'는 평을 자주 들었다. 위에서 말한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의 연주도 하이페츠의 것을 '불타는 빙산'에 비유한다면 오이스트라흐의 것은 '얼음기둥 사이를 유유자적하게 헤엄쳐 다니는 금빛 물고기'에 비할수 있을 것이다. 오이스트라흐의 연주는 내향적, 사념적이고 절제미가 돋보이며, 폭 넓은 레가토를 적절히 구사하는 것이었다. 이는 하이페츠의 연주특성에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지만 모든 면에서 하이페츠에 뒤지는 오이스트라흐의 변호를 위해 누군가가 지어내 준 것은 절대 아니다. 음악은 언제나 치열하고 숨가쁘게 몰아붙여서만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음악은 스포츠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이스트라흐의 미덕은 나름대로의 장점을 발하며 그만의 개성으로 자리잡을수 있었다. 오데사 태생의 오이스트라흐는 렝폴드 아우어의 제자가 아니었다. 어린 시절 오데사 음악원의 또 다른 명교수 스톨리알스키에게 배운 그는 아우어파와는 다른 러시아 바이올린 인맥을 형성했다. 물론 테크닉은 하이페츠를 제외한다면 최고의 수준이었다. 1935년 비에니아프스키 국제 콩쿠르 2위, 1937년 이자이 국제 콩쿠르 우승 등으로 구소련 밖에서 알려졌고, 길렐스의 경우와 비슷하게 구소련이 정책적으로 서구에 소개하는 연주가로 지목되어 많은 혜택을 누렸다. 레프 오보린과 리흐테르와의 트리오를 중심으로 한 실내악 활동은 조금 더 시간이 흐른 후에 이루어져 좋은 결실을 거두었다. 만년에는 지휘대에도 서는 모습을 보였으나 큰 업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오히려 교육분야에선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할 수 있겠다. 기돈 크레머와 올레그 카간 등이 그가 길러낸 제자. 바이올리니스트인 이고르 오이스트라흐는 그의 아들이다.  <객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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