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 "쓰다"라는 글을 읽었다. '기록', '사용', '쓴 맛', '모자를 쓰다', '떼를 쓰다'등 큰 의미로 보면 '무엇을 사용한다'는 의미가 가장 많다.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서 활용된다고 생각했다. 내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인생이란 시간을 쓰고, 삶이란 글을 쓴다'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사전을 찾아보고, '쓰다'라는 말이 이렇게 많은 용도로 사용되는지 더 자세하게 보게 된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일을 하며 일상을 통해 경험을 한다. 그 과정에서 머릿속을 스쳐가는 생각들을 틈틈이 써오고 있다. 어려서부터 이런 활동을 위해서 많은 삶의 시간을 사용했지만, 6년 전부터는 내 마음속에 일어나는 다양한 감정, 느낌, 머릿속에 떠오른 자유로운 생각을 기록해오고 있다. 졸필과 소견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다시 사진처럼 보고 싶을 때도 있고, 그렇게 지나가는 시간 속에 떠오른 생각들이 흩어지는 것이 아쉬웠다. 왜냐하면 그것이 삶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본들 어떤가? 다른 의견을 듣는 기회도 되고, 동류의 사람들이 하는 소리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시간을 쓰면 반드시 그 대가를 얻게 되어 있다. 시간을 적절하게 쓰고, 무엇을 얻고 배웠는지 잘 복기하지 않기에 배움이 적다고 생각한다. 내가 기록을 하는 다른 이유다. 유희를 위해서 시간을 쓰면, 무엇이 재미있고, 어떤 일이 재미없는지 알게 된다. 이런 기록이 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기억에 남는 시간은 대부분 좀 더 가치 있는 일에 내가 씌이기 위해서 노력한 시간이다. 그 과정이 그리 즐겁고 유쾌하지 않지만 작은 결과에도 기뻐할 수 있다. 그 이유가 나는 좀 더 가치 있는 것을 스스로 얻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사람은 아름다운 것만큼 가치 있는 것을 사랑한다고 믿게 된다. 혹시 시간은 통제할 수 없는 절박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통제할 수 없는 시간을 쓴다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한지 모르겠다만 삶의 주체로써 충분히 의미 있는 표현이다.
이렇게 시간과 인생을 보내며 쓰고, 달고, 매운 삶의 경험이 쌓여 나만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울적한 날 타인의 삶이 부러워 보이고, 가을 깊은 하늘만큼 기분 좋은 소중한 기억, 애틋한 사랑이야기도, 애절한 슬픔도 젖어있다. 어슴푸레한 달빛에도 부끄러워 숨기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누구에게 자랑삼아 함께 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다.
나와 나와 관계된 사람들과 얽히고설킨 이야기들이 불확실한 미래처럼 변화를 만들며 삶의 다양성을 만들어 간다. 좋거나 싫거나 그렇게 나만의 길이 만들어진다. 나이가 들어가며 걸어온 길을 다시 돌아보고 다시 걸어가야 할 길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나를 기록하면서 만들어진다. 이리저리 흩뿌려진 듯한 산만한 나의 발자국을 돌아보며 후회하고, 다시 똑바로 걸어야지 하다가도 잠시 쉬기도 하며 또 내일을 걷게 된다. 종종 꿈이 무엇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스스로 머리는 자유롭게, 아름다운 것들과 가치 있는 것들을 가까이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다.
기록을 위해서 디지털 활자를 사용할 수 있고, 아날로그 운치가 살아나는 캘리그라프는 아니더라도 손 글씨로 기록할 수도 있다. 활자로 체화된 나의 기록은 종종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옮겨 다니며 오해와 이해를 만든다. 어떤 형태로든 기록된 나의 삶의 이야기가 타인의 마음에 보이지 않는 글씨로 남는 다면 행복한 일이고, 누군가의 머리에 남아 씌여진다면 고마운 일이다. 내가 걸어온 발자취에서 한치도 벗어날 수 없는 법칙 때문에 멋진 길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지나가는 누군가의 눈길 한 번에 그를 쳐다보며 반응하듯, 스쳐가는 사람들의 짧은 시간에 고마워하며 살아가는 것이면 충분히 고맙게 여기며 살만하다.
얼마 전 사진전에 다녀오고 Time 100 photo라는 사이트를 들러봤다. Times라는 잡지의 역사를 시대에 따라 사진을 통해 볼 수 있다. 글로 쓰는 기록과는 다른 맛이다. 잘 구성된 시대의 역사가 훨씬 더 멋있다. 더 많은 정보과 느낌을 정확하게 전달해 주기 때문이지만, 그 역사의 순간도 나처럼 이름 없이 사람들이 그 시대를 함께 살아왔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비록 나의 삶이 멋진 기록은 아닐지라도, 삶을 글과 사진을 이용해서 기록해 보는 것은 스스로에게 대단히 가치 있는 일이다. 공을 들이다 보면, 삶을 기록하려는 것인지 기록하려고 일상을 분주하게 보내는 것인지 분간하기 힘들다. 그것을 분별하는 것보다는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하면 좀 더 괜찮은 삶의 이야기가 채워지지 않을까 하는 바람과 욕심이 있다. 이 정도의 욕심은 삶에 허락되어야 하지 않을까? 짧은 기간이지만 나의 경험을 기록며 몸으로 느끼고, 머리로 한번 더 생각하게 된다. 더 많이 들여다본 만큼 삶은 어제보다 아주 조금 나아지는 것 같다. 비록 정신승리법이라 웃을 지 몰라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시간을 쓰고 나면 긍정적으로 또는 부정적이라도 배움이 있어야 한다. 긍정적인 것은 지향하고, 부정적인 것은 지양하면 된다. 이런 연습이 머리에서 가슴까지 매일 오가는 갈등을 조금이나마 가라앉혀 준다. 좀 더 차분하게 다른 사람과 함께 조화와 공감을 형성하면서 세상에 묻히기도 하고 드러나기도 하며 하루를 살아간다. 위대하지 않지만 누군가에서 손가락질 받지 않고 조금씩 걸어가는 나의 길이 선명해질 것이다. 다시 오늘을 쓰고, 짬을 내서 기록하고 내일을 쓸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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