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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기원>을 쓴 한국 근현대사 연구의 대가 브루스 커밍스(68) 미국 시카고대 교수 |
ⓒ 최경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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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사 연구의 대가인 브루스 커밍스(68)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후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 이끄는
북한 체제를 "1인 독재 체제가 아닌 왕조(dynasty) 체제"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17일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이 북한이 왕조나 왕국이라는 것을 보다 명확하게 했다"며 "북한은 권력을 가진 70~80대의 인사들이 논의와 결정 과정에서
집단적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 군 상당수를 통치하고 있는 80대의 혁명 1세대들이 모여 있는 국방위원회에 핵심 권력이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이 김정은
부위원장을 체제 존속과 권력의 핵심적인 상징으로 유지함으로써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고 하기 때문에 내부 권력투쟁은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는 "이들이 북한의 현안문제에 해결책을 제시할 수는 없지만, 권력을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다"며 이들이 3대 세습으로 가는
과정에서 상당히 안정적인 정치적 이행을 지도하고 통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커밍스 교수는 북한의 체제를 남한의 재벌가나 미국의 엘리트 가문에
비유하기도 했다.
커밍스 교수는 특히 "간택된 아들이 왕이 되고 왕이 어리면 섭정자가 있다"며 "북한은 완벽한 섭정자가 있는데, 그게 바로 (김정일 위원장의
매제인) 장성택(국방위 부위원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평화협정, 대미관계 복원, 비핵화가 북한의 여하한 변화를 이끌어 내는 중요한
전제"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커밍스 교수와의 인터뷰 중 일부이다.
"마치 미국의 엘리트 가문들처럼... 북한은 왕조 체제"
-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후 북한이 1인 독재 체제가 아니라고 했는데.
"북한은 1인 독재 체제가 아니라 왕조(dynasty) 체제다. 김정일의 사망이 북한이 왕조나 왕국이라는 것을 보다 명확하게 했다. 북한은
권력을 가진 70~80대의 인사들이 집단적 결정은 내리지 않더라도, 논의와 결정 과정에서 집단적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얼마 전 김정은이
암살당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김정은이 죽었다고 치자. 그래도 북한의 일상은 지속성이 유지될 것이다. 왜냐하면 국방위원회에 포진되어 있는 이러한
힘 있는 지도자들 때문이다.
북한은 사실상 과거 역사의 왕조처럼 움직이고 있다. 왕이 죽으면 어느 아들이 그 자리를 계승할지는 흥미로운 문제 아닌가. 북한 정치지도력의
안정성은 여전히 굳건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북한 내부에서) 권력투쟁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데, 1994년 김일성이 죽었지만, 실제로 아무
일도 없었다. 김정일이 죽었고, 김정은은 경험이 없지만, 주변에 경험 많은 사람들이 많다.
워싱턴 정가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조차 북한이 1인 통치 체제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1인 통치 체제는 달성하기 힘든 체제이다. 1인 통치
체제는 모택동이나 김일성처럼 카리스마 있는 인물이 있거나, 스탈린이나 히틀러처럼 수많은 사람을 기꺼이 죽일 수 있을 때 가능할 것이다. 김일성이
죽기 2~3년 전인 1992년 경, 그가 80살 정도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의 가장 큰 난관이 '구세대'라고 기자들에게 말한 적이 있다. 이유가
어찌되었건 김일성조차 이런 사람들을 이래저래 어쩌지 못했던 것이다."
- 북한의 왕조 체제는 언제부터 시작됐나?
"김일성과 함께 활동한 게릴라들이 있었지 않나. 박성철은 95세까지 살았다. 김일성 사후 10년을 더 산 셈이다. 국방위원회 절반이
80세를 넘은 사람들이다. 말하자면 이들은 한국전쟁기를 거친 사람들이다. 반면 남한 정치지도층에 80세를 넘어서 아직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많은 측면에서 북한은 남한보다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이다. 이러한 노인들을 반대하거나, 비판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동시에 응집력 있는 지도층이다. 그들이 북한의 현안문제에 해결책을 제시할 수는 없지만, 권력을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다. 게다가
핵무기까지 가졌으니, 당분간 권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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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기원>을 쓴 한국 근현대사 연구의 대가 브루스 커밍스(68) 미국 시카고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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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권력 체제에 대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는?
"국방위원회가 가장 권력이 집중된 조직이라는 의미이다. 위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많은 사람들이 연로자에다 군부 출신이다. 1945년
김일성은 약 200여 명의 유격대와 함께 귀국했다. 그리고 지난 66여 년 동안 북한의 모든 것을 통치했다. 이들 유격대의 가족들은 서로 결혼도
했고, 자식들을 최고의 학교에 보냈다. 특권을 누린 것이다."
- 말하자면, 남한의 재벌가처럼 그랬다는 것인가?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마치 미국의 엘리트 가문들이 자식들을 서로 혼인시키고, 예일대나 하버드대에 보내는 것처럼 그랬다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에서는 전체인구의 10~15%에 해당하는 거대한 엘리트 그룹이 존재한다. 이들은 현 정권을 유지하는 데 거대한 이해관계가 있다. 그러나
북한은 일제 식민지 이전의 한국처럼 가장 경험 있는 원로들을 다루기가 극단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항상 해왔던 대로 일을
처리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 북한이 1인 통치가 아니라면 김정일과 김정은 체제의 차이점?
"김일성 체제는 모종의 1인 통치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김일성도 모든 결정에서 그의 유격대 친구들과 의논해야 했다. 그것은 스탈린도
마찬가지이다. 독재자라고 혼자서 마음대로 결정을 내린다고 하는 것은 독재 체제에 대한 오해인데, 결국 보다 중요한 것은 누가 최종 결정을
내리느냐의 문제이다.
김정일은 이런 위치에 이르기까지 김일성 사후 2~3년이 걸린 듯하다. 물론 3년간의 추모기간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가 그 기간 동안
아버지를 추모했다고 믿고 있다. 김정은은 젊고 경험도 없다. 누가 최종결정을 내릴지를 결정하는 것은 북한에게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80대의 노인들이 김정은에게 이러저러한 지시를 내리는 것을 매우 급박한 문제로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김정은, 올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 그렇게 보자면, 30대의 김정은은 이들 80대의 노인들에게는 손자도 아닌, 증손자뻘
아닌가?
"그렇다. 거의 증손자뻘이다. 물론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어떻게 통치하는지를 보아왔고, 김정일의 뇌출혈 이후 3년 동안 현장교시를
쫓아다녔다. 선배 세대에게 지도도 받았다. 내 생각에는 2012년 동안 김정은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한국 대선이 12월,
미국 대선이 11월, 러시아의 대선이 3월에 있을 것이다. 중국에서 후진타오가 물러난다. 주변에 많은 지도자의 변화가 있다. 대통령 선거 해에는
오바마 역시 공화당의 비난을 우려해서 북한에 대해 어떠한 일도 하지 않을 것이다. 2013년까지 별다른 변화가 없을 것이다.
북한 역시 4월15일 김일성의 100세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재원을 많이 사용할 것이다. 적어도 1~3주 동안의 행사가 될 것이다. 그런
탓에 김정은 올해는 그리 많은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1~2년 후에 자신감이 붙고, 그러면 달라질 것이다. 이런 식의 문제는 왕조에서는
고질적인 것이다. 고종이 12세에 왕이 됐을 때, 그의 아버지 대원군이 고종이 스스로 일을 처리할 나이가 될 때까지 모든 업무를 수행했다.
세종도 어려서 왕이 되지 않았나. 왕이 급사하면, 모든 왕조는 이런 식의 문제가 있었다. 간택된 아들이 왕이 되고 왕이 어리면 섭정자가 있었다.
북한은 완벽한 섭정자가 있는데, 그게 바로 (김정일 위원장의 매제인) 장성택(국방위 부위원장)이다."
- 결국 그들도 분단의 산물 아닌가? 분단이나 한국전쟁이 아니었다면, 그들의 대외정책도, 경제개발의
관점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남북 모두 분단의 희생물이다. 백낙청 교수는 이것을 '분단체제'라고 표현했다. 심오하고 올바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남북 양쪽에서 분단을
영속화하는 세력들이 가장 많은 보상을 받았다. 남북 양쪽에서 정보기관, 경찰, 군부들은 모든 측면에서 분단을 영속시켰다. 이를 건너뛰려는
사람들은 탄압받았다. 문익환 목사는 1980년대 말 방북했다가 투옥당했다.
한국의 젊은 세대가 북한의 85세 노인을 이해할 방도는 없다. 반대로 85세 북한 노인이 남한의 젊은이를 이해하기에는 만무이다. 이러한
차이는 굉장한 것이다. 남한은 신속히 변화했고, 북한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북한은 30년, 40년 전에 한 말을 반복하고 있다. 물론 북한도
변하고 있다. 이동전화에 인터넷 그리고 AP통신 지국도 생겼지만, 매우 완만한 변화이다. 반면, 한국은 항상 변하고 있다. 그래서 통일까지
20~30년 여유를 두는 김대중의 화해정책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이나 부시 행정부가 이것을 계승하지 않은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 북한이 왕조가 됐고 한국전쟁은 내전이었다면, 한국전쟁 당시 남북 중 누가 더 진보적이었다는
이야기인가?
"북한이 왕조를 지도 체제로 굳혔지만, 1940~1950년대는 매우 진보적이었다. 특히 토지개혁과 여성문제에 대해 그러했다. 문맹이었던
농민이 글을 깨우치고, 지방 관리나 당 간부가 되었다는 것은 수많은 자료를 통해 입증됐다. 나의 학생이었던 럿거스대학 교수인 수지김(Suzy
Kim)이 최근에 강원도 인제군의 인민위원회에 대한 책을 냈다. 인제군은 한국전 전에는 북한, 후에는 남한 땅이었다. 수지김은 우선 방대한
자료를 검토하고, 인제군의 노인들을 면담했다.
북한 땅일 때는 한 번도 민주주의라고는 할 수 없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정치에 참여했었다. 그리고 많은 여성들이 지방과 중앙조직에
진출했었다. 1960년대부터 이것이 변하기 시작했다. 여성들이 마치 김성애처럼, 매우 아름다운 장식물에 불과해졌다. 예를 들어 1940년대의
박정애는 오랫동안 혁명가였고, 북한 요직에 있었다. 북한에는 혁명, 특히 반식민지 혁명이 있었다. 내 말인즉슨, 북한이 조선왕조를 복원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지도체제가 왕조화됐다는 것이다."
- 북한이 대외 대응의 일환으로 정치체제를 변화시켰다고 볼 수 있나?
"1960년대 조선화(Koreanize)된 것이다. 1940~1950년대는 상당히 마르크스-레닌주의적 국가였다. 마오주의적 영향도
상당했다. 주체사상이 등장하고, 김일성이 전면에 나서면서 갑산파와 러시아파가 숙청됐다. 그 후 최고 지도자가 된 김일성은 매우 한국적인 방향으로
나라를 이끌었다. 김정일이 후계자로 등장하고, 여성의 지위가 추락했다. 주체사상은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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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기원>을 쓴 한국 근현대사 연구의 대가 브루스 커밍스(68) 미국 시카고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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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은 호남사람들을 대한민국에 편입시켰다"
- 한국전쟁 없이 그런 전환이 가능했을까?
"그것은 잘 모르겠다. 한국전은 참혹한 전쟁이었고, 모든 것을 갈라놓았을 뿐 아니라 남북 모두의 형질을 변화시켰다. 서로에 대해 엄청난
복수심을 가지게 했다. 그 상황은 수십 년 지속되었다. 김대중이 한 일 중 미국에서 주목받지 못한 일이 있다. 김대중은 남한을 통일시켰다.
말하자면, 호남사람들을 대한민국에 편입시킨 것이다. 호남지역에 대한 '좌익반란'이라는 이미지를 넘어서게 한 것이다. 김대중이 퇴임할 때쯤 남한은
영호남이 맞서거나, 우익과 1940년대 좌익에 머물렀던 세력이 맞서는 것이 아닌, 단일국가가 되었다."
- 이대로 북한 정권이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
"상당기간 유지될 것이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이후, 모든 사람들이 북한도 붕괴할 것이라고 봤다. 1990년 한국의 한 신문에
기고를 했는데, 북한은 쉽사리 붕괴하지 않을 것이니, 북한 붕괴를 통한 독일식 속성통일에 대한 기대를 접으라고 말했다. 그런데 북한 붕괴가 미국
대북정책의 전제가 되었다. 1994년 클린턴 행정부가 북한에 경수로 2기를 지어주기로 한 것도, 북한이 경수로 완공 이전에 붕괴할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워싱턴에 있었던 정책토론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런 식의 전제가 바보스럽고, 잘못 됐고, 결함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정책입안자들은 조용히 그리고 예의바르게 내 얘기를 경청했었는데, 1995년경 CIA 국장 존 도이치(John Deutch)는 의회에 나가
'북한이 붕괴할 것인가, 아닐 것인가가 문제가 아니라, 언제 붕괴할 것인가가 문제'라고 말했다. 48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북한의 총사령관은
'제2의 한국전쟁이 발발할까, 하지 않을까가 문제가 아니라, 언제 제2의 한국전쟁이 발발할 지가 문제'라고 선언했다. 그렇게 CIA 국장에게
답변한 것이다."
- 북한이 왕조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이상, 통일은 더 요원한 것 아닌가?
"김대중이 하려던 일은 3~4개의 역사적 사실과 화해하는 것이었다. 먼저 남한 사람들이 북한에 대해 더 많이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자면, 김일성은 항일 저항 지도자였다. 그 이전의 정권은 김일성이 가짜라고 말했다. 진짜 김일성은 따로 있고, 북한의 김일성은 소련의
꼭두각시라고 말했다. 따라서 북한의 참모습에 대해 알아야 한다. 이 점은 이미 진행되고 있다. 요즘 남한에서 나오는 북한 연구를 보면 미국에서
나오는 것보다 낫다.
두 번째는 남한 안에서의 화해였다. 전라남도의 구림마을에 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한국전쟁 중 이 마을은 심각하게 좌우로 분열되었고,
서로를 살해했다. 많은 가족들이 서로 거래를 끊었다. 종국에는 마을원로들이 좌우 모두의 관점을 아우르고 양쪽을 비난하지 않는 향토사를 쓰기로
결정했다. 그런 식으로 역사가 인간을 화해하도록 도울 수 있다. 남북한의 전후사, 미국의 역사, 중국·러시아의 역사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면, 일종의 평정심을 갖게 된다. 왜 전쟁이 일어났고 분단이 되었는지, 왜 서로를 증오하는지 이해하게 된다. 이것을 이해하게 되면, 북한이 왜
저런 지도층을 갖게 됐는지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나는 북한이 민주주의가 되기 전까지는 남북통일이 될 것이라도 생각지 않는다. 동시에 북한은 한국전쟁이 휴전이 아닌 종전이 되지 않고서 또는
모종의 강화조약, 평화체제가 들어서지 않고서는 민주주의로 전환할 수 없을 것이다. 북한은 남한이나 미국에 위협받지 않아야 한다.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절대로 민주화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북미관계가 정상화되어야 한다. 북한은 미국과 관계개선 이전에 어떠한 민주화도 없을 것이다. 나는 김대중과 클린턴 정부 하에서는 일이
이런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었다고 믿었다. 그리고는 부시가 집권해서 모든 것을 망쳐버렸다. 오바마가 집권한 뒤 여러 가지 기회가 있었는데 남한에서
대북강경책을 사용하는 이명박이 집권했다. 적어도 지난 10년 동안 단절이 있었다. 평화협정, 대미관계 복원, 그리고 가능할지 모르지만 비핵화가
북한의 여하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중요한 전제이다."
-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핵무기를 포기하려고 했었다. 그들은 1994년 제네바합의 이후로 플루토늄을 포기했었다. 어느 나라도 그렇게 포기한 적이 없었다. 리비아는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했으나 침공당했고, 카다피는 살해당했다. 북한에게는 아주 나쁜 선례가 되었다.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에 위기가 점증하고 있고
이게 전쟁으로 비화되면, 북한이 핵을 포기하기 정말 어렵게 된다. 그러나 북한사람들이 언제나 한반도 비핵화가 김일성의 유훈이라고 하니, 기대해볼
만은 하겠다. 1998년과 2000년에 한미는 북한을 포용하려고 했지만 지난 12년 동안 상황이 나빠졌다. 여하튼 북한이 소련만큼 또는 그보다
오래 지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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