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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살아보세 (書)

New colonial era in 21C? - 개탄스러운 하루가 간다

by Khori(高麗) 2023.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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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세상을 보면 또 뒤죽박죽이다. 100년 전의 혼돈이 새롭게 재탄생하는 것은 아닐까?

 

 오늘 뉴스에 홍범도·김좌진·지청천·이범석 장군과 이회영 선생의 흉상을 없앤다는 뉴스를 보면 '도랏'이란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항일 독립운동에서 무력투쟁의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과, 전 재산을 팔아 만주로 가서 신흥무관학교를 만든 사람들을 배척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일국의 국방부 장관은 재해에 자식 같은 사병을 위험 속에 떠밀어 죽음으로 몰은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확신을 갖고 결재하지 않았다는 구차하고 부끄러운 변명을 했었다. 그런 장관이 나와서 공산당 전력을 이야기할 때 내 생각이 맞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해방전후의 시대는 사회주의 사상, 공산주의 사상이 전 세계적으로 퍼지던 시기다. 그 와중에 우리는 나라를 왜놈들에게 잃어 더욱 혼란스러운 시대다. 당시의 주적은 나라를 잃은 입장에서 일본일 수밖에 없다. 항저우의 임시정부 거처를 가보고 참 초라한 모습에 여러 생각을 갖게 한다. 상해 프랑스 자치구에서 있던 임시정부지만 나라를 찾기 위한 노력은 여러 형태로 시도된 것이 사실이다. 

 

 서로군정서, 북로군정서의 무력투쟁은 독립운동의 한 부분이 틀림없다. 다만 지금도 철 지난 사장투쟁에서 보면 우리가 말하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독립투쟁사의 한 축을 담당했다는 사실은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신흥무관학교를 만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역사란 그 시대의 눈으로 보고, 현재 그 교훈을 어떻게 사용할까의 문제다. 

 

 또 다른 사실은 독립운동을 하던 조선의용군의 많은 사람들이 마오쩌둥과 같이 만리장정을 하고 다시 북한으로 넘어갔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한국전쟁에 참전한 팽덕회는 주적이지만, 그렇게 생사를 같이했던 북한과 중공은 국가대 국가의 의미도 존재하겠지만 목숨을 같이한 전우라는 측면도 존재한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결국 한국전쟁은 독립투쟁을 같이 하였지만 사상적 차이점을 같은 독립군 간의 전쟁이라 해도 무방한 일이 아닐까?

 

 그런데 철 지난 빨갱이 논쟁을 하며 흉상을 치운다니 그 근간에 임시정부 돈이나 해 먹고 탄핵까지 당한 이승만, 빨갱이 논쟁에서 전향을 넘어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는 뉴라이트가 근간에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식민시대에 경제적 성장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있다. 그럼 사회가 퇴보하는 것이 발생해야 식민지인가? 중요한 것은 사회가 발전한 경제적 부의 가치가 어디로 갔는가? 일본이 철로를 까는 투자가 현재의 대한민국이 되라고 한 일인가? 그 투자와 끌려가 부역한 노동력의 비율은 어떠한가? 이를 통해서 이익을 획득한 것은 누구인가? 이런 나라와 역사를 되찾는 근원적 문제를 회피하고 역적의 사고관이 참 개탄스럽다.

 

 차라리 한국전쟁 당시 전부대가 몰살당해도 혼자 도망간 중장을 역사의 교훈으로 흉상을 세워야 할까? 북진 중이니 걱정 말라고 해놓고 다리 끊고 도망간 이승만을 역사의 죄인으로 흉상을 만들어 자손만대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까? 

 

 어디나 홍위병 같은 자들이 더 잔인하고 지랄 맞다. 한국사회에 토착왜구란 말이 없어지지 않는 이유가 존재하는 것이다. 현상에는 그에 따르는 이유가 존재한다. 

 

 일본을 보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처음 대외 전쟁을 일으킨 셈이다. 천민에서 태합(귀족은 아님)까지 오르고 한 일이다. 그리고 메이지 유신이 일어난 조슈 번, 싸스마 번은 이 잔당들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 메이지 유신은 일종의 쿠데타라고도 할 수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처럼 전국을 통일한 것처럼 이 무리들의 뿌리들이 근대에 이르어 정한론이니 이런 만행을 다시 한번 저지른 것이라 해도 무방한다. 그들의 뿌리엔 천민이 높은 자리에 올랐으나 족보가 없는 것을 탓하는 듯한 자격지심이 원동력이 아닌가 한다. 그런 사고가 확장되면 퇴보된 문명에서 한반도에서 이어주는 문명의 찌그러기를 받아먹고살던 왜놈들이 서구개방으로 급격한 발전 후 과거를 지우기 위한 또 다른 시도라고도 생각될 때가 있다. 하여튼 우리의 역사 속에 거지 같은 왜놈들은 삼국시대에도 고려시대에도 지금까지 암처럼 도둑질을 일삼는 것을 그치지 않는다. 

 

 리틀보이와 팻맨을 떼려 맞은 왜놈들은 어쩌면 도른 짓을 그치지 않는 것에 대한 자유민주주의의 응징이라고 할 수 있다. 탈아입구 같은 개소리를 하며, 우리는 아시아가 아니라는 자기의 과거와 정체성을 부인하는 족속이 제정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다 망한 왜놈들이 한국전쟁의 특수로 살아났다. 전쟁배상도 제대로 하지 않고 요리저리 핑계를 대면 반성하지 않는 왜놈들에게 어찌 되었던 돈을 받았다. 경제를 살리기 위한 내부적 수단이 필요한 점도 존재한다. 당시의 한일협정까지의 과정을 보면 그 초안은 정말 잘되어있었다. 마친 제헌헌법이 당시에서 잘 만들어졌던 것과 같다. 하지만 현실과의 타협 속에서 우리의 뜻이 전부 반영되지는 않았지만, 그 당시 이 땅에서 한일협정을 준비하던 사람들이 독립운동가 수준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토착왜구 같은 사람들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이런 우리나라의 논쟁도 복잡한데 왜놈들이 다시 방사능 오염물을 태평양에 무단 폐기하고 있다. 국가를 떠나 인류에 큰 죄를 짓고 있다고 생각한다. 후쿠시마 발전소가 터진 날, CNN으로 뉴스를 보고 일본에 전화를 한 일이 생각난다. 적십자 후원금도 냈다. 그것은 역사적 앙금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자연스러운 감정의 발로다. 하지만 왜놈들은 이런 감사함을 죄로 갚고 있다.

 

 독극물을 죽지 않을 양만큼 매일 먹이면 살인이 아닌가? 미래에 태어나서 살아갈 후손들에게 방사능 샤워나 피폭될 위험에 노출시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다른가? 차라리 전 세계에 구걸을 해서라도 시설대책을 세워야지 아무나 죽든 말든 모르겠다는 식으로 생태계를 파괴하는 일이 정당한가? IAEA 보고서를 운운하면 안전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농담처럼 고질라라도 나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왜 안전하다고 하며 자기들 나라 상수도관에는 연결을 못하나? 지금은 파렴치한 놈들이 여기저기 설레발을 치면 친구, 이웃, 후손의 안전과 위험을 증가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체르노빌 영화를 보면 수많은 광부들이 죽음을 불사하고 방사능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뛰어들어 정리를 한다. 그렇게 40년 가까이가 지났어도 아직 그 근처에 가지를 못한다. 그런데 왜놈들은 물통 채우는 거 빼고 어떤 노력을 했지? 한일협정 때의 기만적 자세를 동일하게 보이며 괜찮다, 아무 일 없다면 이런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이순신 장군이 왜를 대하는 자세에 대해 한 말이 기억난다. 아마 이순신 장군이 지금의 장군이라면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도 남지 않았을까?

 

 일련의 사건들이 얼기설기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런 와중에 변사또 같은 날리면이 돈이 없으니, 돈이 조금 있는 이방 같은 개시다랑 붙어서 누군가를 관노비처럼 부리고 수탈하니 이게 또 다른 colonial eara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게 만들고 있는 사람들은  죄를 짓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자식과 손자와 같은 후손에 대역죄가 아닐까 걱정이다. 아니지 이젠 목숨의 안전도 아리까리 하다. 지금 시대의 안전은 안전할 가능성이지 안전을 보장한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시대를  역사는 어떻게 기억할까? 오늘만 사는 사람들이 아무말이나  하는 법이다.

 

 집에오는 길에 사거리에서 서명운동과 피켓을  사람들이 있다. 이런 일을  적이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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