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 나왔다. 야생의 내음이 물씬 풍기는 사회는 학교보다 기분 좋은 상쾌함과 거친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어 조심스럽기도 했다. 붙어보면 별거도 아닌 사람이 성가실 때도 있고, 조용히 수구리고 있지만 실력이 상상을 초월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쩌면 그때 내겐 세상은 호기심 천국이라도 할 수 있었다. 그 세상에 나와서 회사라는 것을 다니며 "이것이 내가 하고 싶은 것이었을까?"라는 의문이 많았다. 지금도 그런 것 같다.
대부분 "이것을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보단 "이것을 어떻게 빨리 처리하고, 뭐 다른 재미있는 것이 뭐가 있나 찾아볼까?"라는 호기심이 더 많았다. 마치 게임의 스테이지를 넘어가는 듯한 느낌이 많았다. 해외사업팀에서 고객에게 수주를 하는 것도 쉽게 스테이지 미션을 통해서 금화를 받듯 인식하려고 의도적인 생각도 했다. 배경지식과 별개로 내가 일을 접하는 태도였다.
그렇게 해외영업을 하며 오지라퍼답게 제조부서의 생산공정, 생산, 생산기술, 재고관리, 외주업체, 구매팀의 원부자재의 구입, 해외 원자재 구입, 연구소의 제품 기획, 기능 기획, 시장 선행조사, 품질관리팀의 입고검사, 출고검사, 품질보증업무, 사업팀의 시장조사, 고객 발굴, 고객관리, 마케팅, 시장개척 이런 다양한 일에 얼굴을 디밀고 어깨너머로 배우고, 직접 해봤다. 하나만 아는 바보보다 두루 넓게 배우자는 어려서의 생각 때문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고, 웬만큼 몸에 익히면 지겹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벽을 넘어 넘사벽에 갈 자질이 낮은 것일 수 있다.
흘러 흘러 기획조정실 잡부를 하는 임원이 되었다. 임원이란 것이 내 호기심 대상은 아니다. 돌아보면 회사보다 회사 밖에서 더 대우를 받는 아이러니 함이 있다. 일과 일상에서 생기는 관심사가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기업에서 다양한 내 호기심 천국의 결과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좋은 일도 있지만 해당 업무의 전문성은 해당부서가 최고다. 그들과의 격차는 지식의 입력을 통해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그 일을 하고 이유인 것이다. 경험과 지식은 그들의 일을 아주 조금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뿐이다. 나도 문제가 있다. 내가 왜 이일을 하고 있지?라는 부분이다. 잡부일을 하는 이유는 글쎄... 내가 하고 싶어서 하던 것은 아니지만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해볼 만하다고 생각해서다. 함께 가고자 하는 방향성에 부합하도록 할 수 있다는 근자감 때문일지 모르겠다. 미래는 알 수 없다. 단지 그 결과를 상상하고 그에 가깝도록 노력할 뿐이다.
내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궁금한 것은 다른 사람들은 어떤 꿈을 갖고, 어떤 삶의 미래를 기대하고 살아갈까?라는 3인칭 관찰자 시점의 시각이 많았다. 그러면 나는 어떤 꿈을 갖고, 어떤 삶의 미래를 기대하고 살아갈까?라고 생각해보면 머릿속이 복잡하기만 하다. 나도 별반 차이가 없다. 세상은 내 생각대로 굴러가지 않고, 내가 매일 쌓아 놓은 삶의 궤적은 어떤 결과를 만들고, 그 결과가 내가 그리던 미래와 항상 같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 인생이다. 그런 점에서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특정한 방향성을 갖고, 이런저런 경험을 축적하기 위한 도전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방향성이 없는 경험은 좋은 추억이 되도록 노력할 뿐이고 추억만 갖고 삶을 살아갈 수는 없다. 몇 년 전 대학생들로부터 꿈을 물어보지 말라는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꿈을 꾸는 시간에 일단 취업이라도 해야하는 불안감을 면전에서 듣고 대단히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세상은 그들이 만든 것은 아니니까.
대신 "나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입니까?"만큼 좋은 질문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정말 해보고 싶은데 못해본 것은 경찰이란 직업이다. 경찰을 하는 친구도 적성에 맞는다고 하지만 결론은 "뛰어난 경찰 또는 밤길에 객사할 경찰"이라는 우문현답을 들었다. 내가 하는 일을 잡부라고 정의한 이유는 '안 하는 일도 없고, 하는 일도 없고'한 상황을 마땅히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기획조정실 산하 팀장이 "요즘 정체성에 혼란이 와요. 내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라는 말을 한다. 힘에 부치다는 말이다. "네가 몇 가지 일을 하는지 세어보니까 그렇지, 그거 세볼 시간에 쉬어라"했더니.. 못됐다고 타박만 들었다.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인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인가?', '내가 할 여건이 되는가?', '그 일의 결과가 내가 바라던 것인가?', '나도 바라던 것인데 내 주변의 사람들도 바라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이와 상관없을 땐 차라리 쉬어야 한다.
직장생활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면 조직의 전문성과 실력을 통해서 한 영역을 차지하는 사람과, 각 조직의 본질을 이해하고 기업의 운영 본질을 이해하고 자신의 자리를 잡아가는 사람 두 부류로 나뉜다는 생각이 많다. 전자가 대 부분의 직장인이고, 후자가 대부분의 리더, 경영자에 가깝다. 그 자리에서 역할을 하지 않는 사람은 사기꾼이다. 그들에겐 명함과 자리가 자신의 정체성을 대체한다. 이런 경박한 사람들은 멀리하는 것이 좋다. 이런 차이의 경계를 직장인들은 분리해서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높고, 후자는 경계를 나누지 않는 경향이 많다. 그 선이 어디에 어떻게 있는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은 사실이다. 있다고 상상할 뿐. 어떤 일을 특정한 조직에서 내가 제일 잘하면 그 일은 내가 지배한다. 자리가 중요한가? 일이 모이면 그 일만 잘한다고 지배할 수 없다. 그 차이가 무엇일까?
"세상은 직장인을 배려하는 시스템을 만든 적이 없다"는 말 인상적이었다. 근대교육이란 산업혁명 후 기계와 함께 일 할 사람들을 만들기 위해서 제도적으로 만들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깜빡했다. 일반적인 교육이란 부려먹기 위한 교육 수준을 지향한다는 말이다. 누가 나를 부려먹으려고 하는가? 그것을 스스로 넘어서야 자신의 환경이 변한다. 나를 지배한다는 말이 단순이 내 마음대로 사지를 움직인다는 일차원적인 접근은 아니다. 자신이 한 분야를 정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해보는 것이 누군가로부터 부림 받지 않고, 하고 싶은 방향으로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인다. 이건 좀 아이러니지만 구조가 그렇다는 생각을 한다. 아니면 다르게 틀을 깰 방법이 있을까? 존재할 수 있지만 인간들이 오랫동안 축적해 만든 시스템을 일반적인 노력으로 거부하는 것은 무모하다. 몇 천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가 아니라면.. 천재라도 꼭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혁명이 대부분 실패하는 이유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한다. 모든 직장인은 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 매번 학습, 역량 개선을 요구받는 환경에서 살고 있다. 그것을 가끔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직장인이란 경기규칙을 잊으면 경기 결과를 잘 도출할 수가 없다. 그 경기장에 가면 관객이 많지만 아무런 힘이 없고, 경기장에서는 심판이 제일 강력하다. 어떻게 심판의 자격을 얻을 수 있지? 자기실현, 성취와 같은 기쁨이 존재하지만 이런 달콤함의 이면에 끊임없이 변화 관리를 해야 하는 불안정한 환경에 노출된 것도 사실이다. 단지 내가 좋은 자리에 앉으면 그것이 수수만년 갈 것 같다고 방심하고 착각할 뿐이다. 그러나 경기장에서 가장 강한 심판이 되는 것도, 심판보다 더 강한 것이 무엇일지 세상을 펼쳐보면 세상엔 꽤 관심과 도전해 볼만한 것이 적지 않다. 나는 누군가 내 생각에 공감을 구한다면 더 좋은 결과를, 누군가 내 생각에 공감하지 않는다면 또 다른 의견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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