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중견기업, 대기업, 외국인 회사의 순서로 자발적인 이직을 해보고 현재도 기업에서 직장인 생활을 하고 있다. 주변 지인들이 "회사랑 참 안맞는데 잘 다닌다"고 놀리다. 내가 해보고 싶었던 것을 경험해 본 것이지만, 이 과정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접하는 경험과 정보가 생겼다.
스스로 조금 변해가고 있지만 회사를 다니며 "그래 나 집에 보내면 누가 고생일까?"라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가끔 어르신들이 업무 중요성을 위해서 "너 이거 이번에 잘 안하면 가만 안둘꺼야?"라고 농담을 하시면 "짤라요~~ 짤라~~"라고 입방정을 떨기도 한다.어차피 규칙내에서 내맘대로 일하는 것 아닌가? 나는 법률이 지정한바에 따라서 노동력을 제공하고 적정한 대가를(희망은 공정한 대가) 받는 계약관계를 잘 이해하고 있다. 회사가 해고를 할 수 있듯, 나도 회사를 내 삶에서 해고할 수 있다. 사직서에 그렇게 써 본적이 있다. 일을 저질러 본 셈인데 별일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규모에 따라 분류한 다양한 기업을 다녀보면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지는 않다. 의사표현을 잘 못하는 부분, 나에 대한 최소한의 권리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별로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사회적 환경과 문화적으로 그렇다. 우리나라는 노동조합을 만든다면 상당수의 대표이사님들이 '사업을 접으면 접었지,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안된다'라는 굳건한 의지를 갖은 분들이 많다. 이젠 흙을 넣어서라도 점진적인 제도개선을 이루고, 사용자들은 노동유연성을 얻어가야 하는 상황에 다다랐다. 사회적 법률과 제도는 가장 낮은 수준의 약속이다. 이를 아름아름 뭉게고만 있을 수 없다. 본인은 그러면서 본인들의 자식이 피해를 볼때 "세상 다 그런거야"라고 호기롭게 말할 사용자가 얼마나될까? 세상 울트라 갑질을 해도, 전 직원이 같은 날 퇴사하면 그 회사도 망한다.
"우리나라 중소기업과 대기업을 비교하면, 중소기업 사장이 법을 훨씬 더 안지킨다"라는 말을 중소기업 사장님에게서 들을 적이 있다. 내 경험상으로도 그렇다. 작게 자기 용돈인지 회사돈인지 잘 구분이 안된다. 규모가 작을 수록 좋은게 좋은걸로 유야무야가 되지만 사용자도 근로자도 서로 법을 잘 모른다. 중간 규모가 되도 근로자들은 제도와 법을 잘 모르고, 규모에 따른 제도적 의무사항으로 사용자는 정보를 더 많이 알 수 밖에 없다. 안 지키면 혼나기 때문이다. 대기업은 제도를 준수하지만, 법을 활용하거나 법을 회피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또 그만큼 법률이 요구하는 의무사항을 지킨다.
내가 의문이 든것은 왜 우리나라는 예전에는 실업계, 지금은 특성화 고등학교 같은 것은 만들어 졸업 후 취업을 유도하는데 '고등학생 정규과목 또는 지정수업으로 근로기준법을 가르치지 않는가?'이다. 대학생들이 취업 전쟁과 높은 실업률로 고생한다는데 4학년 학생들에게 근로기준법을 가르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해외는 고등학교부터 배우는 곳들이 많다. 자식 공부시킬 걱정만하지 공부해서 법률이 보장한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며 남의 회사에서 일하기를 바라는 것인가? 상식적으로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나라에 사장님이 많은지 근로자와 노동자가 많은지 상식이 없다.
기본적으로 근로기준법이란 말에 노동과 근로의 신성함은 없고, 4-50년 전 수출역군, 산업성장의 이름하에 중용된 사용자 중심의 사고관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많이 개선되고 말로는 좋아지지만 아직도 제도 실행에서는 이익의 분배권이란 측면에서 어렵다. 노인 양반들이 빨갱이를 갖다 붙이는 것은 레토릭에 불과하다. 만약 빨갱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자신의 자식이 부당한 처우와 해고를 받았다면 당연히 근로기준법과 노동법률을 들먹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간단한 노동계약, 취업규칙, 부당한 처우에 대한 구제조치는 반드시 고등학생부터 가르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민등록증 나오면 투표권도 줘야 더 빨리 개선될 것이다. 어린 아이도 뭐가 옳은지, 뭐가 좋은지는 안다. 사실 이 책에서 언급된 간단한 사례와 최소한의 근로조건 확인 가이드는 직장이란 경기장의 경기 규칙이다. 경기규칙도 안 알려주고 젊은 청춘에게 시합을 하라는 것은 앞선 세대에게 야비하고 편파적인 경기 운영방식이란 비판도 가능하다고 본다. 기업내 사용자 뿐만 아니라 고위 직책, 직급자들도 이해관계에 따른 행동을 한다고 볼 때 더 많은 사람들이 인지해야 사회적 기준점이 올라간다. 이런 이해관계가 생기면 편향이 발생함으로 편향이 없는 고등학생부터 자신들이 보호받아야 할 권리를 잘 알려주어야 한다. 우리집 자식도 남의 회사가고, 남의 집 귀한 자신도 우리회사에 온다.
세상을 살다보면 이런 제도와 규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체불임금 안주고 야반도주를 하고 변호사 선임하고 자, 직원들 퇴직금을 빼앗는 자, 폭언과 협박뿐만 아니라 야근을 월급 주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자, 직원들에게 밥먹자고 하고 나서 직원 회사카드로 결제하라고 하더니 회사돈을 맘대로 쓴다고 해고하는 자, 세상에서 보고 듣고 하는 이야기를 모아보면 인간 말종들 참 많다.
없어서 무지해서 그런 사람들도 있지만, 돈이란 욕망, 권력이라는 욕망을 뒤집어 쓴 홍위병까지 세상엔 별의별 잡종들이 많다. 근로자들도 다양한 사고뭉치들이 많다. 이런 이유로 최악의 경우에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서 법률이 존재한다. 법률보다는 법률의 존재와 인식의 기준선을 올리는 것이 필요하고 이 측면에서 가볍게 근로기준법과 관련 법률을 다루는 책들은 필요하다. 규칙내에서 협의하고 조율하는 문화가 가장 중요하다.
나는 사람도 아나바다 운동의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처럼 변하지 않는 대상도 없지만 또 변하면 이처럼 신기방기한 결과를 내는 대상도 없다. 기업에서 여러 이유로 구조조정도 하고 해고도 하고, 채용도 하는 과정을 경험했다. 이 과정에서 부당한 생각이 들때 대해서 근로기준법을 찾아 본 적이 있다. 천박한 법은 꼭 사용하기 위한 것은 아니지만 어떤 상황은 법 외에는 적용할 기준이 없다. 그것이 경기규칙이자 기준이기 때문이다. 상황의 편차에 따른 행동을 하더라도 되돌아 올 회귀점을 사용자, 노동자, 근로자 모두 인지해야 한다. 그래야 축구장에 야구배트를 휘두르는 일이 없다. 나도 젊은 직원들에게 근로기준법을 읽어 봤냐고 종종 물어본다. 기준을 안다는 것은 해야할 것과 하지 말아야할 것을 인식하는 시작이다. 노무사, 변호사를 찾아가는 일이 불가피할 수 있지만, 그 이전에 자신의 권리와 책임을 잘 이해하는 것은 개인으로도 사회적으로 필요한 요구사항이다. 특히 생계와 관련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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