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미셸인가 미셸의 오바마인가? 이런 호기심을 갖고 읽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는 정치와 이면에서는 다양한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의 "아버지의 꿈"이란 책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자서전이란 언제 써야하는가?는 재미있는 질문이 될 수 있다.
책 속의 Becoming me, Becoming us, Becoming more로 구분된 챕터를 보고 조금 촌스럽다고 생각했다. 어려서의 이야기를 시간의 순서에 따라서 정확하고 세밀하게 기억하는 이야기를 읽으면 거리감도 생긴다. 퍼스트레이디 이후의 기록은 다양한 매체에 남는다. 모든 사람이 어려서 인상적인 기억을 갖지만 아주 많은 기억을 세세하게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기억을 할 수 있는 것은 또 그녀가 살아온 환경 때문인것 같다. 이런 환경에서 가꿔진 성품이 어쩌면 환하게 웃는 오바마와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게 된다.
정치적 에피소드를 기대했던 사실과 달리 미셸이란 사람의 삶, 생각, 사랑, 가족,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이야기에 충실하다. 나는 잘 이해할 수 없지만 색으로 구분되는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사실, 그 차이가 구분과 차별의 여건이 되는 사회의 어려움을 잘 이해하기 어렵다. 미국에 출장가면 흑인도 동양인을 무시한다. 영국이나 두바이에 가면 인도인보다 동양인을 더 무시한다. 이런 문화적인 체험을 통해서 어렴풋이 상상할 뿐이다. 그 환경에서 매일을 살아간다는 것은 두배를 잘해도 절반정도 인정받는다는 구절로 표현해도 어렴풋할 수 밖에 없다. 그런 환경에서도 사랑의 생명을 존중하고, 더 많은 사람들의 인권, 안전을 위한 생각을 공감하고 지지하고 실행하는 부분은 존중받을 가치가 충분하다. 사회적 여건을 이해하고 이를 극복하고 권력의 정점까지 이동한 최초의 흑인 퍼스트레이디에겐 하나의 압박, 책임감, 한명의 여성이 감내해야할 가족등 다양한 과제가 있다. 아이비 리그를 나온 지식을 소화할 능력보다 지혜롭게 살아가는 한명의 여성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퍼스트레이디를 사이드카로 표현하는 글을 통해서 얼마나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사고관을 갖은 사람인지 생각해 본다. 유머와 위트가 있는 표현이다. 그녀의 말처럼 아직도 퍼스트레이디는 상징적인 의미의 테두리에 머무른다. 권한과 직책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오바마의 역할에 따른 부수적인 존재로 생각될 수 있지만 어느 나라에서나 퍼스트레이디, 영부인, 요즘은 여사라는 표현을 쓰지만..어째든 법적인 역할이 아니라 감성적인 상징성을 갖는다.
어떤 과장이나 자랑보다 미셸이란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바라본 것을 사람, 흑인, 엄마, 남편, 정치인의 아내라는 다양한 입장에서 솔직하게 구술했다. 그래서 조금 지루한 감도 있다. 조선시대의 계축일기가 주인공인듯 주인공을 바라보는 관점과 바라보는 이의 심경을 그리듯, 미셸도 역사에 오래 기록될 오바마라는 역사의 주인공을 아주 가까이에서 바라보며 이야기하지만 그 이야기를 자신의 언어와 생각으로 펼치고 있다. 그것이 그녀만의 가치를 만든다.
오바마케어를 할 때 미국은 한국의 잘된 의료보험을 베끼는데, 한국은 미국의 의료보험 체계를 베낀다는 한탄의 소리를 미국에서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다르지만 오묘한 트럼프가 이끄는 미국은 또 다르다.
오바마 부부도 전례없는 대공항의 시기를 어려운 자리에서 리더쉽을 갖고 지내왔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오래 기억될 것이다. 오바마의 그늘이 아니라 또 미셸이란 사람도 자신의 역할을 통해서 좋은 삶을 살아왔고 또 그렇게 살아갈 것을 기대한다. 이런 사람들을 통해 미국은 좀더 평등하고 좋은 나라가 되는 도전을 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