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을 잘 안 보고 산지 꽤 오래됐다. 특정 방송을 찾아서 보지 않는다. 최근에 찾아서 본 방송은 복면가왕에 나왔던 "동방불패"가 유일하다. 내게 음악은 어려서는 따라 부르고, 지금은 흥얼거리거나 마음의 상태에 따라서 듣는 정도다. 전화기에 2천 곡 정도가 들어있는 것 같다.
학교란 곳에 가기 전에는 송창식의 "왜 불러"를 자주 따라 부르고, 국민학교 졸업 즈음엔 땐 김수철, 졸업할 땐 마이클 잭슨의 "빌리진", 본 조비 같은 팝송도 듣기 시작했다. 아마 80년대부터 90년대 중반까지의 노래는 상당히 많이 아는 편이란 생각이 든다. 팝, 유로댄스, 락, 메틀 등 다양하 노래를 듣다 지금은 재즈, 클래식, 뉴에이지, 가요, 어쩌다 국악 등 장르를 가르지 않고 그때그때 듣지는 않는다.
그런데 주현미의 "추억으로 가는 당신"이란 책을 보면서 어렸을 때가 생각났다. 그날 아침부터 하루 종일 연분홍 치마는 아니지만 엄마 치맛자락을 붙잡고 늘어져서 전과만큼 두꺼운 "보물섬"이란 만화책을 얻었다. 대청마루에서 만화를 엎드려 보고, 엄마는 청소를 하셨다. 전축에서는 쌍쌍파티가 신나게 돌아가기 시작했던 그 어린 시절의 일요일이었다. 왠지 그 시간은 사진처럼 선명하다. 그렇게 듣기 시작한 쌍쌍파티 1집부터 5집까지 LP판으로 집에 있었던 기억이 난다. 쌍쌍파티가 기억나는 이유는 중후한 남자의 목소리, 다시 들어봐도 맛깔스럽고 기교과 넘치는 모르는 여가의 목소리에 점점 익숙해져 갔기 때문이다. 주현미가 말하는 길보드 아저씨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는 일화가 재미있다. 조금은 경박해 보이기도 하는 전자악기 사운드와 리듬이 흥을 돋운다. 그러나 남녀의 목소리가 압도하지 않았다면 쌍쌍파티는 그저 그런 앨범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학교 때에 가서 그 가수가 '비 내리는 영동교'로 처음 봤다. 주현미 목소리는 내가 어려서 보던 이미자, 김연자와는 다르다. 사실 이미자, 주현미의 노래는 보통 실력으로 따라 부르기도 힘들다. 아직도 우리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가수 중에 상위권이다.
책을 펼쳐서 읽기 시작하며, 주현미 작가에 대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글에 사용된 말의 뜻을 확실이 한다. 멜로디와 가사로 승부하던 시절에 정확한 가사는 감성을 전하기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마치 혼심을 다해서 노래하듯, 말을 정확히 하여 그 뜻이 정확하게 전달되도록 노력하는 정성이 곁들여 있다. 그 노래를 부른 가수의 인연과 추억, 역사와 소개를 정리해서 돕는다. 이런 배경 지식은 그 노래를 더 잘 기억하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처녀 뱃사공'에 대한 그녀의 설명이 참 다가온다. 가수들은 공연을 위해서 여행이라기보다 이동을 많이 한다. 여행은 낯선 곳으로의 이동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주변을 관찰하고 새로운 경험을 하는 토대가 된다. 글을 통해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에서 그 노래를 해석하는 사람의 감성과 해석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의 배경에 대한 이야기, 역사 등 다양한 이야기가 노랫말을 시처럼 읽으며 한 번 더 생각하게 했다는 점에서 무대만큼 다양하고 새로운 시도를 함께 했다고 생각한다. 만약 각 장에 오선지에 그려진 악보가 곁들여졌다면 매력이 확실하게 낮아졌을 듯하다. 각 장의 시작에 그려진 이쁜 수채화도 맘에 든다.
가장 좋은 점이라면 나는 가사에 대한 해석이다. 예전 노래는 시를 노래를 만든 경우가 많다. 또 가사를 시 쓰듯 했다. 노래의 가장 큰 힘은 작곡이지만 가요에서는 작사도 전체의 테마를 확정하기 때문에 강력하다. 사람들의 희로애락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와 감성을 이렇게 함께 담는다. 가수나 연주가가 똑같은 노래를 똑같은 악보를 보고 불러고 조금씩 느낌이 다른 것은 해석 차이라고 생각한다. 클래식에서는 이렇게 노래의 배경, 작곡가, 연주가의 배경, 에피소드에 자신의 느낌과 해석을 통해서 클래식 저변을 넓히기 위한 책을 만든다.
가요는 없을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궁금해서 도서 검색을 해보면 가요에 대해서는 클래식과 같은 책이 없다. 잘해야 악보나 가요의 역사와 같은 딱딱한 책들만 있다. 그렇다면 2020년 주현미 작가의 "추억으로 가는 당신"을 기점으로 일반인을 위한 가요의 역사와 해설을 곁들인 트로트 입문서가 시작되었다고 봐도 괜찮을까? 더 많은 가수들이 이렇게 가요에 대한 해설과 느낌을 함께 책으로 만드는 것도 꽤 의미 있는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기록이 방송으로 남지만 책으로 엮어도 괜찮지 않을까?
지금은 멜론, 벅스의 금주의 최신가요를 듣는다면 30년 전에는 300-500원 정도의 포켓 가요, 포켓 팝송이 유행했었다. 한글로 쓰인 팝송 가사를 따라 부르고, 악보를 보며 기타를 치거나 피아노 악보를 팔던 시절이었다. 노래를 소비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음악은 사람들의 삶 속에 함께 했다. 장르가 트로트, 전통가요의 분야를 시대에 따라 구분한 가요 해석에 관한 유일한 책이란 생각이 든다. 가요는 시대의 분위기에 편승하기도 하고, 시대의 분위기를 반영하기도 한다. 전통가요의 가사를 들어보면 고상하기보단 일상의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시처럼 풀어나간다. 나이가 들수록 트로트가 매력적인 것은 그런 이유가 아닐까 한다. 요즘의 노래는 시보단 일상적인 언어들과 상황의 표현이 리듬만큼 절묘하다. 그것도 표현의 방식이 조금씩 변해가는 세상의 변화를 품는다고 생각한다. 요즘 시대에서 보면 궁상떤다고 할 수 있지만 조금은 낭만이 있던 시절도 나는 괜찮다는 생각을 한다.
어려서 집안 어르신들이 즐겨 듣던 트로트, 이 책을 통해서 소개되는 50곡이 안 되는 노래 중에 상당히 많은 부분을 내가 안다는 것이 신기하다. 헷갈리는 노래는 찾아보기도 했다. 책을 읽는 내내 쌍쌍파티를 유튜브를 통해서 1~5집까지 다시 들어보는 좋은 시간이 됐다. 책의 QR코드보다 주현미 tv에 가서 노래도 들어보게 된다. 올해 김난도 교수가 뉴트로란 새로운 복고시대를 예상했는데 그 중심에 트로트가 있다. 레트로를 묶어서 만든 신조어인데 트로트가 더 잘 어울린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EDXalKckJ-JqVCjusmHm3g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말하는 화양연화처럼 가요의 역사에서 리듬과 비트 중심으로 흐르는 지금의 시대가 있는 것은 멜로디와 시가 어울린 노래의 시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은 그렇게 변하고 다시 뉴 트로트의 시대처럼 새롭게 순환한다.
책을 읽는 소감을 적으며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 주현미의 '목포의 눈물'을 들어보면 참 색이 다르다. 진성, 가성, 비음 등 발성의 종류, 음의 폭, 성량의 풍부함도 가수마다 다르다. 노래는 십 대부터 30전에 듣던 노래가 가장 많이 남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추억이 있는 노래가 훨씬 오래 기억된다. 트로트는 그런 점에서 내게 또 다른 부분이 아닐까 한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서~'로 시작하는'봄날이 간다'를 주현미의 간드러진 목소리로 들으며 여름을 맞이하는 저녁이다. Youtube에서 채널을 구독했으니 종종 듣게 될 것 같다. 그래도 콘서트에서 한 번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노래는 콘서트의 느낌과 좋은 오디오 장비로 듣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그런 것이 또 감성 아닐까?
#주현미 #뉴트로 #트로트 #전통가요 #화양연화 #추억 #음악 #가요 #리뷰어클럽 #yes24 #khori
주현미 저/이반석 정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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