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열풍으로 온 동네가 어수선한 가운데 코구녕에 바람이라도 좀 넣자고 찾은 영화관이다. 관객은 다 더해도 10명이 조금 넘는다. 어떻게 자리들을 예약했는데 모두들 앞, 뒤, 좌, 우에 멀치감치 자리들을 잡았다. 나는 항상 앉는 맨 뒷자리 가운데를 골랐다. 일찍 도착한 극장에 앉으니 졸음이 오기 시작한다.
첫 장면 "돈"으로 시작되는 타이틀의 배경이 무엇일까 궁금증이 생긴다. 조금씩 변하는 검정 배경이 이상하게 거슬린다. 하나의 이야기가 옴니버스처럼 주인공에 따라 전개된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는 처음부터 하나로 묶여있다. 이런 구상과 전개가 사람들이 계속 몰입하게 한다. 자세를 고쳐 앉았다.
돈은 인간의 욕망을 나타낸다. 모든 사람의 욕망은 10억이란 돈의 결과로 함축되어 있다. 10억이 여기서 저기로, 또다시 어딘가로 움직이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돈을 좇는 사람들, 그 사람을 쫒는 것인지 돈을 좇는 또 다른 사람들이 나온다. 영화를 보고 찾아보니 일본 작가의 원작이 있다. 인간이 궁지에 몰리면 선택하는 동물적 감각, 이성이란 도구를 통해서 만드는 모략의 밑바닥을 거침없이 그려냈다. 더 인기가 있을 법한데 50만이 조금 넘는 흥행 성적이 아쉽다. 원래는 포스터가 인상적이었다. 아이가 보고 와서 자꾸 이야기를 해서 봤는데 좋은 선택이었다.
정우성이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겁도 많고, 그렇다고 머리가 나쁜 것도 아니다. 행정관이라는 직장을 갖고 있지만, 성실하다고 볼 수 없다. 최연희에게 빚보증을 서고 사채업자 박사장에게 굽신거리는 모습, 형사에게 밥 사주고 우산까지 양보하는 호구에 가깝다. 호구는 역시 호구다. 10억을 거의 다 잡은 승리의 문턱에서 좌절한다. 정우성이기 때문에 시선이 가고, 정우성이기 때문에 시선이 멀어진다. 호구라고 하기에는 선입견이 너무 크다.
미란 역의 신현빈은 초보다. 비록 빚을 갚기 위해서 술집에 나가고, 남편의 구타로 힘든 삶을 살지만 초보는 역시 초보다. 술집에서 만난 진상 진태를 통해서 삶의 일탈을 꿈꾸었는지 그렇지 않은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초보가 또 다른 초보를 만났다. 큰돈을 노리고 있는 미란과 미란에 대해 순수한 마음이 서로의 욕망을 위해서 합쳐진다. 그러나 초보는 실수가 있고, 실수는 다른 실수를 만든다.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 다시 저 깊은 생존의 욕망을 위해서 다시 실수를 범한다. 그때 미란이 전문가를 만난다. 초보는 전문가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내 손에 들어온 10억은 잠시 초보의 손을 거쳐갈 뿐이다. 전문가의 달콤한 한 마디 "한 번이 힘들지, 두 번은 어렵지 않아'라는 그 말, 나도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욕망은 현실의 수준과 다르다. 그것이 문제다.
박 사장 역의 정만식은 배역, 대사, 행동이 실제 같다. 그만큼 연기를 기가 막히게 잘했다. 돈독이 오른 사채업자, 순수한 돈에 대한 애착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애착을 달성하기 위해서 어떠한 기준도 없다. 그도 전문가다. 그러나 그가 거의 마지막에 중도 탈락하는 이유는 방심 아니 남자이기 때문은 아닐까? 여자였다면 훨씬 더 철저하고 집요하게 승리를 거머쥘 수도 있었다. 그에게는 칼만 잡으면 공격적으로 변하는 '메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욕망이 없다. 칼을 잡으면 공격적이다. 이것이 욕망일까? 그렇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거의 대사가 없는 메기 역의 배진웅은 그래서 인상적이다. 아니 너무 자연스럽다. 마지막 씬의 모습을 보면 섬뜩하지만 그렇다. 많은 영화에 나왔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영화를 통해서 좀 더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중만 역의 배성우는 착하다. 그리고 그가 가장 먼저 10억을 손에 쥔다. 그가 일하는 가보호텔이 인상적이다. 잘 아는 평택의 호텔이기 때문이다. 원샷으로 찍은 호텔의 모습이 나올 때마다 웃음이 난다. 양아치 같은 사우나 지배인, 음료수를 틈나면 먹는 동료, 자칭 그래도 가장 성실하게 일하는 직원이다. 치매의 어미니와 티격태격하고, 그런 어머니는 어찌 되었던 잘 모시는 부인과 대학생 딸을 갖고 있는 가장이다. 그 10억을 지키려다 다리미로 뒤통수를 호되게 맞는다. 그렇지만 그 덕에 목숨을 지켰다. 잃어버린 10억과 불타버린 집을 보며 망연자실할 때 엄마 윤여정이 말한다. "다 큰 애가 울면 안 된다", 이 대사 때문에 한참을 웃었다. 묘하게 이 대사가 치매 할머니의 말이 아니라 여러 가지 여운을 임팩트 있게 준다. 왜 울면 안 되지? 어른이라서? 아니면 원래 내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러나 동양의 권선징악처럼 우여곡절 끝에 첫 장면에 시작한 가방은 최종 어부지리 승자 중만이 된다.
최연희 역의 전도연은 더할 나위가 없다. 순수한 듯, 요염한 듯, 지능적이고, 빠르고, 행동중심적이다. 태영에게 빚을 넘기고, 술집 사장을 한다. 싸대기를 올리는 손님에겐 "니가 먼저 떼렸다"라는 엄중 경고와 함께 맥주병을 눈 깜짝할 사이에 휘두른다. 쿨하게 "치워"라는 모습은 아직 그녀의 내면에 잠든 거인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 수준이다. 미란도 그녀와 연결된다. 천천히 미끼를 덮석 문 미끼는 먹이를 들고 온다. 토사구팽처럼 임무를 완수가 개는 솥에 삶는다. "어머 일어났어?"라는 대사가 소름 끼친다. 박사장도 그녀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돈을 한 번 떼이지 두 번 떼이냐고 했는데, 결국 한 번만 떼였다. 대신 목숨을 내놨다. 강력한 포식자다. 그러나 그녀도 최후의 승자가 되지 못한다. 지능적이고, 인면수심의 멘탈을 갖고 있지만 다 잡은 10억은 쓰지도 못한다. 태영에게 돌아온 그녀의 모습, 형사인지 형사가 아닌지 이상한 윤제문까지 순간순간 감당할 수 없는 판단의 소유자인 연희는 정말 무섭다. 만약 연희가 남자라면 그 역량은 최소한 절반으로 경감될 것이다.
원래 싸움은 잃을 것이 없는 사람, 얻으려고 하는 것이 없는 사람과는 하는 것이 아니다. 악착같이 지키려는 것은 더욱 악착같이 뺏으려는 마음을 충동질한다. 그래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다 커서 울지 안으려면 그렇다는 생각을 한다.
#지푸라지기라도잡고싶은짐승들 #전도연 #정만식 #정우성 # #한국영화 #kh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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