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좋은 영화는 좋은 책 한편과 같고, 재미있는 영화는 활력소가 된다. 시간은 거침없이 흘러가고, 그 속의 무료함을 달래려는 사람에게 시각, 청각을 자극하는 영화는 그래서 매력적이다. 추운 날씨에 집에서 틈틈이 보는 VOD의 즐거움이 더한다. 편한 옷차림에 늘어진 자세로 보는 르와르 영화라고나 할까?
마동석은 다양한 영화에 출연해왔다. 캘릭터가 다양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다양한 영화에서 자기만의 색을 잘 더해간다고 본다. 어떤 면에서는 장르 불문하고 역할의 제약이 있다는 것은 아쉽다. 그럼에도 잘 어울리는 역할이란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면 재미있다. 최근 출연작이 많고 많이 보아왔지만 롱런하는 배우가 되길 바란다.
반면 장첸역의 윤계상을 보면서 새롭다. 마치 영웅본색의 주인공을 현대적으로 윤색해 놓은 느낌이다. 역할은 잔인한 중국 조선족 폭력조직의 행동대장이지만, 이렇게 스틸컷으로 나타나는 모습은 충분히 사람들에게 어필된다. 영화상 악의 대상이고, 실제로 이런 사람을 만난다면 꽤 난감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 사진 한 장의 모습은 새삼 다르다. 이럴 때면 인간이 선을 좋아한다기 보단 본인 스스로 매력적이거나 아름답다고 하는 것을 선호한다는 것이 더 옳아 보이기도 한다.
윤계상을 보면 G.O.D라는 배경이 있다. 그것이 그가 연기를 시작하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배우로서 얼마나 오랜 시간을 보냈는지 찾아보면 벌써 14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이는 꽤 놀라운 숫자임에 틀림없다. 내가 처음 본 영화는 풍산개다. 북한을 넘다는 역할이 재미있기도 했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영화도 찍네라는 생각이 많았다. 소수의견을 통해서, 이런 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는 배우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영화는 배우에게도 부담이 있을 수 있다. 최근의 블랙리스트를 보면서 왕이 옳고 그름을 듣는 귀가 있을 때에는 조금 낫겠지만, 귀가 막힌 왕이 있을 때에는 옳고 그름의 구분이 아니라 기분이 좋고 나쁨의 구분이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에겐 잊혀져간 영화들이 지나고 범죄도시로 돌아왔다. 가을이 시작할 즈음 예고편을 보았는데 이제서야 보게 된다.
난 윤계상이나 마동석의 팬은 아니다. 주연을 제외하고 꾀죄죄한 모습의 범죄 집단이 홍콩 르와르 시대의 멋도 없다. 현대의 실용성만 보인다. 하늘에 의와 협이 닿는 건달은 없고, 돈에 집착하는 마귀, 양아치의 모습이 그대로 보인다. 주변 배경의 저렴한 노래방 입간판마저 멋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특정 인물이 부각되기도 하고, 대단히 현실적이다. 스틸컷 한 장이 괜히 멋있어 보일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길에서 마주치면 그냥 불쌍놈이 되시겠다. 그런 불쌍놈의 역할을 윤계상이 잘 연기했다고 본다.
범죄 집단을 일망 타진하는 경찰들의 모습, 범죄를 통해서 암흑 경제의 착취를 보여주는 모습, 조직 폭력배 간의 암흑 시장 주도권과 경제권을 위한 혈투를 보면 동물의 세계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꽤 많은 르아르 장르의 영화 속에서는 의리, 애틋하고 순수한 사랑으로 포장을 하는데 이 영화는 그렇지가 않다. 과장된 면이 분명히 있겠지만 일상생활의 모습 속에서 이 부분을 자세하게 부각했을 뿐이다. 시각적으로 잔인하고, 청각적으로 끊임없이 나오는 욕의 추임새가 거북하기도 하지만 시선을 계속 끌고 간다는 것이다. 중간중간 이어지는 마석도, 황 사장, 전 반장, 경찰서장, 광역수사대 팀장의 유머가 웃음 짓게 한다. 현실에서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중국 공안을 흉내 내는 연기는 꽤 볼만한다.
눈에 띄는 배우라는 왕오역(엄지성)의 어린이다. 특유의 이북 사투리도 아니고 조선족의 억양을 참 자연스럽게 펼쳐낸다. 다른 배우들 중에서는 중국 조폭들의 모습과 억양은 상당히 느낌 있다. 어떻게 이런 사람들을 다 보았지 하는 생각이 든다.
아쉬운 점이라면 영화가 끝나고 올라가는 스크립트 속에 이 영화의 배경과 이야기가 2004년의 한 이야기를 그린다는 것이다. 영화와 현실은 다르다. 그것은 실존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좀 더 아름다운 이야기로 넘쳐야 할 필요가 있다. 르와르 속의 범죄는 되도록 영화라는 틀속에 가둬두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