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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내서 변호인을 봤다. 이 영화는 왜 대선이 일년즈음에 나와 또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영화자체로 본다면 돈을 많이 들였다고 보기도 힘들고, 상식적으로 권선징악적 이야기를 하고 있다. 비록 법이란 이름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엄혹한 시절에 최소한 법의 보호를 위해서 노력했던 송우석이란 변호사의 이야기이다. 그는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대신하여 열변을 통하지만 결국 완벽한 승리를 얻지 못한다. 마친 인간에서 완벽이란 단어는 환상에 불과하며, 이정도만 되어도 괜찮지라는 착각이 들고, 괜찮다고 동의할 만큼 성공해서 돈벌고 또 정의롭게 변해간다.
감독이나 작가는 아마도 누군가를 그리워할지 모르겠다. 나도 누군가에 대한 좋은 마음을 갖고 있지만 더는 그리워하지 않으려고 한다. 영화속의 작은 감상이 아니라 또 우리는 내일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역사 특히 근래의 2-300년내에 돌아가고 싶은 시대가 있는가? 삶은 회귀할 수도 없고, 근 100년의 시대에 반면교사로 보아야 할 일들이 많지만 나는 회귀하고 싶지는 않다.
100년전쯤 이 땅의 사람들은 망국의 한으로 인해 분영될 처참한 시대란 상처를 안고 살아왔다. 그리고 그 시대가 지나 50년전쯤부터는 전쟁과 폭력이 난무하는 야만의 시대를 살아왔다. 처참한 시대에서도 나라를 위해서였고, 야만의 시대에서도 나라를 위해서였다. 그리고 일명 386이라고 득의양양한 50대를 넘은 세대는 이 야만의 시대에 민주주의의 씨앗을 뿌렸다. 그들이 야만의 시대 사람들에게 그토록 탄압받고 억울한 일을 겪으며 이룬 성취기에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보낸것이 불과 30년이다. 그런데 그 뿐인듯해보여서 아쉬울 때가 있다.그렇다고 그들 모두가 모두 송우석과 같은 삶을 바라는 것도 잘못이다. 그저 각자의 시대를 아무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 작은 하나씩을 할 때가 된것이라고 생각한다.
30년이 다시 지나 386이란 세대가 그시절 그들에게 고통을 나눠주던 사람들의 나이가 되었다. 아직도 야만의 시대를 겪어오신 분들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았다. 그들에겐 준법이란 내가 휘두룰때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란 코메디 같은 대사가 생각난다. 우리집 부모님도 안변하신다. 그것 자체가 그들이 살아온 시대의 상처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좀더 유복한 시대에 태어난 그 세대가 세상의 주축이 되었는데, 현재는 뭐랄까...이런 영화자체가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에 물음표를 던져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알아가는 것은 묻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물질문명에 비해 미숙한 사회적 지적 성숙이라는 것, 발묘조장처럼 미숙아가 되버린 것이다..그리고 그게 지나치면 벼는 죽기마련이다.
야만의 시대를 살아온 세대와 민주화의 시대를 살아온 세대가 만들어 온 것에 대한 결과물에 대한 반성이 시급하다는 생각을 한다. 세대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도 이땅에서 하나의 발전을 위해서 다들 노력한 사람들이다. 다만 그들이 힘쓰지 못한 부분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시기라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이고 미래의 문제로 고착화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 책임은 또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짊어 지고 있기 가야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송우석이 집으로 돌아와 자고 있는 가족들을 보는 장면이 있다. 그 마음이 사랑이란 생각을 한다. 영화를 통해서 분풀이나 감정의 해소도 중요하겠지만, 너무 많은 젊은이들이 꿈을 잃어간다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잘 먹고사는게 꿈이라는 어떤 젊은이의 말을 통해 현재가 좌절의 시대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분명 그들의 노력을 요구하지만 더불어 앞선 세대들의 배려와 자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꿈을 만들어 내는 것은 나로부터 사회까지의 신뢰가 재구축 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지금은 서로 못믿고 겉만 자르르한 조금은 등신같지 않은가?
그런데 담배를 한대 물게 되는 이유는 잘 들어주지도 않은 야속함이기도 하다...주변이 좋은 이웃, 친구, 가족들과 서로 부데끼며 살아가던 시절이..다시 곧 오겠지..극복의 시대도 또 오겠지..
30년이 다시 지나 386이란 세대가 그시절 그들에게 고통을 나눠주던 사람들의 나이가 되었다. 아직도 야만의 시대를 겪어오신 분들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았다. 그들에겐 준법이란 내가 휘두룰때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란 코메디 같은 대사가 생각난다. 우리집 부모님도 안변하신다. 그것 자체가 그들이 살아온 시대의 상처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좀더 유복한 시대에 태어난 그 세대가 세상의 주축이 되었는데, 현재는 뭐랄까...이런 영화자체가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에 물음표를 던져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알아가는 것은 묻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물질문명에 비해 미숙한 사회적 지적 성숙이라는 것, 발묘조장처럼 미숙아가 되버린 것이다..그리고 그게 지나치면 벼는 죽기마련이다.
야만의 시대를 살아온 세대와 민주화의 시대를 살아온 세대가 만들어 온 것에 대한 결과물에 대한 반성이 시급하다는 생각을 한다. 세대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도 이땅에서 하나의 발전을 위해서 다들 노력한 사람들이다. 다만 그들이 힘쓰지 못한 부분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시기라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이고 미래의 문제로 고착화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 책임은 또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짊어 지고 있기 가야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송우석이 집으로 돌아와 자고 있는 가족들을 보는 장면이 있다. 그 마음이 사랑이란 생각을 한다. 영화를 통해서 분풀이나 감정의 해소도 중요하겠지만, 너무 많은 젊은이들이 꿈을 잃어간다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잘 먹고사는게 꿈이라는 어떤 젊은이의 말을 통해 현재가 좌절의 시대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분명 그들의 노력을 요구하지만 더불어 앞선 세대들의 배려와 자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꿈을 만들어 내는 것은 나로부터 사회까지의 신뢰가 재구축 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지금은 서로 못믿고 겉만 자르르한 조금은 등신같지 않은가?
그런데 담배를 한대 물게 되는 이유는 잘 들어주지도 않은 야속함이기도 하다...주변이 좋은 이웃, 친구, 가족들과 서로 부데끼며 살아가던 시절이..다시 곧 오겠지..극복의 시대도 또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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