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에 나오는 역린이란 쉽게 보면 왕의 변덕과 기분이다. 왕이 하고자 하는 바와 상황에 따른 그의 상태에 따라 비위 건들지 말고 말하라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내가 하고자 하는 바와 그가 싫어하는 바를 피하고, 그에게 이익이 되는 말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집에 VOD도 역린을 볼 수 있다는 것이 피고한 주말 오후의 휴식인지 모르겠다. 어려서 집 마당에 있던 평상에서 누워자는 것과 같은 휴식의 맛은 아니다. 하필 선택한 영화가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이산, 정조의 이야기다. 화면이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세련된 맛이 있다. 줄거리는 박진감이 더디다.
역사와 일정거리를 유지하는 영화이다 보니 현빈이 정조에 잘 어울리는 지는 잘 모르겠다. 멋진 몸매가 수신을 하는 모습에는 부합하는 듯하다. 혜경궁역의 김성령이 가장 잘 어울리는 듯하고, 정순왕후의 대사엔 무게와 감정이 더디다. 광백역의 조재현이 차라리 역할을 멋드러지게 살려간다고 생각한다.
아비를 죽인 사대부나라의 사대부 (영화속 노론)가 왕의 지위를 군주보단 제1사대부로 간주하고 농락하는 모습은 조금 과장되 보이기도 한다. 더 그렇게 드러나 보이게 하는 바이다. 갑수와 을수란 살수로 키워진 아이들..상책이 되어 지근거리에서 왕을 보필하는 갑수와 정조의 관계와 운명은 비극이기도 하다. 왕의 신변안전이 대단해 보이기도 하지만 선조의 피난길에 백성들이 돌을 던지고, 조선후기 객변과 사변의 시대에 왕실의 경호가 그리 대단했는지는 모르겠다. 기강이 무너진 곳에 규율이 서지 않는 것과 같다.
예기의 한편인 중용 23장을 통해서 다만 정조의 꿈...그 꿈을 상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가 바라는 것이 아비의 원한을 종결하려는 것인지, 무엇이 그에 꿈인지는 영화속에서 너무 옅게 드리워진것은 아닐까한다. 마지막 구선복에서 어검을 던지는 모습이 젊은이들에게 멋들어질지 모르겠지만 좀 과하다. 스토리작가와 감독이 갖은 현실의 불만족을 역사에 빌어 말한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 내용이 모호하다.
스토리가 조금 뻔하게 흘러 감으로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이 아쉽다. 항상 어두움과 밝음이 강조된 영상이 지나쳐보이기도 하고, 마지막 전투씬도 박진감은 그렇다. 지금 읽는 이순신의 두 얼굴을 보고 있어서 기대하게 되는 명량의 재미를 반감할까도 걱정이다..
한낮 시간은 잘 가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