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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잡부(天上雜夫)_ 사업관리 시즌 2 (해외영업 시즌 1) )

새로운 여정의 시작

by Khori(高麗) 2018.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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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s Vegas는 묘한 도시다. 두바이와 같으며 다르다. 두바이는 모던한 고층 마천루와 건조한 일상 사이에 인공의 공허함을 느낀다. 베가스는 비슷하지만 화려한 불빛으로 포장되어 사람을 들뜨게 한다. 엄청난  카지노, 쇼, 전시 등으로 북적이지만 이 곳도 자세히 보면 인공의 공허함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보인다. 무엇인가 허전한 것을 채우기 위해서 모인다.


 작년 11월부터 전혀 호응을 받지 못한 기획을 시작했다. 작년 괜찮은 호텔의 스위트룸에서 진행한 전시를 전시장에서 진행하겠다는 생각이었다. 물량을 확보한다는 미명 하에 한국 기업들은 OEM/ODM 방식의 사업을 선호해왔다. 제조기반의 기업에게 물량은 수익을 만드는 기반임으로 대단히 중요하다. 이런 현실이 기업의 가치는 브랜드에 있다는 이상과 현격한 궤리감을 직면하는 현실이 많은 기업들이 갖고 있는 어려움이다. 

 나는 이 부분을 좀 더 쉽게 설명한다. 한국의 문화에는 "뉘 집 자식이냐?"라는 질문을 통해서 족보 있는 가문을 넘어 뼈대 있는 가문을 선호한다. 고도성장 과정에서 토지 수용으로 갑자기 부유층이 된 사람들을 "벼락부자", "졸부"와 같이 폄하하기도 한다. 사농공상의 문제가 아니라 족보나 가문을 하나의 브랜드도 이해하면 쉽다. 갑자기 부자가 된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 부에 따르는 교양, 성품의 미비함을 논하는 것이다. OEM/ODM을 폄하할 수 없고, 필요하지만 가치 창출이라는 부분에서는 "상놈의 사업"이 될 수밖에 없다. 주인은 주문자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기업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더 높은 책임감, 열정을 갖고 브랜드를 세우는 작업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당장 안되면 점진적으로라도 준비해야 한다. 높은 산에 사람들이 올라 바위에 이름을 새기려는 노력도 기억되기 위함이다. 기억이 되려면 나만의 이름으로 불려야 한다. 


 그렇지만 OEM/ODM 사업을 브랜드로 급격하게 전환하는 것은 많은 부작용이 따른다. 일명 "종의 반란"은 브랜드 주인들의 반발, 제재를 감수해야 한다. 시장과의 거리를 좀 더 좁혀간다는 의미도 있지만, 그만큼 개별 시장의 관습, 현지 제도와 법률의 이해 부족, 경험 부족은 분명 나의 수준을 이해하는 냉정한 과정이 된다. 특히 B2B 형태의 사업에서 준비 없이 시작된 오만한 브랜드는 자연스럽게 퇴보한다. Landing with scratch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그럼에도 브랜드가 걸린 floor open booth는 필요하다. 사업비중, 고객관계를 고려하면 내가 다니는 기업에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운영할 전반적인 역량과 경험은 더 축적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시장의 세대가 바뀌고, 시대의 기술이 바뀌는 것을 목격하지만 업의 본질은 유지되어야 그 영역의 사업이 존속된다. 그 변화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세대에게 내가 종사하는 기업을 알리고, 기술변화에 대응하는 수준을 뽐내며 업의 본질을 유지하며 이 산업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은 OEM/ODM, Brand의 사업형태와 상관없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것은 우리의 본질과 정체성을 시장에 내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목적을 갖고 진행된 기획, 결제의 과정 속에 많은 사람들의 눈총을 받았다. 고객들의 반신반의와 혹시 자신들의 시장을 직접적으로 공격해서 갖고 가려는 의도가 아닌가의 질문도 쇄도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다. 그 과정을 극복하는 일은 지속된 협력 관계속에서 그들이 우리의 목적과 의도를 믿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신뢰를 구축하는 일이다. 누군가를 믿게 하는 일이 마치 기교와 전략, 꾀를 내야 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고객들인 인정하는 믿을 만한 행동이 상호 간의 신뢰를 구축하는 가장 빠른 길이다. 이에 적절한 행동과 약속을 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아직 그럴 준비가 부족하다는 냉철한 인식과 존재감을 시장에 넣어야 하는 다소 미묘하고 어려운 일이다.


 그 과정에서 핵심 고객과 추가 계약을 하고, Board 간의 만찬, CEO 초청 등 좋은 결과가 생겼다. 첫날 이른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걱정된 시선으로 바라보던 과정이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다들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다른 주요 고객들이 3일 내내 booth를 찾아오는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좀 더 좋은 결과로 이동하는데 적절한 판단을 한 셈이다. 심지어 booth가 없는 고객은 아예 우리 회사 booth에 자신의 고객을 데리고 와서 자신이 프레젠테이션을 해서 더욱 재미가 있었다. 중국 전자제품들의 급격한 성장과 가격정책, 정부지원의 파괴력은 살을 에는 듯 날카로웠다. 최근 5년간 중국 제품으로 전환한 고객들도 상당히 많다. 이 전시회를 통해서 그중 일부 고객들이 회귀하는 것은 참 반가운 일이다. 예전 내가 담당하던 시절에 있었던 추억을 서로 이야기하면 새로운 season 2를 만들어보자는 의기투합도 했다. 새로운 잠재고객들의 방문도 많았다.


 전시회가 끝나고 직원들과 The Valley of Fire State Park에 나들이를 갔었다. 노인과 젊은 친구가 끝이 어딘지도 모를 사막의 길을 걸어간다. 언덕 넘에 집이 있을 법하지는 않다. 산보를 가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함께 온 직원들과 협력하는 것에 대한 감사함, 고객들과 공급사로서 동반자적인 모습을 보는듯해 전화기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이번 미국 전시회에 그간 고생한 사람들을 다 데리고 오지 못한 아쉬움이 생긴다. 오늘의 좋은 결과는 하루아침에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최근 2-3년간 유럽, 아시아 시장에서 조금은 부족하지만 floor booth를 차리며 엄청나게 고생을 하며 갈고닦아온 것이다. 그 결과물이 좀 더 구체적으로 발전하고, 성과를 낼 수준이 되었을 때에 미국 전시회에 참여한 것이다. 고객 미팅도 있지만 유럽 전시 경험이 있는 파트장에게 한 번 물어봤다. "다시 3년 전으로 돌아가서 유럽에서 전시회 하겠니?"하고 물어보니 표정만으로도 충분한 답이 된다. 기업의 성과란 특정부서, 특정인의 역량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만, 대부분 누군가 선행하는 사람과 그룹의 기여가 바탕이 된다. 신입 부서원도 들어와 다음 주 회식을 할 때에 미주사업팀은 "그간의 노력에 감사합니다"를, 그가 개고생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을 감당해도 일본, 유럽 사업팀은 "축하합니다"라는 인사를 서로 주고받기를 기대한다. 그들이 고생한 것에 대해 내가 책임이 있으니 한참 그들의 안주가 되어주어야 할 것 같다. 미리 예견한 것은 아니지만 전시 booth 한편에 세겨넣은 "Made in Korea"가 최근 트럼프의 대 중국 강경노선에 따른 이익도 있었다.
 

 그땐 아무도 저 산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몰랐었다. 무책임해 보이기도 하지만 나는 그 방향에서 해가 뜬다는 것을 확신했었다. 조금은 조증 환자, 미친것처럼 보여도 처음 시작한 일이 무엇이 되기 위해서는 그런 몰입이 조금 필요하다. 그럼 몰입은 각자 마음속에 갖는 신념, 신념을 바탕으로 한 용기, 그리고 이에 맞는 행동으로 이루어진다. 너무 지치지 않을 때에 적절한 결과를 찾아야 새로운 동력을 얻는다. 그런 때를 만나게 된 것은 함께 모든 사람들이 똘똘 뭉쳐서 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감사함을 여러 번 되새긴다. 3년간 이곳에서 결실히 생기기까지 고생하고, 역량도 커가는 젊은 동업자들이 좀 더 행복하고 성취감을 느끼는 조직과 기업을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는다.


그렇게 전시 준비, 사전 홍보활동, 사업 전개와 미팅, 설치와 철거 등의 작업을 하며 5개월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다들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왔고, 다시 새로운 고객이 엄청나게 큰 사업제안을 해왔다. NDA에 이름을 세겨넣는 것만으로도 설렌다. 영업은 수주를 하거나 큰 사업을 만드는 것에 도전할 때 아드레날린이 나온다. 처음 걷기 시작할 때 저 언덕 뒤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듯이, 이 제안 뒤에 무엇이 있을지, 우리가 무엇을 만들어갈지를 생각하게 즐겁게 도전해 보는 수밖에 없다. 격무 속에서도 일을 맡은 담당자도 기대가 부풀어 올랐다.


 다음 주에는 다시 비행기를 또 타야 한다. 글로벌 보부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자원빈국, 협소한 시장의 한국기업 해외영업 종사자가 갖고 있는 굴레다. 통일이 되고 내수 시장이 자립경제 규모가 되는 시대를 꿈꿔본다.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2017이 가고 새로운 2018에는 묵은 떼를 벗기는 시대가 되어야 한다. 중국은 빠른 약진에 비해 아직 내가 다니는 기업도, 한국 기업들도 변화해야 한다. 패배가 확실한 백만 대군 방어전이 아니라 새로운 분야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사회, 국가의 발전단계에 따라서 사양화 부분은 쫒아오는 기업에게 넘겨주는 것으로 새로운 분야의 격차를 벌려야 한다. 그것을 못 내려놓고 아등바등 대던 10년의 망상도 하나의 적폐라는 생각이 든다.  좋은 변화의 시점을 만들었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도출해야 하는 꿈을 꾼다. 그 꿈의 절실함 만큼 성취도 달라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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