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출장이 끝나고, 다시 출장을 다녀와서 또 짐을 싸고 있다. 며칠 돌아와서 일 보고 타 본부 회식에 끌려가서 늦게까지 있다 보니 정말 '나는 누군가? 여긴 어딘가?'라는 넋두리가 나온다. 바쁜 게 좋은 일이지만 예민해진다. 사람도 동물이기 때문이다.
먼저 출발한 동료와 이런저런 수담을 나누며 안부도 묻고, 필요하게 있는 것도 묻게 된다. 이런저런 상황과 해결해야 할 과제와 도전해 볼 과제를 정리한다. 간단하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면 편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경력이 차고, 실무 역량은 발로 해도 될 연배가 된 후배 동료들을 위해서 내가 먼저 변할 부분이 있다. 그들이 의사결정력과 판단 역량을 보강해 주는 것이다. 누군가 판단해주면 그것만 하게 되고, 책임의식이 의도지 않게 떨어질 수 있다. 내가 판단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배 또는 상위 직급자는 그런 자기결정이 권력이라고 인식하는 순간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사업을 만들고, 기회를 포착하고 확인하는 것이 목적인데, 자신의 권력을 즐기다 많은 일을 만든다. 그리고 문제가 될 때에는 이런 상황들이 시너지로 문제를 만든다. 잘 될 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그때 묵인되던 문제가 잘 안될 때에는 큰 문제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목표를 중심으로 업무를 대하고, 그 업무를 구성하는 사람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그 균형이 조직을 운영하는 한 가지 중요한 기준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지시를 즐기다 보면 일이 늘어나고 그걸 일일이 지시하다 관리자가 나가떨어진다. 상황판단, 의사결정을 작은 것부터 훈련하지 않은 동료들은 우왕좌왕한다. 옆에서 보면 의사결정 참 쉬워 보인다. 그런데 해외영업 환경에서 마주하는 의사결정의 성공 타율은 쉬워 보이는 만큼 쭉쭉 올라가지 않는다. 세상이 그리 쉬울 리가 없다. 막상 해보면 이것도 괜찮고, 저것도 괜찮고, 이것도 문제고, 저것도 문제다. 당장의 해결이 금년의 해결책이 될 수가 없고, 당장은 죽겠는데 금년을 보면 버텨야 하는 일도 있다. 오늘도 파트장한테 좋은 결정을 해보니 그럼 내 결정대로 하자고 자신감을 갖고 돌아갔다. 오후가 돼서는 내 결정대로 해야 된다더니 나보고 출장을 같이 가잔다. '출장은 DIY로!'라고 말하고 돌아서며 사무실을 나왔다. 그런 고민과 의사결정이 막상 피곤하고 갈등되지만 좋은 결정을 하는 방버은 경험과 학습이다. 작은 실수는 작은 의사결정을 할 때 해봐야 한다. 본인은 머리가 아프겠지만 그렇게 경험을 쌓아야만 다양한 경험의 지혜를 전달하고, 경험하지 않은 사례를 좀 더 꼼꼼하게 살펴볼 안목이 생긴다. 어떨 때는 나도 시시콜콜 이야기를 많이 한다. 하지만 조금씩 줄여가야 한다. 내가 일이 돌아가는 것을 확인하는 동시에 그들이 성장하는 틀을 만들지 않으면 내가 없어도 돌아가는 조직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만큼 조직의 성장도 작아진다.
위임의 범위를 늘려가는 것은 정말 어렵다. 맡기면 쉬울 것 같은데 사람이 자신이 책임을 지는 범위에 있으면 시시콜콜 간섭과 통제를 가하게 된다. 그 균형을 찾아야 한다. 나와 일, 일과 후배 동료, 전체의 균형을 두루 살펴보는 것은 쉽지 않다. 쉽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내 마음을 믿지 못한다. 끊임없는 내 마음과의 투쟁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서로다 어려운 과정을 거치는 것은 그래도 함께 더 좋은 단계로 나아가기 위함이다. 모든 사람이 나와 다르기 때문에 누군 빠르게 나아가고, 누군가는 느리게 나아간다. 그러나 다른 면은 또 그 성취가 다르다. 각자의 장점도 다르기 때문에 그 다양성을 감내하는 것도 나에게는 훈련의 과정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지금 내가 책임지는 조직은 조금씩 턴어라운드를 넘어서 좋은 시그날이 시장으로부터 들어오고 있다. 물들어 올 때 노를 저으라고 한다. 배에 물이 들어오면 퍼올려야 한다. 물을 다 퍼내고, 배를 세우고 노를 저을 때다. 배도 조금씩 커지고 있는다. 다들 정신없지 바빠지고, 좋은 기회가 다가오는데 과거의 방식으로 모든 일을 더 빨리만 하는 무식한 방식은 안된다. 효율과 성과를 내기 위한 방식을 조금씩 수정해가며, 목표 지향점을 유지해야 한다. 사업도 마찬가지다. 물론 사업이 잘 안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배고프면 눈에 뵈는 게 없고, 비굴해지던가 예의가 없어지게 된다. 사업도 다르지 않다. 격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업이 잘 되거나 안되거나는 시스템이 발생하는 오류도 있지만, 그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역할과 책임, 역할에 필요한 역량의 확보, 보완, 성장의 문제다. 모든 직위에는 주어진 책임이 있다. 그 책임만 하는 사람은 유지만 하는 것이고, 주어진 책임을 넘는 성과, 안목, 역량을 키워가는 것은 미래를 준비하는 길이다. 그래서 영업은 잘 되고 준비해야 할 것이 있고, 안되고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