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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잡부(天上雜夫)_ 사업관리 시즌 2 (해외영업 시즌 1) )

문서가 품고 있는 의미

by Khori(高麗) 2018.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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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단기적으로 밤을 지새우며 무엇을 하는 성격이 아니다. 굶주리면 먹고, 졸리면 자야 한다. 과하면 좋은 것이 없다. 준비해서 컨디션을 조절해서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이러한 과도함은 항상 누락, 편향의 문제가 생긴다. 문서도 마찬가지다. 대강 철저히 만든 문서는 고객의 문지방을 넘지 못하고, 너무 상세하고 세세한 문서는 핵심을 정리하는 과정을 거쳐야 고객의 문지방을 넘을 수 있다. 문서란 때와 장소, 시간의 안배를 해야 하는 말과 같다. 그것에 지위에 맞는 품격이 더 해지면 금상첨화다. 


 영업, 시장 개척에 관한 자기 계발서를 보면 '30초 안에 의미 전달을 명확하게 하라', '문서를 한 장에 글자 크기 12에 줄은 한 칸씩 띄워서 하고 싶은 말을 A4 한 장에 다 넣어라'와 같은 이상적인 표현이 있다. 그걸 말하는 사람도 모든 일을 그렇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자기 훈련의 과정을 거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큰 차이가 생긴다.


 어느 회사던 사무실에 들어가면 분위기가 느껴진다. 내가 익숙한 경험과 반복되는 패턴이 자연스럽게 새로운 환경과 비교된다. 잘 정돈된 회사, 식당, 고급스럽게 배치된 인테리어 또는 디자인을 보면서 그 기업과 식당 주인의 안목을 예측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잘 정돈된 회사만큼 기업의 수준도 높다. 내가 20년 전쯤 Yamaha 종합연구소를 보고 깜짝 놀란 것은 흑백 모니터의 영상을 JPEG 이미지로 캡처해내는 장면이 아니다. 책상을 펼치고 가지런히 정리된 각종 부품과 공구가 마치 아키하바라 상점의 진열대보다 훨씬 멋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수준과 한국 기업의 정리 수준을 비교한다면 초등학생과 고등학생의 달리기 수준만큼 격차가 있다. 


 이런 세세한 부분을 떠나 기업의 성과는 기록으로 남는다. 영업 활동은 궁극적으로 회계 기준에 맞게 잘 정돈된 장부로 남는다. 연구 개발의 업적은 제품과 서비스의 형태로 시장으로 진입하지만, 이 성공을 만드는 보이지 않는 모든 기술적 사항과 핵심은 문서로 존재하게 된다. 머리와 몸에 남은 장인도 있다. 하지만 기록은 사람, 조직, 국가의 수준이 낱낱이 기록된 결과물이자 생산성 수준을 가늠하는 바로미터다. 문서를 양산하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사람은 타인의 머리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며, 사람은 유한하기 때문에 그 깨닮음과 앎을 후세에 전달할 방식이 조금 무식해 보이는 기록이란 형태를 제외하고 마땅한 것이 없다. 하드 디스크에 들어간 데이터의 형태던 종이에 기록된 형태에 상관없이 기록의 의미는 동일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산에 이름을 세기고, 여기저기에 낙서를 하는지도 모른다. 


 사람의 역량은 문서로 나타난다. 잘 정돈되고 깨끗한 책상과 귀신이 푸닥거리를 하다 놀라 자빠질 상태의 책상이 사람의 역량과 차이가 있을까?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면 내 경험에서는 반드시 차이가 있다. 못되고 착하고의 성품 문제가 아니라 목표를 추진하고 결과를 창출하는 능력은 그것만으로 판단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둘째로 문서를 기재한 내용과 형태는 반드시 역량과 성품을 동시에 알려준다. 급하게 필요한 정보만을 취득하는 수단이 아니라 천천히 글을 통해서 그 사람의 심경, 상태, 의도를 알 수 있다. 우리는 더 많은 문서 전달을 하면서도 소통이란 문제에 직면한다. 가장 큰 이유는 쓰여 있는 글자는 같지만, 해석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먼저 역량이 표출되는 이유는 아주 단순한다. 인간은 사고하고 사고를 정리하여 생각을 가다듬는다. 그 가다듬은 생각을 글씨로 논리 정연하게 풀어간다. 기업의 보고(내 생각에는 이익과 관련된 정보 전달)는 두괄식으로 하라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으면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찍고 가야 할 곳이 어딘지, 너는 누구인지 나는 어디로 가고 싶은지를 두서없이 써놓게 된다. 생각이 정리된 만큼 사람은 간결해지고, 핵심에 직선으로 다가가게 된다. 간결함이 소통을 증진시킨다.  Easy & Smart라는 디자인도 궁극적으로 simple의 범주안에 있다. 문서가 그 사람이 생각하는 수준, 방향을 내포하는 것이다.


 내가 가장 분노하는 글의 형태는 '거시기해서, 여차저차 아니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런데가 수 차례 반복하고 나서) 그러니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지?'와 같은 글이다. 업의 문서는 시간, 목표, 수행해야 할 사항, 회피해야 할 사항들이 상당히 많이 내포하는 경향이 있다. 차라리 기일을 못 마친다면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려서 일정은 00일까지 조정해 달라. 일정이 생각보다 많이 소요돼서 미안하다"라고 간단히  핵심을 전달하는 것이 빠른 의사결정을 하는 길이다. A4 한 장 분량의 하소연을 읽고 맨 뒤에 "할 수 없다"라는 글을 보면, 시간을 들인 것에 비례하여 사람은 화가 난다. 이런 글을 좋지 않게 보는 이유는 사과의 의도가 명확하게 없고, 내 책임이 아니라는 책임감 부재, 문제는 결국 너의 것이니 나에게 면책을 달라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이런 중언부언에 열 받은 상사가 "예, 아니오로 대답해", "했다는 거야 안 했다는 거야?", "묻는 말에 똑바로 대답해?!"와 같은 격앙된 언사를 부른다. 부족한 후임들을 잘 가르치고 소통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고, 상사들이 어려운 때일수록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그럴 때 상사라면 호흡을 길게 끌고 가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계속 나오는 중언부언을 인간세상에서 박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줄여오라면 글자 폰트를 줄여서 깨알같이 다시 적는다. 피할 수 없는 현실은 그것까지 받아들이는 방법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문서는 기업의 역량 수준을 상징하는 바로미터다. 많은 기업이 프레젠테이션을 한다. 영화 포스터를 방불케 하는 화장술(장표를 이쁘게 만드는 것)이 사람을 현혹하는 얄팍한 기술이다. 핵심을 간파하는 것이 선행되지 않은 것은 천박할 뿐이다. 글로 쓰기는 불편하지만 고급진 음식점과 가기 싫은 음식점을 잘 상상해 보면 알 수 있다. 바가지가 심할수록 색조가 심하고, 정말 좋은 것을 제공하는 곳일 수록 단아하고 간결하다. 어느 분야던 유사한 경향이 높다. 특히 기업을 둘러볼 때 품질, 연구개발의 문서 수준이 그 회사의 수준을 파악하는 가장 큰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문서를 만들기 가장 싫어하고,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스포츠에서 구멍이라고 불리는 선수가 결국 그 팀의 순위를 결정한다. 조직은 아이러니하지만 가장 낮은 수준의 역량에 alignment 된다. 조직이란 개념에서 서로 다르지 않다. ISO 관리규정은 프로세스를 문서화하고, 이 문서화된 실행 과정을 측정하고 feedback 하는 무한루프다. 왜 국제 표준기구는 문서화라는 수단을 프로세스를 정립하는 곳에 사용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매일 대외 커뮤니케이션 위도우인 영업의 문서 능력은 점검되어야 한다. 동시에 더 높은 지위로 가고자 한다면 글쓰기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 글을 쓰는 능력이 아니라 사고력, 생각의 힘에 대한 문제다. 그 결과물이 글쓰기가 되기에 그렇게 표현할 뿐이다. 나이 많은 아저씨들이 학교를 가고, 경영자가 인문학 수업을 듣고 하는 일은 당장 그것을 통해서 결과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렇게 사고하는 훈련, 그런 사고를 타인에게 전파하여 더 큰일을 도모하는 것이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좋은 방향을 찾게 된다.


 그나저나 나도 엄청 큰 사업미팅 문서를 만들고 있다. 여러 걱정이 앞서다보니 쓸데없는 기록을 통해서 내 심정을 토로하게 된다. 


#문서 #글쓰기 #생각의힘 #역량평가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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