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월말은 결산을 한다. 매달을 평가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매달을 살아내는 해외영업은 월말이 항상 즐거운 것은 아니다. 요즘의 경제 상황을 감안하면, 매 분기 공시를 해야 하는 분기 마감, 상반기 마감도 그렇다. 마치 방학 막판의 탐구 생활을 채우고, 방학 숙제를 채우듯 정신없기 일쑤다. 지금은 줄어들었지만 어떨 땐 차라리 한 대 맞는 것이 낫지 피하고 싶을 때도 있다.
해외영업은 보통 짧게는 한 달, 업종에 따라서는 수개월을 선행해서 살아간다. 내가 종사하는 전자 업종도 대략 2개월 전이면 윤곽이 예측되고, 45일 전이면 겐또(검토라는 말이나 어림짐작의 의미)를 떼려 볼 수 있다. 30일 전이면 거의 정확한 숫자가 나온다. 제조 생산의 기일만큼 선행해서 숫자는 확정되고, 그만큼 먼저 준비하고 정리해야 한다. 오랜 기간을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다. 사실 끝이 없는 반복 작업이 돌을 굴려 산을 오르는 신화의 저주(기쁨)와 다름없다.
올해는 작년과 비교하면 동년 대비 꽤 좋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고 맘에 드는 숫자는 아니다. 나도 나이가 들어가고 과거의 올드보이처럼 좋았던 시절과 비교하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이 들 때는 앞으로 어떻게 그려나갈 상황을 예측하고 다시 실행계획, 보완계획을 고민한다. 상반기 사전 실적보고를 하고 난 후 여러 가지 생각을 갖는다.
먼저 지랄 맞게 일을 시킨다고 불만과 푸념도 하고, 되려 잔소리도 하면서 자신들의 몫을 해주는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이다. 내부에서 갑질을 한다는 비판도 하지만 너덜너덜 해질 때까지 시장에 발자국을 남기는 원천인 연구 개발 조직들의 노고가 그렇다. 조직은 공동의 목표와 다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 모여있기 때문이다. 최근 읽고 있는 책에서 사람만이 input대비 output이 다른다는 말을 새삼 느낀다. 이런 이유로 사람이 가장 중요한 자원이다.
이런 노고를 함께 하며, 깔딱 고개라는 넘어 업을 제대로 세우는 것이 목표다. 가끔 이것이 최종 목표 전의 깔닥고개인지, 천 길 낭떠러지로 가는 길인지도 여러 번 생각한다. 그래도 최근에 다시 돌아오는 시장, 고객과 새롭게 도전할 만한 큰 기회들이 생기는 것을 보면 나아진다는 생각을 한다.
어쨌든 마음이 홀가분하다. 아침부터 5번째 여권을 만들려고 길을 나섰다. 오랜만에 친구 얼굴을 잠시 보고, 업체에 들러 협력사 인사도 길을 나선 김에 하게 된다. 은퇴를 한다는 고객사 어르신의 전갈을 듣고 인사를 하려 전화를 하려니 연결이 되지 않는다. 늦은 저녁에는 오랜만에 친구, 선배를 만나서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도 했다. 숫자는 장부에 쓰고 마감하면 그만이지만 사람들은 안녕한지 인사를 하는 것도 또 다른 시간에 따른 적절한 마감이다.
함께 보여서 이익을 도모하면 조직이 되고, 그런 조직에서 특정인들의 이익만을 도모하면 파벌이 된다. 대부분은 함께 한 시간이 축적되어 발생하지만 편향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익보다는 목표에 중심을 갖고 가야 한다. 이렇게 되짚어 보는 시간이 또한 마감이라는 임의의 시간이 주는 의미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다양한 마감 활동과 정리의 시간을 보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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