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선생의 책을 내가 자주 보는 이유는 학자로써의 언어와 대중의 언어가 절묘하게 섞인다.가끔 촘스키란 언어학자보다도 사용하는 언어의 정확한 의미를 찾아가는 저자의 노력과 설명이 이해에 큰 도움이된다. 이도 없다면 분면 반의반도 이해하기 어려울듯하다. 전에 읽은 3분고전과 학자적 해석은 차이가 있지만, 의미의 차이는 적다고 생각한다. 지속적으로 3가지의 텍스트본으로 비교설명하시는걸 보면서 참 다채롭고 때론 어렵고, 쉽고 그렇다. 문득 보다가 바로 잠든 자본론이 왜 어려운가는 선생의 말처럼 인간에 대한 공부가 부족하여 그런듯하다. 무릇 통달하면 듣는이의 수준에 맞게 설명이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나야 듣고보는 수준이라서 남을 가르칠단계가 아니니..ㅎㅎ
지난번 중용때(시기적으로는 이책이 먼저임)처럼 먼저 책의 1/3정도를 큰 그림을 그려주시는데 활용하신다. 인간과 자연, 종교간, 지식과 삶의 화해 또는 조화라는 부분은 21세기가 아니라 인간이 문명이란 것을 발전사키면 왜곡한것을 돌아보는데 가장 중요한 테마가될 수 있을 듯 하다. 아마 너무나 유명한 도덕경에 대한 설명보다도 시대의 과제에 대한 사상가의 의견과 책에대한 설명이 어쩌면 쉽게 접하기어렵다는 면에서 더 의미가 있어보인다.
1권에서는 1-6장까지 설명을 하시고 나머지는 2/3권에 이어진다. 솔직히 2/3권에 대해서 무엇을 쓴다는 생각자체가무모한 일이라 생각한다. 간단하게 이해한바를 그저 2/3권에 이어가면 확인하고 이해해볼 생각이다. 책을 읽으면 그 설명을 듣다보면 일하면서 듣는 것보다 보는게 낫고, 보는것보다 한번 만저보는게 낫고, 만저보는 것보다 느끼는게 낫다는 말은 하지만, 어쩌면 나 스스로가 말이란 틀 속에서 그 존재의 그러함보단 내 생각속에 내맘데로 묶는것이 문제라는 생각을 다시 해보게된다. 영업과 연애가 비슷하다고 이해만 했지, 사람이 사는 순리가 확장되면 세상만물의 순리와 비슷하다는 생각은 안해봤던것 같다. 저자의 설명을 차분히 읽다보면 함이 없다는 것이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해석보단 함이 없으면 안된것도 없다는 말이 더 깊이있게 생각할 부분이 많은 듯하다.
오늘 많이 든 생각은 사람의 말이란 틀, 유형에 자신의 바램, 의지등을 채울것이 아니라 순리와 균형을 위해서 끊임없이 행하는것을 말하는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뉴스거리가 많다는 것이 어쩌면 좋던 나쁘던 정상적인 것은 아니라고 보면 뉴스거리가 안되도, 회사에서 윗사람이 닥달이 없어도, 집에서 잔소리가 없어도, 나라에 대통령이 누군지 관심이 없어도 다들 하고자하는바, 맡은바를 하는데 소리없이 굴러갈려면 겉으론 별일 없지만 사실 엄청나게 노력해야한다고 무위이무불위를 이해하고자 한다. 첫장의 도가도비상도는 세상에 멈춰진것이 없고, 인간의 로망인 시간을 잡는 것이 불가능한 만큼, 당연한 것이라 생각할 뿐이다. 그 순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죽을 때까지 세상과 더불어순리를 쫒을 뿐. 역시 말은 쉽고 몸은 궁해지는도다. ㅎ
'고전 (冊)'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자 도덕경(덕도경) 7장~24장 (0) | 2012.08.20 |
---|---|
난득호도(難得糊塗) (0) | 2012.08.06 |
끊임없고 역동적인 창조적 삶 (0) | 2012.06.28 |
道講을 꿈꾸며 盜講인지 聽講인지 오랜만에!! (0) | 2012.06.26 |
學而時習之 不亦說乎의 의미를 되새기게된다. (0) | 2012.06.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