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이마트 저마트에 돌아다니다 둘마트에서 기차타기전에 한권 사서 보게됬다. 정판교는 3분고전에서 언뜻본듯한데 왠 바보경하면서 책을 잡게 된것 같다. 책표지만 보고 집어서 기차타고 내용을 보게됬는데 처제와 관련된 내용인줄 알았으면 사지 않았을듯 하다. 한비자도 세난이란 글에 처세의 방법을 적고 명을 못누렸는데...라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이고 이왕이면 4서5경을 언문으로라도 읽는게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정섭((鄭燮·1693~1765, 호 판교·板橋)이란 시인이자 서예가의 글을 세상을 현명하게 사는 방법일듯 하다. 특히 청대가 되었건 현재가 되었건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만으로 아마 최근의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라는 기술적인 부분의 책보다 더 높이 살만은 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현대사회에서 그의 방법이 상당히 유효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발생하지 않겠는가라는 생각도 든다. 그 만큼 삶의 여유가 척박해진것도 한가지 이유이고, 세상이 그 만큼 더 복잡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물론 세상일에 인내하고 여유를 찾아 조급하지 않는 것은 매우 큰 장점이다. 하지만 나는 옳바른 일이라면 지지해야지 자신의 영달과 안위를 위해서 물러서는 것을 칭찬할 만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어떤면에서 가늘고 길게 사는 방법이란 비난도 있을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연을 벗삼아 시를 짓고, 글을 쓰고 공부하며 자연속에서 여생을 즐기는 안빈낙도의 삶이라면 가히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인가 깊이 공부하여 스스로 남을 귀기울이는 깨달음 없이 기술적인 입장만을 취사선택할때, 사회속에서 어떠한 입장을 강요받고 애매모호하게 middle에 서있으면 center에 서 있는것으로 주장하고 이를 중용이라 외치는 회색분자가 되기 쉬운것처럼 말이다. 물론 저자가 그런 것을 고려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읽는이가 욕심과 이익에 휩쓸려 기술적으로 쓸까하는 문제다. 그의 설경, 난죽도, 부채에 그려지 매화등을 볼때 세속을 벗어나지 못해 그 속에 머물기 위한 방편으로 글을 쓴게 아닐까라는 상상도 해본다.
얼빵하게 보이기도 어렵다는 말과 조금이라도 얼빵하면 매몰차게 몰아붙이는 사회속에서 조금이라도 얼빵하게 안보이려고 아둥바둥사는 사회속에 어쩌면 바보경을 바보같이 나를 바라보는 좋은 거울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듭니다. 그래도 이왕이면 좀더 깊이 있는 책을 보라고 하고 싶고, 경제활동인구라면 심장약허는 화식열전만큼 그 의미를 세겨볼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출처] 정판교_난득호도(鄭板橋_難得糊ㅡㄹ까塗)|작성자 붕정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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